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오년만에 목욕탕엘 갔어요.몸 담그고 때 미는 거 좋아하지만 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공중 탈의실 머리카락 돌아다니고 수돗물 막 틀어놓고 다니는 거 보기도 괴롭고 해서 정말 시어머니가 목욕탕 가고 싶다고 하셔도 그 일만은 시누이들한테 미루고 안 가요.
근데 이번엔 친정에 슬픈 일이 있어 치르고 일흔다섯 엄마가 다같이 목욕탕에 가자고 하시는데 여자는 엄마랑 저 밖에 없으니 공중목욕탕 절대 안 간다는 제 신조로 버틸 수가 없어서 가게 됐어요.
목욕바구니를 들고 탕안에 들어가니 바구니를 놓을 자리가 없는 거예요.사람은 별로 없는데 책가방 펼쳐놓거나 책 한권이라도 다 얹혀 있는 꽉찬 도서관처럼요.그래서 그 많은<비었으나 비지 않은 빈 자리들> 중 물건이 적게 놓인(긴 샤워타월이 세수대야가 담가져 있는) 자리와 그 비슷한 옆자리 해서 엄마랑 나란히 앉아 한 사십분 엄마도 씻겨 드리고 몸을 씻었어요.물론 자리 주인이 오면 언제고 옮겨 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죠.
거의 다 마쳐서 마지막 비누칠을 하고 샤워기로 헹구고 있는데 한 육십대 투투처럼 생긴 아주머니가 우리쪽으로 오길래 자리주인인가보다 싶어 마음이 급해졌지요.근데 그 생각을 하는 일이초 동안 저한테 온 그 아줌마 대뜸 "아니 남의 자리에 이렇게 함부로 앉음 어쩐대~?"
"아 여기 자리세요?안그래도 갈 참인데요..^^;;빈 자리가 없어서 오실 때까지 좀 씻었어요"
그랬더니 이 아줌마 얼굴이 더 심술궂어지면서
"아무리 자리가 없어도 그렇지 이렇게 내 물건으로 표시까지 해두고 갔는데 이러는 법이 어딨대~~??"
아니 그 자리 아니라 다른 자리도 자기 물건으로 표시 안해둔 자리가 없는 걸 어쩌냐고요;;
서로 벗은 채 긴 말 하기 싫어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하고 엄마 자리로 합쳐서 옹크리고서 마저 헹구는 동안도 투투 눈알처럼 희번덕 노려보면서 입술이 계속 움직이는 걸 보니 뭐라 탓을 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 사람은 차라리 돈 두배쯤 더 내고 프레스티지 때자리석을 끊어서 사우나나 담금탕속에 들어갈 때 자기 자리 수도꼭지나 샤워기를 뽑아 갖고 들어가든지 하는 방편을 만들어줬음 좋겠단 생각이네요.
목욕탕 자주 가시는 분들은 저런 경우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물건은 놓여있는데 사람은 없는 자리 뿐일 땐 저처럼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