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초반 부부에요.
남편은 남녀공학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고, 저는 여고 여대를 나왔구요.
둘이 대학 4학년때 인턴 취업했다가 만났고, 첨엔 그냥 오빠 동생으로 아무 감정없이 지내다가 졸업 후에 각자 다른 직장 잡아 서로 연락만 하다 나중에야 사귀고 결혼했어요.
남편은 엄청 성실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술담배도 거의 안하고, 아이들에게도 참 잘하고, 저한테도 잘 해요. 전형적인 집돌이구요.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착하게 굴기도 하고...
남편이, 저 만나기 전에 좋아했던 사람이 있는 건 알았고, 그건 당연한 거라 생각해서 별 문제 아니라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랑 사귀던 사이도 아니고, 그냥 고등학교 여자 동창인데, 그 동창은 다른 사람과 사귀고 남편하고는 그냥 친구사이였던 거였고, 짝사랑이 아주 길었던 걸로만 알아요. 고등학교때부터 대학교때까지 몇년간, 연락은 가끔 하는 동창사이였고, 남편 혼자 계속 그 여자분을 마음에 품고 지냈었나봐요.
게다가, 그 고등동창들끼리 대학다니면서도 무리지어 만나서 그냥 편안한 친구들 사이로 지내기도 했던 것 같고, 그렇게 남편도 그 여자분이 어찌 지내는지 늘 알 수 있게 몇년간 지낼 수 있었나봐요.
저는 여고 여대를 나오다보니, 남녀공학 고등학교 분위기도 잘 모르겠고, 그냥 어린 시절 짝사랑 정도인가..싶기도 했구요.
어쨌든 저 만나기 전 일이고, 저랑 결혼해서 성실하게 잘 사는 남편이라 그냥 다 잊고 있었죠.
근데, 몇달 전에 남편 메일함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여자분에게 너를 오랫동안 아주 많이 좋아했었고, 아직도 네가 생각난다는 메일을 보낸걸 봤어요.
그 여자분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는지, 답을 보낸 걸 보니, 나는 너를 그냥 좋은 고등 동창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남자로 좋아해본 적은 없어서, 네 마음이 그렇게 오래토록 그 정도였는지는 몰랐다고. 그냥 어린 시절에 좀 그러다 만 감정인 줄 알았더니 꽤 오래였나보다고..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네 마음이 그 정도인걸 모르고 무심히 지난 건 미안하다고.
이제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고, 좋은 결혼생활 되길 바란다고...꽤 완곡하게 보낸 메일 내용을 보니, 그 여자분은 정말 남편에게 전혀 감정은 없었던것 같아요.
어쨌든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더라구요. 보낸 날짜를 보니 거의 10년 된 메일이던데, 그걸 안 지우고 아직도 메일함에 보관해둔 것도 마음쓰이고..
근데 메일함 봤다는 말도 못 하겠고, 이미 몇년 전 일을 들춰서 뭐하나 싶고, 그 뒤로 메일 주고 받은게 없는 걸 보니, 그렇게 지난 일인가보다 싶었어요.
모르는 척 넘어가는게 나은 것 같아 그냥 그렇게 지나쳤죠.
그런데 며칠 전에, 또 어쩌다 남편 핸드폰을 보게 되었어요.
남편이 그 여자분에게 문자를 보냈더군요.
응답하라 1994보다가 오랜만에 생각나서 문자했다고, 잘 지냈냐는..
그 여자분은 꽤 편안한 답으로, 정말 오랜만이라고,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만나게 되면 보자고..이렇게 일상적으로 답이 왔구요.
남편은 문자상으로도 좀 들뜬 것처럼, 정말 봄되면 한번 보자면서 막 기분좋아하는 것 같았고, 그 여자분은 그래, 시간되면 한번 보자. 이런 식으로 답했더라구요.
제가 느끼기엔, 남편은 좀 들뜬 것처럼 느껴지고, 그 여자분은 그야말로 언제 밥한번 먹자 하는 한국인들이 흔히 하는 스타일의 답을 보낸 것 같았어요.
거의 10년전에 그렇게 자기 마음을 힘들게 고백하는 메일을 보내고, 지난 시절의 자기 마음에 대한 것까지 완곡하게 거절당한 남편이, 이제 또 문자를 보내고는 그 여자분한테 또 완곡하게 거절당하는 것과 비슷한 취급을 당하면서도 좋아하며 답 보낸걸 보니, 아주 속이 터질 것 같네요.
남편은, 몇달 전에 제가 메일함을 열어본 것도 모르고, 며칠전에 남편 핸드폰을 본 것도 몰라요.
근데, 지금 저대로 두면, 남편 혼자 붕붕 떠서 바보짓할 것 같고, 행여 그 여자분이랑 만날 자리라도 생기면 더 정신 못 차릴 것 같아 보여요.
메일상으로도 문자로도, 그 여자분은 전혀 제 남편은 안중에도 없어보이구요.
그냥 과거엔 약간 친했던 동창 무리의 한명이었을뿐인 것 같구요. 지금은 거의 잊혀진 존재인 것 같아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그 여자분에게 메일이나 문자를 보내볼까 싶어져요.
제 남편하고 연락하지 마시라고.
제 남편이 연락하더라도 받아주지 마시라구요.
그러면, 제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