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혹시라도...저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언젠가 미국에서 자폐아를 대하는 일반 시민에 관한 영상을 본 후, 글을 올렸었던 사람입니다.
그때 좋은 의견들 주시고 많이 공감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베스트 글에 올라온 글과 수많은 댓글을 보면서..하루 넘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일단 저는 18살된 발달장애(자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 캐나다에 이민 온 지 13년 된 사람입니다.
운이 좋아(?) 아이에게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실은 지난 여름에 3년만에 한국에 다니러 갔어요.
보통은 3-4주 정도 머무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이런저런 여행 일정이 잡혀 있어서 6주라는 긴 시간을 한국에서 지냈습니다. 저에겐 도전이었죠. 이 아이를 데리고 전국을 누비며 여행을 하고....아시죠?^^
그런데 3년만에 간 한국은 여전히 같은 것과 그래도 바뀐것들이 있더라구요.
역시 밖에서 있다 들어간 제가 느끼는게 조금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하여 오늘 글을 올려봅니다.
일단 가는 곳마다 장애인 화장실이 생겨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가족용(family)이 아니라서, 여자 화장실에 데리고 가야 하는지, 남자 화장실에 제가 들어가야 하는지
조금 난감 하더라구요. 혼자서 척척 일처리를 하는 녀석이면 좋겠지만
때로는 도움이 필요하기에...가족용이 있으면 정말 좋거든요.
그래도 뭐..박물관, 도서관, 각종 놀이공원 어디든 장애인 화장실이 생긴 것을 보고 일단은 흐믓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요. 이런 좋은 시설을 이용하기에는 일반인들의 의식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제 아이는 참을성이 우리보다는 적습니다. 상황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통제력이 약하기 때문에 곁에서 지켜보는 제가 참..힘들때가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장애인 화장실은 늘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남자 화장실엔 사람들이 많아 들어가면 줄을 서야하는데, 제가 같이 들어가지도 못하고..ㅠ.ㅠ.
녀석을 혼자 들여보내서 줄 서서 일을 보게 하기엔 불안하고...
그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 녀석이 제대로 대쳐할 수 있을런 지..
그런데 왜 멀쩡한(!!) 사람들이 장애인 화장실에서 유유자적 볼 일을 보고 있느냐는 겁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장애인이 사용해야 되니 나와 주세요."라고
민망함을 무릅쓰고 말씀을 드려도 못 들은 척 안 나옵디다. 그럼 또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우르르 와서 구경합니다.--;;
그러다가 한 참 지나서..이젠 갔겠지..하고 나오는데 저랑 딱 부딪히니.." 저쪽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이럽니다.
우리 아인 괴로워서 어쩔 줄 모르구요.
옆에 있던 5학년짜리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속 상하고 답답하고..한국 사람들이 싫다고 합니다.
저도 참..곤란해 집니다.
간만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좋은 역사체험도 하던 차였는데...
모두가 저런건 아니잖니...어쩌다 저런 아저씨가 있는거야..해도 아이의 울음은 그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오빠를 이상한 시선으로 계속 쳐다보냐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오빠가 조금 몸을 흔든다거나 시선이 산만하거나 안절부절 못하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아들에게로 쏟아집니다. 그 시선은 도움을 줄까... 하는 시선이 아닙니다.
아이고..어쩌다 저런 아이를 낳아서..쯧쯧쯧...하는 동정어린 시선입니다.
저도 처음엔 적잖이 당혹스러웠지만, 한국에서 30년을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쿨하게 넘기고 그러려니 하는데,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11살짜리 딸은 견디지를 못합니다.
전혀 그런 시선이나 대접을 못 받다가 한국에서 그런 상황을 접하니, 아이가 괴로워서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 오빠가 어때서?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냐고...때로는 "그렇게 보지 마세요."라고 야무지게 말도 하더군요.
이것참...힘든 일입니다. 그 난감한 상황에서 제 자신의 감정을 잡으랴, 딸아이 달래주랴,
정신없는 아들 건사하랴....
음...한국에서 장애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외출하는건
캐나다에서 하는것보다 딱 10 배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차들은 양보하지 않고 주차장에선 사람보다도 차들이 앞다퉈서 질주하고
사람들은 동정어린 시선을 계속 보내주고..막상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선 그냥...계시고..
사실, 베스트 글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저는 원글님을 그렇게 나쁘게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인간이잖아요. 주변에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 보고 부럽다가도
그래..나보다더 돈 없는 사람도 있잖아..하고 힘을 내듯이,
내 아이가 최고가 아니고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해..속상해 죽겠는데,
장애아를 보게 됩니다. 참..힘들겠구나...그래도 나는 저것보다는 안 힘들지.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를 죄악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장애아를 키우는 저는 힘이 듭니다. 왜냐?
몇 년만에 용기를 내어 딸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또 모든게 수월합니다.
공부도 잘해, 마음도 따뜻해, 예의도 바르고 이쁘기까지 합니다.
