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땐 유물이나 유적지만 골라 다녔다
주섬주섬 보고 들은 걸 내 눈으로 확인한다는 자체가 기적처럼 다가왔다
누구나 다 아는 곳에서 찍은 사진은 사람만 바꾸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처음은 그렇게 모두가 아는 걸 나도 안다는 뿌듯함에서 출발한다
서서히 눈을 뜨는 순간은 보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갈아타는 때다
자기만의 소소한 취향이 외국이라는 낯선 틀을 벗어나면 세련돼지고 여유로워진다
한 때 영국에서 공부했던 사촌언니를 따라 석 달여 런던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에 머문 적이 있다
처음 일주일은 신나게 돌아다니고 도심의 내로라하는 랜드마크를 따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이삼 주가 지나자
나 혼자 버스도 타고 전철도 타고 하다
본의아니게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게 됐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소박하지만 조용하고 분위기가 예쁜 자그마한 소품 가게들...
영국인들이 썩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물건을 사고 팔 때의 대우는 참 싹싹한 인상이다
그때 산 빗이며 선물 상자, 브로치, 낡고 닳은 찻잔하며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묘한 재료들
값도 저렴하고 부피도 고만고만해 사 모았더니 한 살람 차릴 만큼 보따리에 두둑이 넣어오느라 땀 좀 뺐다
장터 같은 곳에서 산 요상한 너플너플 바지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멋스럽고 튀지 않는 개성으로 내 소중한 보물이 됐다
그 옷을 팔던 주인 왈 "짚시들이 입는 옷"이라는 말에
아마 순식간에 집어들었을 거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맛도 있다
영국 음식이 맛있단 생각은 못했는데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모닝 빵을 사려고 돌길을 걸어가 말도 안 통하는 가게 안에서
빵이 나오길 기다리며 멀뚱히 한 귀퉁이에서 소심하게 기다린 기억...
몇 번 그렇게 매일 드나드니 주인 아줌마도 어느 날엔가 포장 잘해서 잼까지 챙겨주시고
나중엔 다 팔릴까봐 내 몫을 따로 떼어놓고는 ... 기다렸다 했을 때
괜히 짠한...고마움
그리운 건 빵보다도 빵을 싸느라 부스럭대던 그 포장지 소리다
그렇게 몇몇 사람들이 오고 간 가게는 다음 날 아침 문을 열 때까지 고요하고 옛스럽게 그곳에 있다
마치 동화책에서 봤던 그림 같은 외관이 내겐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괜히 지나다 쓰윽 들여다보고는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몇 시간 전에 봤던 어느 손님은
하루 해가 다 가도록 책을 보며 옴짤달싹 않고 앉아있는 모습까지도 사진처럼 남아있다
두서너 모금이면 없어질 차를 대여섯 시간 씩 나눠 마시는 그 여유는 놀랍다
자잘하고 일상적인 소품이 주는 여운
그 작은 받침대 하나가 뭐라고
가끔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을 끌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