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글은 섹스로 들어가는 전희의 단계를 그럴싸하게 묘사한 글이다"
하루키를 규정하는 건 그의 글을 탐독한 결과일 거다
그런데 그런 소설 나부랭이를 읽는 독자를 깐다
강신주 자신이 인정하는 소설가는 도스토에프스키 "정도"라고 그것도 덤으로 얹어주듯이 말하고
정신분석의 기초를 다진 프로이드조차도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정신적 문제를 성적 트라우마로 해석하려는 편협한 시각이 싫다며
그런데 그의 책이나 강의를 보면 그가 삶의 고통을 풀어내는 키에 반드시 등장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남녀간의 성애
이성 이전에 동물로서의 감각과 본분에 충실했음도 여과 없이 뱉고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수줍음 또한 드러낸다
단두대처럼 단칼에 베어내듯이 호령하다가도 미적미적 내담자의 사연에 뭉개지는 묘한 구석도 있고
그렇게 상충되는 이미지의 파열이 성을 불문하고 끌림과 밀어내기를 반복하는 와중에
인칭의 경계 없는 자유분방한 화술에 귀기울이다 보면 술독에 빠진 것처럼 그렇게 다가가 있다
법정의 자연예찬을 소로우의 월든과 묶어 가짜라고 냉소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글은 유치함의 극치이며 읽지 말아야 한다고
그건 위로가 아니라 그렇게 자빠져있으라는 유약함의 기술이라고 경고한다
손을 잡아주는 글은 하등의 도움이 안된단다
스스로 이 악 물고 일어나게끔 하는 목적이 인문학자로서 자신의 소임이기에
벼랑 끝으로 독자를, 내담자를 모는 것이라고 말이다
뛰어내리든 뒷걸음질 치든 본인이 알아서 하라고...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은데
이젠 인세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며 자신이 쓰고 싶은 글, 말을 하며 살겠단다
지금도 충분해 보이는데...ㅋ
한데 봤다
강신주도 떨더라...
SBS아이러브인 강연...
수많은 환호, 조명, 카메라...
유독 그날따라 핏이 살아있던 옷...
그동안 봐왔던 강연장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긴장된 얼굴
그걸 덮으려는 과도한 액션..ㅋ .(구여우셨음)
그래 ..그날은 너무 많았다, 여성들이...
그날도 그의 성애론은 빠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