이것 참...같은 부모가 똑같이 사랑하는 맘으로 낳았는데 저만 봐도 이렇게 다른 두 아이를 낳았잖아요.
복불복인가요? 자식은? 장애는 정말 랜덤인가 봅니다.
그 글의 원글님네 경우처럼 저희 부부도 공부 할만큼 했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크면서 어려움 없이 여유있게 자랐고..외국 생활도 해 보고...하여간 축복속에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았는데..그랬습니다.
물론 처음엔 절망하고 힘겨웠지만, 살아가면서 적응하게 되고 노하우도 생기고
오히려 조급하던 제 성격은 더 느긋해지고 담담해지며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부모님은 그러십니다. 우리 아들이 없었으면 여전히 저는 더 교만하고 편협한 인간이었을꺼라고..
그래서 또 감사하네요. 우리 아들은 저희 부부에게 모르던 세상을 알려 주었거든요.
나를 낮추고 섬기면 더 큰 기쁨이 온다는 것을요.
이거, 제가 농담삼아 우리 남편이랑 하는 얘긴데요.
둘째 딸을 키워보니, 아들 키우는 노력의 1/100 도 안 듭디다.
천재 나왔는줄 알았어요. 뭐든지 알아서 척척 배우고 습득하는데..캬~! 하다 보니
우리도 그랬던 거였어요. ㅎㅎ
그런데 아들을 키우면서 느낀것은 이렇게 어렵게 배우고 알아가는걸
우린 너무 쉽게 습득했었구나...그걸 감사할 줄 몰랐었구나..하는 것이었어요.
우리 아들 키우면서 힘이 든건 맞지만, 솔직히 말하면 딸애보다 더 깊은 정이 들어 있습니다.
끝없는 스킨쉽과 18년이 되도록 계속 이어지는 눈맟춤, 대화를 할 때는 꼭 눈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면서...말투 또한 부드러워 집니다.
이상하죠. 왜 저는 아들 바보가 되었을까요??
이 아이는 잔 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순수, 그 자체입니다.
거짓말도 모릅니다. 사실, 말도 잘 하지 못하니까요. 단답형, 또는 2-3마디로 짧게 이어지는 대화지만
저는 이 아이가 저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엄마 좋아해.." 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그 누구가 저에게 이런 진심어린 사랑고백을 끊임없이 하겠어요?
그것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나이에 말입니다.
저도 이제는 그리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엔 단풍 구경을 다녀왔는데요. 보통 이 정도 나이 되면 아이들이 부모따라 여행을 가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언제까지고 이 아이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평생 친구처럼 함께 할 수 있잖아요?
저 늙어서 심심치 말라고 이런 아이를 주셨나봐요.^^
바쁘게 아 아이와 생활하다보니 살찔 틈도 없고, 함께 영어 책을 읽어주다보니 제 영어실력도 늘어 있고,
밖에 나가는걸 좋아하는 아이와 매일 한 두시간씩 걷다보니 제 건강도 아주 양호합니다.
모든건 생각하기 나름인것 같아요.
다른 집에 장애아이가 있다고 해서..불쌍하다..가련하다..는 일방적인 관점으로 보실 필요도 없구요.
그냥...저 집도 우리네들 처럼 여러 다른 사람들 중에 하나이구나...로 담담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이 세상에 비교하자면 비교할것이 어디 한 두가지인가요?
다름 속에 조화가 있는 것이고, 함께 어울려 사는 의미도 있지 않겠어요?
저도 이렇게 장애아를 키우며 살게 될지는 한 순간도 상상한 적이 없었는데
이미 일은 발생했고..
이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행복하게 사는게 또..저의 삶인 겁니다.
82에서라도 우리 회원님들이 조금 더 넓은 아량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주시면 좋겠어요.
동정받기도 싫지만, 뭐가 달라. 우린 똑같아..사실 이건 아닌거..알거든요.
그래서 그 글을 쓴 원글님을 힐난할 마음도 전혀 없구요.
댓글쓰시며 분개하셨던 님들의 미음도 헤아려져요.
에고 참...인생 사는게...쉬운게 없어요.
그렇지만..늘, 감사할 일은 있겠죠?^^
어제 날씨가 좋아서 집 뒤 숲속에 산책을 나갔는데...큰 개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이웃들이 마주칠때마다 미소지으며 우리 아들에게 "Hi" 라고 인사하며,
기분 좋다고 막 뛰어가는 우리 아들을 보며..."여전히 바쁜 아이네? 기운도 좋아." 라고 농담하던
이들의 여유가 저는 좋습니다.
조금 이상한 몸짓으로 흔들며 산만해도 그냥 미소지으며 인사하고
날씨 참 좋지? 라고 말 걸어주는 그 작은 여유가
삶에서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지..적접 겪어보지 못한 분들은 모르실껍니다.
그런게..저에겐 소중한 행복 중 하나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