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0일 경향신문 칼럼
끝내 어제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이사회가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결정했다. 올해 봄까지만 해도 수서발 KTX를 분리 운영할 경우 경쟁효과는 없으면서 비효율만 발생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철도공사였다. 취임 2개월을 맞는 최연혜 사장의 변신도 실망스럽다. 사장이 되기 전에는 고속철도 경쟁체제 도입은 철도 특성을 잘못 이해한 정책이라며 KTX 경쟁 도입과 민영화를 강력히 비판했던 철도 학자였다.
이번 이사회 의결을 보면서 지금까지 철도개혁 논란을 주도해 온 ‘철도민영화 세력의 집요함’을 새삼 확인한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부터 4개 정부를 거치면서 흔들림 없이 KTX 민영화를 추구해 왔고, 박근혜 정부에서 꿈을 이룰 직전까지 와 있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때 철도 전체를 민영화하려 했으나 좌절되자 KTX만은 별도 공사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것마저 노무현 정부에서 무산되자 이명박 정부에서 철도사업법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수서발 KTX를 민간위탁하겠다고 나섰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이번엔 자회사 설립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공공부문이 참여하는 자회사를 통해 민영화 비판을 우선 피해보자는 계산이다. 최연혜 사장 역시 민간자본의 참여를 배제한 자회사이기에 민영화가 아니라며 자신의 변신을 옹호했다. 여기서 제기되는 논점은 경쟁 효과와 민영화 여부이다.
수서발 KTX가 따로 운영되면 서울역발 KTX와 경쟁 효과가 발생하는가? 두 회사 모두 동일한 차량, 철도기술, 관제를 사용한다. 서울에서 평택 구간을 제외하곤 같은 선로를 달리기에 앞지를 수도 없어 소요시간도 같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같은 구간에서 사실상 요금도 달리하기 어렵다. 현행 고속버스처럼 여러 회사 버스들이 순서에 따라 배차될 뿐이다. 굳이 경쟁을 꼽으라면 객실 서비스 정도인데 비좁은 공간에서 소수 승무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에서 차이가 클 수 없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차량 색상을 달리한다고 마음을 바꿀 어른도 없을 것이다. 결국 서울 북부에 사는 나는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강남에 사는 내 친구는 수서역에서 탄다. 왜 굳이 회사를 설립해 임원과 직원들을 별도로 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공기업이라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면 걱정 마시라, 이미 KTX는 저가항공, 고속버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도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잘 운영되고 있는데 동일 기술, 동일 차량의 회사를 복수로 설립하는 것, 이게 바로 비효율이다.
그런데도 왜 수서발 KTX 분리를 고집하는가? 민영화를 위한 사전조치이다. 민간자본이 참여하지 않으니 민영화가 아니라고? 정부는 국민연금기금 등 공적자금만 참여하니 민영화 논란이 완전히 불식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영화의 본질은 해당서비스의 운영 원리에 있다. 운영 주체가 공공이든 민간이든,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면 민영화로 보아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은 용도가 국민의 노후예탁금일 뿐 자산운용에서 민간펀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시장수익률을 넘으라는 국민연금법의 명에 따라 민간펀드들과 경쟁하고 있다. 수서발 KTX에 국민연금기금이 투자할 경우 한국철도공사에는 적용되지 않는 수익을 보장해주어야 하고 그만큼 국민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다음 수순은 공적자금 자리에 민간자본이 들어오는 일이다. 정부는 공적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공공부문에만 양도하도록 정관을 정했다는데 이는 투자자들의 지분 매각을 금지하는 위법적 조항이어서 무효일 수 있다는 게 법률가들의 의견이고, 게다가 이사회가 정관을 개정하면 바로 무력화되는 조항에 불과하다.
어제 철도공사 이사회의 결정은 철도민영화로 나아가는 꼼수를 애써 모른 체하면서 일단 ‘저질러 놓자’는 무책임한 행보다. 조만간 한국철도의 기둥으로 자리 잡을 수서발 KTX가 수익성에 종속되고 민간에 넘겨질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이 이렇게 경솔하게 진행될 순 없다. 낙하산 떡고물, KTX 민영화에 눈독을 들인 사람들에게야 오랜 숙원사업이겠지만, 철도산업의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한국철도의 주인인 국민들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철도공사 사장은 국민 불편을 강조하며 파업을 용납할 수 없다는데, 난 기꺼이 이 불편을 감수할 것이다. 신분의 위협을 무릅쓰고 나선 철도조합원들에 비하면 이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다. 철도민영화를 함께 막는 시민의 협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