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보험이 정착한지 아직 몇십년 안됬잖아요
이 보험제도가 정착되기전 병원에 가면 어떻게 의료비를 지불 했나요?
공공의료보험이 정착한지 아직 몇십년 안됬잖아요
이 보험제도가 정착되기전 병원에 가면 어떻게 의료비를 지불 했나요?
농담이나 장난아니고
마치 지금 동물병원가면 돈나오듯이 간단한 진찰만도 몇만원 (그 당시에는 시가가 달랐으니 금액이 좀 달랐죠. 1500원? 2000원 그랬어요. 35년전인가?)
검사하면 십몇만원이상 기본처럼 나왔어요.
저 어렸을때 병원비가 되게 비쌌던거 생각나요. 그땐 주로 약국에서나 약지어먹고
동네 의원이라도 가면 꽤 비쌌죠.. 요즘으로 환산하면 아마 지금 금액의 열배쯤일껄요...
그땐 너나없이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이니 (7~80년대)
지금의 건강보험이 의료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온게 80년대초로 기억하는데
그나마 저희 아빠는 대기업 근무자라서 의료보험이 됐었고.. 지역의료보험은 없던 시절이라
의료보험증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었죠. 없는 사람은 진료비 약값 엄청 비쌌어요.
그땐 병원에서 약을 직접 줬거든요.. 그래서 서민들은 민간요법이나 동네 약국에서 약사먹으면서 버티던
헐..진짜요???????????? @.@
허허허허허..............................ㅠㅠ
치과가서 예쁘고 안아프게 유치 빼는게 일반화였죠?
저 어릴땐 방문에 실 연결해서 이빼기도 하고 안빠지면 부모님들 덧니난다고 뺀치들고 덤볐어요.
엄청 공포스러웠죠.
아이 키우면서 그 공포때문에 우리 아이는 꼭 치과가서 치아갈이 해줬는데.. 이젠 호사스러운 옛이야기가 되겠네요.
제가 40대인데
저 어릴 때 병원비가 무척 비싸서 저희 아플 때마다 엄마가 힘들어하셨던 기억 있어요.
그래서 약국만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고..약사가 거의 반 의사 역할을 했었죠.
그 당시 의료보험증 있는 남자가 최고의 신랑감..이런 분위기도 있었어요
그때는 약국에서 항생제로 약 지을 수 있었어요, 왠만해서는 병원에 안 갔죠,
그냥 약국에서 약 지어먹고 말았어요.
이었을때에 직장인이었던 작은아버지네 가족만 의료혜택이 있어서 치과가도 한번에 30년전
10만원 가까이 들었어요.
울집은 농사짓는 가난한 집이어서..다시 그시절로 돌아간다면 전 남은 인생 걸고 투쟁할거에요.
이나라에 살 이유 하나가 없어지는 건데요. 지금 외국 살던 노년층들도 의료혜택때문에 역이민 온다고 지난주 뉴스에 나왔는데,미친댓통 하나때문에 나라가 거꾸로 돌아 갑니다.과거를 박정희를 그리워해서 찍은 사람들만 그렇게 하라해요.난 안찍었는데, 왜 쟤네때문에 내인생을 송두리째 갉아먹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대신.......... 무슨 감기나 결핵 폐렴 이런건 많았으나,
암이나 이런거 별로 없었고, 고혈압 당뇨 같은 병도 지금에 비해선 별로 없었어요.
못먹는 사람들이 많았고 교통도 불편해서 죽어라하고 걸어다니고 했으니깐요..
그리고 의료보험증 빌려서 많이 병원에 다녔어요.
그땐 병원에서 사각습자지 같은 종이에 가루약을 삼각형도 아닌것이 해서 접어줬어요.
약값까지 같이 줬던 기억이 ^ ^;;
약국가도 걍 증상만 말하고 약타서 먹었구요. 그러다 병키워 말기암다되어서 통증땜에 병원가는 사람도 많았구요.
초등때 그니까 80년 초반쯤 그때 의료호험이 처음 나왔는데 의료보험있는 사람 거의 없었어요.
그때 이빈후과에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비가 하루에 4500원이었어요. 엄청 큰돈이었던듯..
의료보험없어서 비싸다고 엄청 불평했어요. 엄마가..지금으로 치면 얼마인지는 모르겠어요.
