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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남편이랑 영화같은 사랑을 하고 결혼했었어요

..... 조회수 : 14,647
작성일 : 2014-02-26 00:49:40
참 좋은 시절 드라마 다운 받아 보다가 문득 제 얘기 같아서요

저도 고2 고3 때 학원에서 남편 처음 만났어요 제가 한눈에 뿅 가서 어찌나 쫒아다녔는지 한달을 집요하게 쫒아다니고 편지랑 선물 공세하다가 남편이랑 사귀게 됐어요

남편은 당시 공부를 잘해서 연애를 해도 여차저차 명문대를 갔고...전 입시생이 되었어요
집에는 아무 말 안 하고 있다가 남편이 좋은 대학 들어가고 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난리가 나셨죠
드라마처럼 우리집은 많이 잘 살았고 오빠는 좀 어려웠거든요
부모님은 말리다 도저히 안되니까 너가 너 남자친구 같이 명문대 가면 허락해주마 하셨는데 결국 못 갔어요....공부가 하루 아침에 되나요

암튼 적당한 대학 들어가고 그때부터 부모님이 우리 둘 갈라 놓으려고 그렇게 난리셨어요 매일 같이 감시하고 가둬놓은 적도 있고
물론 남편도 그 사실들 다 알았구요

그러다 언제....같이 밥을 먹는데 남편이 술도 안 마신채로 멀쩡한 얼굴로 헤어지자고 하더라구요
너는 나랑 함께 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나 만나서 너 자신을 잃어버리지마
난 정말 너랑 헤어지길 원해...너가 지금껏 누린 거 다 누리게 해줄 남자 넌 충분히 만나고도 남아
이러더라구요 그때 둘 다 이십대 초반이었는데ㅎㅎ
그 말 하다가 갑자기.....무뚝뚝하고 냉정한 성격의 남편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때 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구요....그래서 전 나 때문에 우는 저 남자를 내가 평생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ㅎㅎ어리니까 가능했겠죠?ㅎㅎ

진짜 둘이서 도망가자 이랬어요
드라마처럼 우리 몇시에 어디서 보자 이러고 서로 짐까지 쌌는데...결국 현실은 그렇지 못 하고 도망 안 갔네요...중간에 남편이 마음을 바꿔서ㅎㅎ
그렇게 군대도 기다렸고...남편이 복학하고 전 졸업반이고....전 취업을 했고 남편이 학생일 때 둘이 철없이 결혼부터 했어요 당연히 부모님은 기절초풍 시부모님도 기절초풍
결혼식도 안 올리고...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집에서 나왔어요
둘이 정말 작고 낡은 원룸에서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그 이후에 남편이 '참 좋은 시절' 드라마처럼 멋진 검사가 되고 그러진 못했고 자기 전공 살려 좋은 회사에 취업했고 조금씩 사정이 나아지면서 집도 조금씩 바뀌고....몇년 지나고 부모님도 마음을 열어주셨고.....그래서 지금은 자식 하나 낳고 살고 있는 44살 아줌마가 되었어요

가난이 들어오면 사랑이 뒷문으로 나간다는데...전 지금은 가난하지 않게 살고...가난했던 젊은 시절에도 사랑은 다행이 떠나가지 않았네요
아마 어려서 그랬을 것 같아요 어려서 사랑에 눈이 멀어 그랬을 거에요
로미오와 줄리엣만 봐도 그런 사랑 어리니까 가능하잖아요ㅎㅎ

근데 후회는 안해요^^
이제 제 인생의 드라마 같은 일은 끝났고 아주 평범하고 현실적인 부부 일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정열적인 사랑?그런 거 이미 진작이 깨졌죠ㅎㅎ그래도 아직도 그때 그 마음을 생각하면 설레고 떨리고.....지금 남편을 보면 가끔 정말 꼴보기 싫어 죽을 때도 있지만 어릴 때 만나 너무 격렬하게 사랑했던 사람이고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내 옆에 있는 든든한 사람이라 제 분신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제 딸이 저 같은 사랑을 한다면 싫을 거에요 결사반대하겠죠
그래도 그 드라마를 보면서 이서진과 김희선 아역들이 서로 도망가자 말할 때 그때 저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괜시리 마음이 아리네요
힘들 때도 정말 많았지만 그렇게 사랑한 사람 만났다는 거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IP : 211.234.xxx.161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4.2.26 12:57 AM (74.76.xxx.95)

    우와....멋져요. 굉장히 열정적이신가봐요, 두분다.

    전 진심 남편이 편해서 결혼했거든요.
    물질이 아니라 성정이요.
    저도 결혼하고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고 지금 그럭저럭 살지만...

    부러워요. 그런 열정이. ^^

  • 2. 위너
    '14.2.26 1:02 AM (58.237.xxx.106)

    부럽....

  • 3. ㅎㅎ
    '14.2.26 1:05 AM (223.62.xxx.18)

    지금도 남편분 많이 사랑하시나봐요
    남편분 행복하시겠어오 ^^

  • 4. 원글
    '14.2.26 1:05 AM (211.234.xxx.161)

    ㅎㅎ그러게요 지금 생각해보면 성격 자체도 열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겨우 고2 짜리가 고3 오빠 좋다고 어떻게 꼬셔야 넘어갈까 고민하고....입시생이라 여자 만날 수 없다는 사람한테 한달이나 들이댔느니

    비록 그런 열정은 이제 없지만.....윗분처럼 편한 사랑도, 제 어린 시절의 열정적인 사랑도 다 같은 사랑이지요^^

  • 5. 흐뭇
    '14.2.26 1:18 AM (175.198.xxx.113)

    참 좋은 시절을 보지는 못했지만 글을 읽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두분 끝날까지 행복하게 사시길...

