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가니’ 이후 5년 만에 ‘높고 푸른 사다리’(한겨레출판)란 장편소설을 들고 독자를 다시 찾아온 작가 공지영. 폐쇄된 공간, 가장 힘없는 약자를 대상으로 자행된 잔인한 성폭력을 거침없이 써내려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그가 이번에 들고 온 새 소설의 화두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거르고 걸러내 결정만 남은 듯한 순수한 ‘사랑’ 그 자체다. 신작 소설을 앞에 두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높고 푸른 사다리’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출간한 지 얼마 안 돼 거침없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 주요 문고 판매 순위에서 상위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도원을 배경으로 젊은 수사들의 고뇌에 가득 찬 사랑이 펼쳐지는 소설은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사랑 앞에 선 자의 한참의 머뭇거림과 느긋한 전개는 스피드 중심의 세상과는 어울릴 법하지 않은데, 도대체 소설의 무엇이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걸까. 작가의 답은 명료했다.
"사랑은 부족하고 섹스는 넘쳐나는 세상, 그래서 사랑은 물론 양질의 섹스조차 못하는 세상"이기에 진정한 사랑에 대한 결핍감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 세상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형식만 있을 뿐"이라며 "사랑은 이미 하는 순간 다 이루어지는 거고 완성돼 있는 것"이란 작가의 굳건한 신념이 더해진다.
"혹 강연을 할 일이 있으면 9·11테러 당시의 예화를 들곤 한다. 생사를 가르는 찰나의 순간, 가족에게 보내는 마지막 문자 메시지에 ‘엄마가 죽더라도 하버드는 꼭 가거라’라거나 ‘어떤 주식을 사고, 팔아라’ 그런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다. 모두, 일제히 ‘사랑한다’는 말들을 했다고 한다. 우린 지금 그것을 놓치고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게 천만금이 있다 한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 소설을 다 쓰고 나서 그 진실이 한층 명확해졌다. ‘사랑’은, 한마디로 말하면, 우주의 다른 이름, 생명의 원리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게 바로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까지 다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바로 지옥일 거다. 비록 노숙자라 할지라도 강아지 한 마리를 사랑하고 돌봐주는 마음이 있다면 그에게 세상은 분명 달라 보일 것이다."
"신경숙씨의 ‘외딴 방’이나 ‘엄마를 부탁해’처럼 자기 얘기에서 출발하지 않는 작가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얘기가 그 사회에서 얘기될 만한 가치가 있을 때 최대한 소설적 전형성을 살려 쓰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고백이나 체험적 수기와 다른 점이다. 때문에 시대 속에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내가 했던 행위가 그 시대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해석하고 글로 구현하는 게 바로 작가의 힘이다. 소설적 진실이란 정확히, 딱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현실에서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원래 작가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딱지’를 붙이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낮기에, 그런 맥락에서 난 분명히 페미니스트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어도 페미니스트가 됐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데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타고난 성 때문에 차별하고 터무니없이 비하하는 행위에 대해 아주 많이 분노하곤 한다. 작가 앞에 ‘여성’을 붙이거나 외모를 거론하는 것 자체도 성차별이다. 강연할 때 종종 내게 ‘선생님도 차별을 느끼세요?’ 묻는 이들이 있다. 물론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이혼 사실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다. 보수 언론들이 날 미워하는 것도 내가 진보적 성향이라서기보다는 그들이 마초적 성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작가들이 모두 조신하게 생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만으로 숨어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의 조폭 수준 문화는 나 같은 여성이 나대는 걸 참지 못할 거다.(웃음) 사실 사생활로만 얘기되기엔 내가 우리 문학에 공헌한 것이 좀 있지 않는가."
"대선 당시 막내가 중2였는데, 처음엔 사춘기라 심한 반항에 우울증이 겹친 줄 알았다. 아이들이 내색을 안 해 몰랐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내 트위터에 달린 댓글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그것이 국정원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짓이라는 걸 알고 더 분노했지만, 한편으론 안도했다. 나를 향한 댓글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내가 밖에서 마주치는 멀쩡한 보통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섞여 있었다면 정말 그 악의에 죽고 싶었을 거다. 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토록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는 공격의 황폐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의 힘이 센 줄은 알고 있지만, 정말 심했었다. 후에 나에 대한 댓글이 국정원 작품이란 것을 보도한 신문 기사를 막내에게 보여주면서 같이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아이는 ‘응, 그래?’ 정도의 반응이었지만, 아이의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을 직접 만나면 작품에 집중 못해 피곤한데, 트위터는 오히려 날 (집 밖으로) 안 나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 정치적인 얘기는 재미없고, 부질없이 웃겨서 빵~ 터지게 하는 그런 재치 있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걸 못하게 하는 이 현실이 싫다."
http://www.womennews.co.kr/news/63652#.UqVIOzWwf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