한국에 의료보험 없던 시절 ..의사도 엄청 귀하고
그시절엔 맹장수술 한번 하려면 지방에 집한채 값이었데요
그래서 맹장수술이라도 한번 하려면 동네에서 문병을 한 20명씩 왔다고 ...
70중반 외과 의사가 그러시더라구요
다른 분이 그러시는데 그분 밑에서 정작 수술은 다른 의사가 했었다고 ..그분도 얼른 개업해 그런 날을 꿈꾸며
그대박 외과에서 5년간 일하시다 나갔는데 나가고 바로 공공의료보험이 시작됐다며 몹시 안타까운 얼굴로 말씀하시더군요
미국에서 제 지인이 무난한 제왕 절개로 애낳았는데 그당시 보험이 없어서 현금딜로 타협에 타협을 거듭해서
2000만원 좀 넘게 냈어요
보험이 있다해도 직장에서 내주면 내 월급이 빠지는거구 내가 직접내면 실수령액 주는거고 그런데
재정이 튼튼해서 적립해논 돈은 많은데 아파서 많이 쓰는 사람은 없는 건실한 직장 보험료가
달에 우리나라 돈으로 한 100만원 나가더라구요
의료보험 좋으면 월급작아도 그냥 그걸 장점으로 버티는게 미국의 현실
보험으로 카바되는것도 보험따라 엄청 다르니까
한.. 25년? 26년 전쯤에
500원짜리 고등어먹다 (큰거였어요) 가시가 목에 걸렸는데
그거 빼는데 2만원인가? 들었어요. 진짜 큰돈 들어서.. ㅠ ㅠ
71년생이구요 전 가족이 병원 다닌 기억이 거의 없메요. 그러고보니. 다 참았나? 기억나는 건 제 동생자주 팔 빠져서 접골원에서 팔 끼우던 거, 중학교때 84,5년 정도 친구랑 장난 치다 내가 친구 다리 다쳐서
저 40대 초반이예요.
초등때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의료보험증이 다 있는게 아니였는지 옆집 아주머니가 그걸 빌려갔던 기억이 나요.
남동생과 비슷한 또래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병원갈때 동생이름대고 쓴다구요.
내가 친구 다리 다치게 해서 놀라서 부모님이랑 같이 병원 갔는데 친구가 자기네 의료보험있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그 친구네 집은 엄청 부자였어요.우리집은 그런거 없었거든요. 자영업하셨었고. 그 덕에 저희 부모님이 병원비 걱정던 기억나요. 그러고보니 의료보험 덕분에 정말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덕 보고 있었네요 ㅠㅠ
뼈는 접골원가고
애기는 조산원 가서 낳고
어지간하면 병원에서 처방받아 약 먹고.
보험증 확인하니까 빌려가서 남의이름으로 진료받은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것도 아주 아팠을때 얘기고
약먹거나 참거나
민간요법으로 땜질했죠 그래도 아프면 참고 견뎌야했죠
건강보험 아주 고마운제돈데
아직은 안심하지만;;;
이라고 하는 암은 거의 죽음으로 가는ㄷ길이었어요.
물론 그때와 비교하면 의술도 엄청 발전했지만, 시골동네 암 환자는 거의 몇달안에 거의 다
저승으로 가셨어요.
진단만 암이라는것만 받고 치료는 꿈도 못꿨어요. 엄청 비싸서....
노무현대통령때에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시절에 암진료비 대폭 삭감해서 살만했고
기술도 좋아져서 암정복 얘기가 나왔는데, 이젠 누굴 믿고 살아가야하나...
경상도민들.,.집안 박그네빠 계시면 얘기좀 찬찬히 해주세요.
쉽게 믿지는 않겠지만.... 김영삼도 여전히 인기 있다면서요. 경상도에...
새누리당이면 북한 김정은 인기 저리가라네요.
돌팔이 침술사가 주름잡던 시절 아닌가요? 어린시절 저도 맞았던 기억이...
일곱살땐가 기억나요 ... 덤블리한다고 하다가 손목인지 어깨인지가 빠졌는데 엄마가 어디를 데리고갔는데
아저씨 두명이 내 팔을 잡고 돌리던기억...
정말 무서웠어요
나중에 엄마가 아빠한테 하는 얘기들었는데 태권도사범한테 갔었다고...
