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학벌주의, 대학서열화의 필연적 결과인가 / 이범

열정과냉정 조회수 : 1,293
작성일 : 2014-02-20 18:23:08
가을이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학생들이 있다. 
특성화고(실업계고) 또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하려 하는데, 
엄마가 결사반대하니 엄마를 설득해 달란다. 
몇년 전부터 기업에서 고졸자 채용을 늘리거나 지방대 졸업자 채용을 확대하고 
스펙을 안 보는 ‘열린 채용’을 넓히는 등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삼성의 총장추천제도 실상 이러한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이런 얘기를 학부모들에게 하면 대체로 ‘쇼하고 있네’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기업의 인사·채용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무척 진지하다. 쇼가 아닌 것이다.

흔히 학벌주의의 원인으로 대학 서열화를 지목한다. 
하지만 한국의 학벌주의는 한국 대학시스템의 모델이 된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심하다. 
학벌주의를 곧바로 대학 서열화의 결과로 파악하는 환원주의는 
시급히 보완되고 교정되어야 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나라는? 소련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때 좌익이었을 때 이를 접했을 것이다. 
관료들이 돈과 권한을 틀어쥐고서 어디에 조선소를, 
어디에 비료공장을 세우라고 지휘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와 거리가 멀다. 
관료의 힘이 매우 강한 것은 식민통치의 유산이자, 정부 주도형 경제성장의 결과다. 
그런데 우리는 이 관료를 시험을 통해 선발해왔다. 
서구 각국의 공무원 채용이 일반 기업처럼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이뤄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는 ‘정부 주도 성장’과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이 익숙하지만, 
실은 두 가지 모두 예외적인 현상이다. 
한국의 극단적인 학벌주의는 ‘중첩된 예외’의 결과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학입시 성적이 좋은 사람들은 
이른바 ‘스카이’에 모이게 된다. 
대학입시와 고시는 유사한 유형이므로 이들은 고시 합격률이 높다. 
이렇게 고급 관료가 되면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정부 쪽의 학벌주의는 이로써 설명된다. 
그리고 이것이 민간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왜? 정부가 ‘갑’이고 기업이 ‘을’이었으니까. 
정부 주도 성장하에서 기업은 기왕이면 ‘갑’과 친한 사람을 두고 싶어한다. 
대학 동문이 보증수표다. 룸살롱에서 술 따라 드리며 선배님에게 엎어지기도 해야 한다.

고전적인 ‘1차 학벌주의’는 대학 서열화, 정부 주도 성장, 그리고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 등 
세 가지 요인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부 주도 성장’이 끝났다.
 금융업 정도를 제외하면 더는 정부가 ‘갑’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 기업이 굳이 ‘관료들과 친한 사람들’을 포진시킬 이유가 줄어들었다. 
지난해 삼성그룹 사장 승진자 여덟명 가운데 스카이는 단 한 명이다. 
모 그룹 임원진 승진자 명단에 스카이 출신이 몇 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소식이 돈다. 
최근 채용 트렌드의 변화도 이러한 정치경제적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고전적인 ‘1차 학벌주의’는 정부 주도 성장의 종료로 인해 완화되고 있다. 
그런데 청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잘 안 먹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의해 ‘2차 학벌주의’가 심화된 탓이다.
 좋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구직자의 심리 속에서 ‘좋은 대학 간판’이라도 확보하고 싶은 간절함은 더 강해진 것이다.

학벌주의 강화 신호와 약화 신호가 동시에 들린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1차 학벌주의는 대학이 평준화되어야만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갈수록 간판과 스펙보다는 역량과 전문성이(구체적으로는 경력과 추천서와 면접이)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2차 학벌주의는 이와 별도로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안전망의 수준을 높이는 
사회경제적 개혁을 요구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IP : 221.152.xxx.95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01832 초등 방학식에 간식준비해오라는데요 6 이모 2014/07/24 2,013
    401831 아시는 분이 계실테지만.. 얼룩 2014/07/24 734
    401830 깡패같은 사람들이 살아남는곳 같아요 3 한국은 2014/07/24 1,291
    401829 "'재밌는 졸업사진 반대' 교감 사과" 의정부.. 9 .. 2014/07/24 4,330
    401828 컨설팅 업체에서 바가지 씌우는건가요? 3 창업 2014/07/24 1,283
    401827 '어제 굿을 하러 온 사람들이 놓고 간 안경일 것'이라고 추측... 7 공산당싫어 2014/07/24 2,203
    401826 82모금통장 다시 열렸어요. 2 ... 2014/07/24 963
    401825 (세월호 100일-146) 가족들 맞이하러 서울역으로 갑니다 6 싱아 2014/07/24 821
    401824 (세월호 100일-145) 만화로 풀어보는 세월호 특별법.. 2 도도 2014/07/24 674
    401823 콘도를 잡긴 잡았는데 3 여름휴가 2014/07/24 1,900
    401822 다미에쪽은 가품도 진품과 구별하기 가 어렵군요; 5 루이비통 2014/07/24 2,303
    401821 아크릴 70%,나일론30%니트 반드시 드라이하래요 2 세탁 2014/07/24 3,914
    401820 김미화, 변희재 대표와 소송 결과 온라인 공개 12 참맛 2014/07/24 3,255
    401819 시사통 김종배입니다[07/24pm]지리통 - 프롤로그 lowsim.. 2014/07/24 874
    401818 7월30일 대부분 휴가갈텐데,,,누가 투표할까요..ㅠㅠ 5 ㅇㅇㅇ 2014/07/24 1,015
    401817 타먹는 요거트파우더로 발효요굴트 되더라구요 ㅋ 7 발효과학 2014/07/24 2,484
    401816 "이상한데 안이상걸로 생각하기로 맘 먹었다" 11 홍홍 2014/07/24 1,900
    401815 노회찬의 진검승부 시작. 22 파리82의여.. 2014/07/24 2,618
    401814 중학생 영수를 같은날 학원다니는것 무리인가요? 7 2014/07/24 1,463
    401813 달력의 날짜 따위가 뭐라고 조작국가 2014/07/24 716
    401812 전교조 명단공개 조전혁..3억5천만원 배상판결 대법원확정 11 ... 2014/07/24 1,582
    401811 기동민 후보가 양보 할 만 했네요 (여론조사 보니까) 8 찌라시 2014/07/24 2,459
    401810 알로에 생잎 갈아 드시는 분 계신가요? .. 2014/07/24 948
    401809 이거 이거 이거 송세월 2014/07/24 947
    401808 45세인데 피부관리 배워서 피부관리실 할수있을까요 2 직업 2014/07/24 2,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