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주소지 연길인데 ‘화룡시’ 공문…국정원서 명의도용 의혹
[간첩사건 증거 위조] 검찰, 앞뒤 안맞는 ‘공문서 해명’
검찰 주장 삼합세관은 용정 소속
화룡시도 “우린 발급권한 없다”
출입국 관리과 없는데 ‘버젓이’
도장 다르고 맞춤법조차 틀려
팩스 발신번호 표기 미심쩍어
검찰, 공문 원본 제출도 못해
탈북 화교 출신으로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34)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이 증거로 낸 문서들을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히면서,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문서 발급처라고 주장하는 ‘중국 화룡시 공안국’이 의혹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정작 화룡시 공안국은 ‘우리는 유씨 관련 문서 발급 권한이 없다’고 밝혀, 국정원 쪽이 화룡시 공안국 이름을 도용해 문서 자체를 꾸며낸 것 아니냐는 의혹에 힘이 실리고 있다.
■ 왜 화룡시 공안국인가? 우선 화룡시 공안국이 이번 사건에 관여한 것 자체가 의문이다. 유씨 가족의 현 주소지는 중국 연길시다. 탈북한 뒤 중국 국적을 얻기 위해 머물고 있다.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이후 북한을 드나드는 데 이용했다고 검찰이 주장하는 ‘삼합변방검사참’(세관)은 용정시에 속한다. 검찰은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 ‘삼합세관 관할지가 화룡시’라고 설명했으나 사실과 다르다. 이 때문에 국정원이 화룡시 공안국에서 유씨의 기록을 발급받았다는 자체가 미심쩍은 것이다. 진런펑 화룡시 공안국 출입경관리대대장은 지난해 12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화룡시는 유씨 출입경기록을 발급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받았다는 화룡시 공안국 공문은 맞춤법도 틀려 있을 정도로 조잡하다. 이 공문은 ‘화룡시 공안국이 선양 영사관에 안부의 말씀을 전한다’로 시작한다. 중국 공문서의 관례에 따른 인사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는 우리 말의 ‘~에’에 해당하는 글자 ‘向’(향)이 빠져 있다. 또 화룡시 공안국 출입국 관리 부서의 정확한 이름은 ‘화룡시 공안국 출입경관리대대’인데,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유씨의 출입경기록에는 ‘화룡시 공안국 출입국 관리과’로 명의가 틀린 도장이 찍혀 있다. 진런펑 대대장은 “우리의 부서 이름도 틀리게 쓴 위조 공문”이라고 말했다.
■ 선양시 전화번호는 왜? 검찰은 재판부에 지난해 12월6일과 13일 같은 ‘화룡시 공안국 회신공문’을 두번 제출한다. 그런데 6일에 제출한 공문은 팩스 발신번호가 선양시로 찍혀 있고 13일 공문에는 화룡시 공안국으로 찍혀 있다. 검찰은 “화룡시 공안국이 팩스 발신번호를 잘못 찍어 보내, 문제 삼을 수 있어서 화룡시 공안국 공식 팩스번호로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팩스를 보낼 때 발신번호는 별도로 지정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유씨의 변호인단은 누군가가 위조 문서를 선양시에서 팩스로 보냈다가 발신지역 번호를 잘못 기재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다시 보낸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 재판부에 화룡시 공안국 회신 공문의 원본이 아닌 팩스 사본만 제출한 상태다. 외교 공문을 원본도 없이 팩스 사본으로만 받은 이유를 검찰은 소명하지 못하고 있다.
■ 요청과 반대되는 기록 검찰이 재판부에 낸 의견서를 보면, 선양 영사관은 2013년 7월1일 화룡시의 상급 관청인 길림성 공안청에 2006년 1월1일부터 2012년 2월29일까지 유씨의 중-북 출입경기록을 발급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검찰이 화룡시 공안국에서 발급받은 유씨의 출입국기록은 2001년 8월23일부터 2006년 10월15일까지의 기록이다. 화룡시 공안국이 이런 엉뚱한 기록을 발급해줬는데 선양 영사관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국정원과 외교부는 화룡시 공안국의 문서를 누가 발급받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유씨의 변호인인 김용민 변호사는 “이런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화룡시 공안국과 관계가 있는 국정원 직원이 화룡시 공안국 몰래 만들어낸 위조 문서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