  • 6. 드라마가망쳐놔
    '14.2.26 1:19 AM (175.117.xxx.161)

    부모님 속 어지간 하셨겠어요.

  • 7. 원글
    '14.2.26 1:30 AM (211.234.xxx.161)

    175.117님 그럼요 부모님 속 엄청 썩였죠.....그래도 다행이 지금은 큰 탈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된 거죠 이제는 부모님이랑 사이도 좋고
    근데 드라마 본다고 저처럼 눈 먼 사랑을 멋지다고 따라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냥 사람에 따라 저 같은 사람도 있고 저 안 같은 사람도 있는 거죠ㅎㅎ

  • 8. ㅡㅡㅡㅡ
    '14.2.26 1:34 AM (203.226.xxx.93)

    오우 대단한 사랑인데요 저같은 사람은 이성이 지나쳐서 글쓴님 같은 사랑은 여즉 못해봤어요

  • 9. 원글
    '14.2.26 1:44 AM (211.234.xxx.161)

    원래도 좀 감수성 풍부하고 기분이 파도 치는 성격에 나이까지 어리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그때는 남편이 키도 크고 얼굴도 미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절대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근데 콩깍지가...암튼 진짜 무뚝뚝하고 다소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라 진짜 날 사랑하는 거 맞나?이랬었는데....그런 사람이 저보고 헤어지자고 하면서 꾹 참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 모습 보고 확신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당시 남편도 이십대 초반이라 가능했던 모습ㅎㅎ

  • 10. ...
    '14.2.26 5:45 AM (118.221.xxx.32)

    남편에게 나도 그런 불같은 사랑해보고 싶다 하니까
    픽 웃으며 옆에서ㅡ말리니 더 애틋한 거래요 ㅜㅜ

  • 11. 아마
    '14.2.26 10:21 AM (150.183.xxx.252)

    님이 잘 사셔서 어느정도 가난에 대한 맷집? 이 있었던것도 클거 같아요.
    (따뜻한데 있다가 추운데 나오면 어느정도 견디듯이..)

    시집은 어떠신가요?
    전 사랑까지는 받아들이겠던데 시집문제에서는 무너지겠던데요...

  • 12. 원글
    '14.2.26 12:04 PM (211.234.xxx.9)

    시부모님들은 그냥 무뚝뚝하세요 저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서 큰집 따라 시골 내려가시고 거기서 소일 거리로 농사도 지으시면서 자급자족하며 사시는 분들이라 음
    정말 무뚝뚝한 분들이라 특별히 절 이뻐하시는지 모르겠지만....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저를 되게 어려워하셨던 것 같고....어쨌든 살면서 시부모님 때문에 마음고생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도 지금은 큰 문제 없이 살고 있으니 이런 추억들이 아름답게 기억될 수도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아무리 어렵게 시작했어도 남편이 능력이 있었고 둘이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순간적인 충동으로 결혼했다기에는 5년 넘게 연애하고 결혼한 거니까...아무리 어려도 믿음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말이 좋지 않았나 생각해요^^

  • 13. ...
    '14.2.26 1:52 PM (118.38.xxx.158)

    7080 세대 이기에 가능한 사람 들이고
    7080 세대 이기에 가능했던 시절이 아니었는지 .

    옛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1인 .....

  • 14. ㄴㅇㄹ
    '14.2.26 6:06 PM (116.40.xxx.132)

    저랑 똑같아요. 결혼 스토리가...10년이 넘어도 시엄니가 며느리 어려워한다는...친정빽이 좋긴해요.ㅋㅋ

  • 15. 진심 부럽네요
    '14.2.26 9:30 PM (1.225.xxx.5)

    세상 모든 부부들은 모두 드라마에 있는 불 같은 사랑을 하고 결혼할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저 처녀시절엔.
    참, 순수? 어리석었던? 시절이었네요 ㅠㅠ
    드라마 같은 사랑이 내게 안 와서 그런 사랑 기다리고 기다리다 포기하고
    맨 위 댓글님 처럼 마음 편하게 해주는 사람하고 40 다 돼서 결혼했어요.
    지금 오십대 중반이니 얼추 15년된 결혼 생활....원글님이랑 진배없이 보통 부부처럼 사는데
    원글님의 글을 읽으니 무척 부러워요.
    인생 두 번 사는 것도 아닌데....ㅠㅠㅠㅜ
    늘 행복하시길!!

  • 16. 검정고무신
    '14.2.26 11:17 PM (180.229.xxx.3)

    원글님 너무 멋있어요 ~!
    남편분도요...

    행복하게 오래 오래 늙어서 까지 함께 하시길 ^^

  • 17. ,,,
    '14.2.26 11:27 PM (116.34.xxx.6)

    남편분이 능력있는 분이라 그래도 잘 풀려서 지금 이렇게 회상하실 수 있는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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