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른 중반의 아이엄마이고요.
제가 살아온 인생을 짧게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누군가에게 특히 가족에게 인정받아본적이 없어요.
제가 크게 잘하거나 한일은 없지만, 잘하는것에 대한 인정이 아닌
감정이요. 감정을 공감받아본적이 거의 없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이 공감받는것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는걸 알았어요.
내가 슬프거나 힘든일을 겪을때, 아무도 몰라준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너무나 힘이듭니다.
특히 내가 진심을 내비췄을때, 그것이 어리숙하든 아니든. 상대방이 그 진심을 몰라줄까봐 힘이들고,
그래서인지. 내가 진심을 보였을때, 사람들의 반응..이 항상 나를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적인 특성이 아닐까요?
저만 그런것이 제가 이상한게 아니라는것을 확인받고 싶은것 같아요.
즉 제가 못난것이 아니다.. 너는 그럴만 하다..
자라온 환경을 짧게 말하면,
아버지는 자기 멋대로였고, 어머니는 헌신적이였지만, 고집이 쎈 아버지보다 어찌 보면 고집이 더 쎄셨죠
고집쎈 아버지를 고치려 했으니 말이죠.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버지에 대해 대응을 못하셨지만,
늘 뒤에서 이렇게 저렇게 말을 많이 하셨죠.
"너는 안됀다. 너는 틀렸다" 제가 늘 제 아버지께 들어오던 부정의 소리입니다.
친 오빠는 청소년 시절부터 어긋나기 시작해서 문제아 였고, 무서운 아버지를 피해, 엄마가 뒤를 봐줬습니다.
전 엄마를 힘들게 하는 그런 오빠가 너무나 싫었고요.
행복하지 못한 우리 가족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매일매일 오늘은 집에서 또 무슨일이 일어날까 마음 조리며 살았고,
방에 갇혀서, 밤새. 아버지가 엄마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두분이 싸우는(거의 아버지의 폭언.)이야기에
잠도 못자고 귀기울고 있으면서, 불안했습니다. 아버지가 폭력을 마구 행사하거나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부정적인 말들로 어린 저는 그런것이 너무나 무서웠어요.
"다 뿔뿔히 흩어져서 살자" 우리는 안된다. 불을 질러 버리겠다. 말하시다가 성에 못이겨 집안 물건을 부수기도 하고.
전 그 소리들이 너무나 듣기 싫었지만,
아버지가 엄마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앞에 웅크리고 앉아 항상 만일을 대비하고 있어야 했고요.
방안에서 혼자 울고, 침대에 머리 박고, 그렇게 늘 밖에서 두분은 싸우시고, 난 작은 방에 갇혀 언제 아빠의 호출에
불려나갈지.. 울다가 잠들었다가, 갑자기 아빠가 일어나라고 해서, 혼난적도 있고, 고등학생 정도 되서는
그런 아빠와 많이 싸웠네요.
제발.. 싸우지 말라고, .. 차라리 이혼했으면 했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올때, 엘레베이터가 우리층에 눌러져 있으면, 아빠가 온것이기에, 들어가는것조차 두근거렸습니다.
성년이 되어서는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밖에 놀이터를 배회하다가 들어가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아무리 작고 몸이 힘들어도. 그저 맘편히 지낼 단 한평의 공간이라도 있었으면 하는것이
최대의 바램이였습니다.
오빠는 일찍이 집을 나가서, 밖에서 계속 사고를 내고 다니고, 그 사고가 터질때쯤 되면 집으로 연락이 오곤 했지요.
그런일이 아빠한테 발각이 될때마다. 집은 난리가 됐고요. 그걸 집에서 나와 엄마가 다 받아내야 했고
오빠가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오빠가 사채를 써서, 사채업자들 제 회사로 전화오고. 집으로도 오고,
난 아빠가 알게 될까봐 사채업자들보고 집으로 전화하면 가만안둔다고 싸우다 쌍욕듣고...
남동생은 군대를 다녀오고, 호주로 어학연수 1년정도 가있었고
아들들은 집을 피해 있는 시기가 있었지만, 저는 여자라는 이유로 독립도 힘들었고,
그 힘든시기를 온전히 아버지의 분노를 다 받아내며 지내야 했습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었고,
도움 청할 곳도 없었고,
대학때 10시 넘어 집에 들어왔다고 쫓겨나서 추운 겨울 밖에서 밤을 지내다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친구들은 계속 놀고 들어가자고 하고, 저도 놀고 싶고, 대학생때, 그렇게 조금늦게 들어가면,
저는 정말 목숨걸고 집에 들어가야 했지요. 친구들은 그 10시라는 시간을 이해못했고, 저는 늘 움츠려 들어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 같은건 꿈도 못꾸고요. 그 어떤것도 도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한번은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또 쫓겨나서, 추운겨울에, 집근처 교회에서 잠을 잔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도 반겨주지도 않는 그 집에 내가 왜 들어가야 하나 그랬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감정들 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 지난 일이니깐요.