지금 아무 문제없지만 만약 잘못됐더라면 ..끔찍하네요
저희친정엄마 고혈압으로 고생하다가 뇌출혈로 돌아가셨는데
그당시 의료보험있었으면 고혈압 꾸준히 관리하면서 사셨을텐데
의료보험이 없으니 병원비 무서워 죽을만큼 힘들때만 병원다니니 혈압을 잡았겠습니까?
50세에 고혈압으로 돌아가신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한달에 만원도 안되는 처방전과 약으로 얼마든지 조절 가능한 병인데..
가수 비의 엄마도 당뇨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고 지금 같았으면 얼마든지
관리해서 살수 있었다고 눈물 흘리던데.. 그 가수 비는 알려나...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걸....
철도 의료는 가난한자나 부자인자 모두 (삼성,현대 빼고 )같은 입장일텐데, 누구 하나 나서지 않으니 참..
헉.. 근데 너무 옛날 얘기들을 하시는 듯 합니다.
저 40대, 이 한 개 빼고 전부 치과에서 뽑았고 정기 검진 다녔고 내과/이비인 후과 다녔어요.
병원 가는 거 그닥 무서운 거 아니었고 어릴때 몸이 약한 편이어서 내과/이비인후과 끼고 살았고
물론.. 한약도 많이 먹긴 했습니다만..
그냥 약국가서 약만 사 먹는 건..병원 문 안 열때 빼고는 없었는데요.
어릴때 부터도 기본적으로 진료는 의사에게..그랬었는데요.
대도시 아니고 지방 소도시였지만.. 다들 그렇게 살았던 것 같은데..
서민들은 아파도 병윈 갈 생각도 못했지요
죽기 직전에나 병원에 가는 것이 육칠십년대의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입원하면 시골에서는 동네사람 전부가 병문안을 갔지요..
음..님
전 70년대 중반에 태어났는데 저희 엄마 집에서 낳으셨어요.
그때 산파? 가 있어서 동네 할머니가 받아주셨다네요.
동생때는 살림이 나아지셔서 병원에서 출산하셨고요.
81년 생인데 어릴때 친척이 병원간다고 의료보험증 빌리러 왔었어요. 울집도 잘살진않았는데 어쨌든 아버지 직장다니셨고 그집은 자영업이라고해야하나 이거저것 하셨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만큼 일자리도 많이 없고 이번에 아버지 퇴직하셔서 잠깐 지역의보로 나왔는데도 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는데 민간의료보험되면 의료보험내다가 뼛골빠지겠네요.ㅠ
저 76년생인데 방 문에 실 걸어서 이빨 뺐어요.
영리병원....지옥으로 가는 길이죠.
60년대 중반 출생이고 농촌에서 살았어요.
병원은 읍네에 하나 있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았어요.
아프면 약국에서 대충 약 지어 먹었고요.
국민학교 6학년때 체육 시간에 달리기 하다 엎어졌는데 허연 뼈가 보일정도로 푹 빼인 상처가 났었는데도
병원은 안갔으니까요.
지금도 무릎에 흉터가 큼지막하게 있어요.
중 3때 병원에 처음간 이유가 학교에서 넘어져 머리 깨져서 갔는데 지금도 기억 하는데 병원비가 5천원 이었어요.
다음날 선생님께 5천원을 가져다 드렸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 해요.
그때 1분기 중학교 수업료가 3만원이 조금 넘었을때였어요.
큰오빠의 잣은 병치레 때문에 논밭도 많이 팔았을 정도로 병원비가 많이 들었어요.
진짜 의료 민영화 만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72년 생이고요.
가난한 집입니다.
엄마께서 집에서 저를 낳으셔서, 신생아인 제가 온돌바닥에 데어 평생 흉터를 안고 삽니다.
크면서 병원 다닌 기억은 딱 한 번, 안경 처음 맞출 때였어요. 이빨은 당연히 실로 뽑았고, 아프면 그냥 약국만 주구장창 다녔습니다. 약사아줌마께서 집안 병력을 줄줄 꿰고 계셨죠. ㅎㅎ
누구누구네 암 환자 있어 집안이 쫄딱 망했다는 이야기 어른들이 하시는거 어렸을 때 많이 들었어요.
심각한 병이 있는 가족이 있는데, 정기 진찰 때만 되면 한숨 쉬시던 엄마 모습도 기억납니다.
