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파업땜에 공기업 민영화가 한창 이슈인데
철도에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공기업의 의미에 관해 오늘 너무 사무치는 체험을 해서 글 올려요.
저는 깊고 깊은 강원도 산골짝의 커다란 집에 덩그러니 혼자 살고 있어요.
만 3년을 넘게 살아서 별별 일을 다 겪었구
집안 설비같은 것들 말썽나면 간단한 것은 직접 고치기도 해요.
저희 동네는 1년의 반은 겨울이라고 할 정도로 추운 동네라서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나면 정말 고생이예요.
길도 죄다 얼어붙거나 눈에 파묻혀서 AS 부르기도 힘들고요.
며칠전부터 심야전기 보일러의 누전차단기 부분이 계속 말썽이라서
AS를 불렀더니 일단 차단기 교체해보고 안되면 AS 다시 부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힘들게 눈길에 시내 나가서 차단기를 새로 사왔습니다.
코드 다 뽑고 보일러 패널 열고 분해하다가 웬걸...
찌릿!! 하고 감전이 되면서 펑!!!!!!!!! 소리가 나고
한동안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빛이 나며 뭔가 폭발을 해버렸어요ㅠㅠ
차단기는 전에도 직접 갈아본 적이 있어서 간단히 생각했는데 너무 놀랐죠.
감전 땜에 차단기 분해도 다 못한채로 그냥 두고
누전 사고 관련해서 미친듯이 지식인 검색하고 안절부절이었어요 ㅠㅠ
누전이 있는 거라면 저렇게 어중간하게 분해하다 만 상태로 두는 것도 위험한데
긴급 안전조치도 뭘 해야될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그러다가 한전 123번이 24시간 상담이 된다길래
내일 기술자를 부를 때까지 안전조치라도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어요.
상담원이 해당 지역 담당자한테 연결해주겠다고 하고 기다리니 곧 전화가 왔어요.
들어만 봐서는 확실치 않다면서 자정이 넘었는데 직접 오시겠다더라구요.
방금 한전 아저씨 두분이 오셔서 문제되는 부분 수리해주시고,
긴급 안전조치 방법 가르쳐주시구 가셨어요.
이 산골짜기에, 한해의 마지막 날에, 그것도 심야에
득달같이 와서 다 조치해주시구 출장비도 안 받구 그냥 가셨네요.
생각해보니 요즘 한창 이슈가 되는 민영화나 공기업 등의 의미가 실감났어요.
한전은 에너지 공기업이잖아요.
영리보다는 국민 전체의 공적인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회사죠.
24시간 상담에 심지어 이 산골짝까지 출장와서 무료로 수리를 해주다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사무치더라구요.
사실 아까 폭발하구나서 정말 무서워 죽는줄 알았거든요 ㅠㅠ
아무데도 물어볼 데도, 당장 조치해줄 사람도 없고
누전이 있는 거라면 그야말로 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 ㅠㅠ
사실 한해의 마지막 날에, 이런 산골짝에, 그것도 새벽시간에
출장 수리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너무 고맙더라구요..
만약 한전이 영리 목적의 민간기업이었다면 이런 서비스는 꿈도 못 꿨을 거예요.
민간기업이었다면 당연히 몇만원 ~ 십수만원의 출장비를 냈어야겠죠.
물론 전기사고면 집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으니 그 정도 돈은 전혀 아깝진 않아요.
오늘 오신 아저씨들도 출장비 안 받으시겠다는 게 너무 죄송해서
나중에라도 개인적으로 사례를 할 생각이고요.
어쨌든 한전이 공기업이기 때문에 이런 양질의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거겠죠.
듣기로는 한전도 적자가 엄청나다고 들었어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발전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이라고도 하네요.
우리나라 전기세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좀 싸다고는 합니다만..
저는 아낄 수 있는 데까지 필사적으로 아끼고,
전기요금이 더 오를지언정 그것은 받아들이더라도
한전같이 국가의 기간시설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지금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업으로 남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늘의 체험을 통해 굳히게 되었어요.
경영 선진화 뭐 이런 명목으로 민영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덕에 저처럼 길이 꽁꽁 얼어붙은 산간벽지에 사는 사람조차,
12월 31일 새벽 시간에 무료 출장 수리를 받을 수 있는 거고,
이런 좋은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다면
비록 달갑진 않지만 전기세를 약간 더 부담하는 것도 저는 감수할 생각이 있어요.
전기, 수도, 교통, 의료 등 우리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부문들은
지금처럼 그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남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전 정부때 해외자원개발한답시고
3조 2천억 투자해서 꼴랑 2200억 벌어들였다는 광물자원공사,
이딴 쓰잘데기없는 공기업이나 정리하고 말이죠. -ㅍ-+
민영화를 했으면 진작에 경영진들 목을 다 치고도 남았을 미친 적자기업..
그리고 전기안전은 정말 생명과 직결된 문제네요 ㅠㅠ
한전 상담전화 123번(휴대폰은 지역번호 + 123) 기억해두세요..ㅠㅠ
모두들 한해 마무리 잘 하시구 복 많이 받으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