아빠 없을때 몰래 집에온 오빠와 너죽자 나죽자 싸우고, 난 정말 힘들다.. 울고 불고 했는데,
오빠는 오히려 더 화내고, 니가 뭔상관이냐고,,,,, .. 니가 뭔상관이냐고... 그런말을 들을때마다,,
난 제발 내가 상관안하고 살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정말 미칠것 같았는데,
그때의 늬앙스가, 너보다 더 힘든 인간들 많다... 니가 뭐가 힘드냐..
즉 저는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을 무시당한 기분이였습니다.
오빠는 내가 자기에게 퍼부으니깐 나를 때렸지요. 맞은것은 아프지 않았지만, 내 눈물은 이 인간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습니다.
이때가 20대 초였던것 같고, 그 후로는 서로 몸싸움까지 하지는 않은것 같으나,
제가 결혼해서 아이 낳고도, 오빠는 정신 못차리고 몇번의 사고를 쳤고, 그럴때마다, 나와 둘이 감정이 격해지면
욕하고,, 그랬지요.. 그 후로는 오빠인생 오빠 인생이나 왠만하면 신경안쓰고 살자 주의 였고, 정말
엄마와 연관된 것만, 참다참다 폭발해서 싸우곤 했습니다.
청소년때는 아빠가 많이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지만, 성년이 되고, 내가 돈벌이 하고 살면서,
언제든 나는 돈을 벌어 나갈수 있다 독립적으로 살겠다, 맘 품고 살았습니다. 악착같이 돈 모았지요.
그런데 아빠가 제발 이제 그만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는 6.25 직후에 태어나서, 학력이 짧았고, 뭔가 이루고 싶은게 많은데, 그걸 못해서 늘 답답해 했기 때문에
무슨일을 할때마다 제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가 광고 쪽에 일을 해서, 무슨일을 시작하실때마다
저에게 갖가지 일을 시키곤했지요. 문서작성부터, 여러가지 컴퓨터로 해야 하는 일들. 전단지 만들고,
가진건 없는데 상품개발을 계속했고, 그 뒤치닥 거리를 제가 다했지만, 늘 만족하지 못했죠.
저는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가면, 아빠는 저한테 일시킬거리를 잔뜩 쌓아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직장은 아주 빡센곳이였고, 집에가면 저도 좀 쉬고 싶었지만, 아빠는 그런건 아랑곳 하지 않았고,
자기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지요. 일 시키다가 자기 수에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크게 화를 내고
내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화를 내기 시작해서, 술을 드시기 시작하고, 그리고 그 후엔..
밤을 꼬박세워,, 아빠의 술주정을 감내해 내야 했습니다. 본인은 새벽까지 자기 화풀릴때까지.
때려부시기도 하고, 무서운 말들을 하기도 하고, 힘든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니가 뭐가 힘드냐.. 였지요. 그리고, 너는 안돼.. 너는 틀렸어..
제가 힘들어하면, 늘.. 니가 뭐가 힘드냐...
어쨌든 아빠가 개발한 상품을 제가 홈페이지까지 만들고 나름대로 브랜드를 만들어보려고
직장다니면서, 그렇게 노력을 했지만, 결국 저의 노력은 한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왜 이렇게 까지 밖에 못하냐.. 늘.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전문대 나왔고, 고 3 때도, 아빠가 늦게 들어왔다고, 제 교과서를 다 태워버렸었습니다.
공부하던 컴퓨터도 아빠가 자기 말 대로 안해준다고 뿌셔 버려서, 과제도 제 때 내지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하던 일도 다 날아가 버리고,
제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한건 내 잘못이지만, 고등학교 졸업앨범 찍을때도, 밤새 울다가 퉁퉁 부어서
가지 못할뻔 한것을 겨우 가서 단체사진 찍었습니다. 남들 고 3이다고 집에 왕자 공주 노릇할때 .. 저는..
그런데, 아빠는 저에게 늘 너무 큰 것을 요구 했지요.
결혼해서, 아이 임신했는데도, 계속 일을 시켰습니다. 이거 해달라 저거해달라. 그리고 바로 안해주면
엄청나게 화를 냈고, 저는 정말 괴로웠습니다.