사회에서 만난분... 시골에서 기와집에 논깨나 있었던 유지 였는데 어릴때 아버지 간암에 걸려서 수술한번 하고 집이랑 논 다 날리고 바로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 그분이 73년생인가 그랬어요
저 키우면서 공짜로 키웠다고 하세요 병원 들쳐 업고 다니지 않아서요
오빠는 툭하면 숨넘어가게 아파서 병원가서 돈 어지간히 들었다고요
엄마도 80년 초에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병명만 듣고 왔어요
그리고 버스 타고 올수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왔는데 집안으로는 기어들어 왔다고요
그레도 병원에 입원할수 없었다고 ....
외갓집에서 태어났어요.
없는집에서 다섯식구 안아파서 다행이었죠.
저희는 아버지가 직장인이셨고
초등학생일때인거같은데 친구가 누구거 빌리고 그런기억나네요.
옛날에 신장투석하는 환자있고그러면
부지깽이하나안남고 다팔아먹는다고 했어요
거지되는거죠
이젠 주춤하겠네요.노인들....대학병원 아침부터 줄서서 검진받을라고 까맣게 몰려있는데,
민영화하면 그런현상 사라지겠네요.
노인들 대학병원이 놀이터에요.아침부터 종일 검사싸게 받고 약타러 놔서 지하식당서 밥사먹고
아산병원 같은곳은 상가가 즐비하니 날추운날 여기저기 기웃거리시면서 병원을 즐기시는데....
입원한 엄마때문에 병원 자주 다녔는데,대형병원은 고령인구들로 가득합니다.
이제 그런현상들 사라지려나요??그땐 박그네 우너망 안할려나요??
나라에 돈이 없다는데,그네님이 하라는대로 해야지 할까요??
아님 이것도 죽은 노무현때문이라고 덤탱이 씌울려나요??? 세상이 어디로 갑니까??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하기 전엔 한번도 병원 가본적이 없었네요~ㅠ
그냥 자연치료되기까지 방치하거나 온갖 민간요법들...혹시 중병 걸렸으면 집안 거덜내거나
아님 그냥 죽음을 기다렸죠.
돌멩이에 맞아 머리가 깨져도 집된장 붙이고 상처에 구더기가 생겨 꺼집어 내던 시절이 불과 이삼십년 전이에요ㅠㅠ
아버지가 회사에 다니셨는데요 옆집은 의료보험카드가 없어서 우리집 보험카드를 빌려가서 사용했어요 그당시 1500원정도면 병원갈것을 보험카드없이는 돈만원정도 나온다고 들었던것 같아요 어쩔....
언니가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했었어요.
결혼한 언니는 의료보험이 없어서 한번 투석하는데 8만원가량
나왔는데 그걸 일주일에 3번 해야했지요.
3년정도 정말 힘들게 투병생활했고 제가 직장 다니며 번 돈 몽땅
언니 병원비로 들어갔음에도 결국 투석을 중지했고........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냥 자연치료되기까지 방치하거나 온갖 민간요법들...혹시 중병 걸렸으면 집안 거덜내거나
아님 그냥 죽음을 기다렸죠.
돌멩이에 맞아 머리가 깨져도 집된장 붙이고 상처에 구더기가 생겨 꺼집어 내던 시절이 불과 이삼십년 전이에요ㅠㅠ 222222222
친정아버지 투석 10년정도 됐는데 시작하실당시가 투석 보험된지 몇년 안됐을 때예요.
한달에 2백정도 들다가 20정도로 낮아졌죠
저 76년생인데 79년생 제 동생과 동갑 사촌이 병원입원할때 저희 의료보험 빌려썼어요 그때 입원해도 근처에 의역품상가서 주사바늘도 사고그랬었네요
그때가 올림픽할때 무렵이었죠.
제 기억으로 처음 병원에 가본 건 5학년이던 1985년 이비인후과였어요. 이는 당연히 집에서 뽑았고 병원에 간 기억이 별로 없어서 내가 건강체질이었나 생각했었는데 그래서라기 보다는 왠만한건 약국 약으로 해결하고 병원은 거의 안갔었던 것 같네요. 5학년 때 이비인후과에 갔던 건 정말 많이 아파서였어요. 다른 분들 말씀하시는 것 처럼 의료보험증 빌려쓰는 경우 많았구요.
반면 꽤 부자였던 동갑 지인은 모든 이를 치과에서 뺐다더라구요. 그것도 미리 엑스레이 찍으면서 빠질 것 같은 이를 미리 뽑아 치아가 고르게 나서 나중에 교정이 필요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저희가 삼남매인데 막내 동생만 병원에서 낳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