암튼.. 그러다 아버지는 결국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간암으로.. 오랜 병원 생활을 하는중에도
계속 저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하고.. 저는 그런 아버지 둘째 임신중에 아르바이트 해서 돈벌어서
병원비 댔지요.
엄마는. 제가 노력한것을 알아줄지 알았는데, 재작년에 이야기 도중. 그렇지 않다라는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어린애들 키우면서 나의 내적인 문제 어린시절부터 쌓아온 분노때문에 힘들다고 했더니
내가 너한테 그정도면 잘해줬는데,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러냐.. 이러시더군요.
저는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다를줄 알았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벌어둔 돈 전부 친정에 반납하고, 제발 돈돈 하지 말라고 다 드리고 왔습니다.
많이 부딪혔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일. 제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해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늘 불만족이였습니다.
그냥 가족들이 , 그래 너 수고 많이 했다. 힘들었겠다.
딱 이 말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제가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
남동생도, 호주어학연수 갈때 제 통장에 있던 얼마 안되지만, 부모님 드리고 남은돈 몇백만원 털어주었는데,
그리고, 그 아이가 상처 받지 않도록 중간에서 많이 노력했는데,
결국, 자기가 더 힘들었다고 하네요.. 누나만 힘든거 아니다고,
결혼전에 정말 지금껏 참아왔는데, 아버지가, 정말 저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하셔서, 잠깐 집을 나간적이 있었는데
동생은 아마 그것때문에 내 멋대로 했다고 생각하는걸까요?
그래 안다. 너 힘들었던거,, 내가 겪은건데 그걸 모르겠니.
그래서, 내가 널 늘 걱정하고, 니 앞에서 웃으려 노력했는데,
집안의 힘든일 아버지 돌아가셨을때도, 만삭의 몸으로 아들들이 할일까지....,
남동생은 그런거 전혀 모르네요.. 누나만 힘든거 아냐. . 이 소리를 하며
내가 울며 지금 너무 힘들다고 내 애기좀 들어달라고 애원하는데,
아무도 제 애기 들어주지 않더군요.
그 후로, 2년 째 친정식구들과 정말 필요한 말만 하고 살고 있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쓰는 이유는.
정말. 가족들 말처럼.
저는 힘들어 하면 안되는걸까요
세상에 더 힘든 사람들 많고, 나만 힘든거 아니고,,,,,,
사실 여기서조차도,
댁보다 더 힘든사람 많아요.. 이런 애기를 들으면,,
물론, 제 애기를 다 쓰지는 못했지만,
제가 다 잘한건 없겠지요. 저도 어리석은 중생이고,, 가족들에게 그렇게 목메여 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시절.. 부모님은 저에게 절대적인 존재였고, 형제들의 일들이 저의 행복을 좌우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일에 일일이 관여하고, 제발 잘 살자고, 제발 싸우지 말고, 우리도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애절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것을 알았고,
지금은 그렇게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제 가슴속에는 어떤 덩어리같은게 남아있네요.
그래서 그것이 가끔씩 터지네요..
그리고 그런 분노가 내 아이들에게 가지 않게 하려고,, 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듣고 싶은말은..
아니.. 태도는.
우선은 제가 이해가 안된다 할지라도, 내 감정을 받아주고,
감정은 받아주고, 그 다음.. 충고와 조언을 들었으면 좋겠는데,
힘들어서, 집단상담비슷한것을 시작했는데, 거기서 조차도,, 너가 엄마인데 그러면 안된다. 라는 행동지침만...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 앞에 놓고, 지난일에 매달리면 안된다..
그래요. 잘알아요 누구보다도, 내 아이들에게 좋은 유년시절을 주고 싶은 나니깐요.
그런데, 저의 가슴속 덩어리는 풀어지지 않네요.
누군가.. 제가 울면서 애기하면, 그 말이 뭐가 됐든.
니가 지금 매우 슬푸구나. 니가 지금 매우 힘든 상태구나.. 이걸 먼저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저의 경우는 어떤 하나의 큰 사건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온 일들이라,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내 마음은 응어리가 져 있어서, 마구 눈물이 나오는데, 나오는 말로는 사람들이
그것보다 더 큰 일 겪은 사람도 있는데 뭘... 이렇게 나오거나 그럴까봐... 진심을 털어놓으면 너무 힘든 상황이 됩니다.
임신중에 남편이 바람펴서, 이혼한 사람. 자식이 학교 폭력 당한 사람. 기타 등등.
다 힘든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늘 비교 되어서 어리석은 사람으르 비치는 것도 힘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