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학교 2학년때 저희집 앞쪽에 고등1학년 오빠가 이사를 왔어요.
작은 시골 동네라 얼굴보면 서로 인사하는 정도로 지내고 그랬는데 자주보고 그러다보니 오빠라는 호칭을쓰며
그런대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어요.
저는 집에 친오빠가 있고 그래서인지 오빠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편이었어요.
더구나 우리집은 오빠친구들의 아지트처럼 되어있어서 항상 오빠들이 넘쳐나는 집이었거든요.
(그당시 우리오빠는 고등2학년-현재 오빠는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앞집오빠는 누나들만 몇명인가?있고 막내여서 그런지 오빠라고 부르는 작은 여자아이가
그냥 귀여웠나봐요.
저도 막내였는데 저는 집에서 부르는 별명이 있었어요.(키도 체구도 작아서 거기에 따른 별명이에요)
그 오빠도 늘 제별명을 부르곤 했어요.
1년인가? 2년후쯤 그오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당시 제가 어려서인지 위로도 잘못해주고,
몇일후 장례식을 치르고 온 오빠를 보고 "많이 슬펐지 오빠" 라는 얘기밖에 못했어요.
그때 오빠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너가 많이 보고 싶더라 는 말을 했어요.
아마 그아버지가 제 기억으로 나이가 굉장히 많았었어요.
그말을 듣고 속으로 많이 놀랐어요. 왜냐면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나이가 어리면 부모님의 존재가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나봐요.
그리고는 어렴풋이 저오빠가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했어요.
그오빠의 친구들, 그리고 우리 친오빠의 친구들 주변에 오빠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남자들에대해
호기심도 별로 없고 또 우리 친오빠가 여동생이 하나라 저를 엄청 단속을 하고 친구들이 제주변을
어슬렁 거리게 하지를 못해서 저는 여자 친구들하고만 깔깔거리고 재미있게 10대를 보냈어요.
몇년후 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그오빠는 대학을 간걸 알았어요.
직장 다니던 시절 어느날 앞집 오빠의 친구가 제 직장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한번 만난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오빠들의 소식도 듣고 앞집오빠도 한번 보게 되었어요.
오빠는 대학생이고 저는 직장인이고 다시보니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다시 예전처럼 편안하게
웃으며 얘기하고 헤어졌어요.
(1987년 정도라 기억이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오빠들한명중 누나 결혼식인가 여서 울산에서 만났던것 같아요)
그당시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제회사 전화번호가 만남이 이어지는 유일한 수단이었는데
저희 경리과에 노처녀 언니들이 몇명있었어요.나이어린 꼬맹이한테 남자들이 전화가 오니 제가
외출하고하면 없다고하고...나중에는 그만 뒀다고 전화를 받은거였어요.
거래처 남자직원들이 전화해도 목소리를 잘 못알아듣고 그렇게 얘기한거에요.
잘다니는 사람을 그만뒀다한다고 얘기해서 나중에 알았죠.
그런식이 몇번되니까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어진거에요.
그리고는 33년 정도의 세월이 흘러 저는 이제 50이 다가와요.
올해봄에 그오빠한테 전화가 왔어요.
예전 어릴때 제별명을 부르는 소리를 전화기로 듣는데 단박에 누군지 알겠더라구요.
제가 너무 궁금해서 몇년을 수소문해서 알았다는 거에요.
저는 동창회도 나가지 않아서 지금도 친한 친구들하고만 연락하고 지내거든요.
저희 시골학교 동문회까지 오빠 친구들과 저를 만나려고 찾아갔었는데 동문회도 안나와서
헛탕치고 그렇게 서울로 돌아갔다구요.
전화통화후 두달정도 지나고 오빠가 동창회를 하러 시골에 와서 처음으로 만났어요.
오빠친구들도 여러명 같이 만났구요.
저희 친정오빠 사망 소식도 알고 있다라구요.
오빠는 공기업에 다니고 저는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구요.
예전에 알던 사람을 나이들어 보면 실망한다고 하던데 저는 오빠를 그리 기대하고 있지 않아서인지
예전이랑 많이 다르지도 않아서 실망하지도 않았지만 저역시 얼굴이 잘안변하는 스타일이라
오빠도 저를 보더니 시간만 33년이 흘렀지 그대로라고 하면서 저를 쳐다보는데 어린 고등학교때
쑥쓰럽게 저를 쳐다보는 그오빠랑 똑같았어요.
그오빠가 그당시 공부를 잘했어요,예나 지금이나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 묘한 관심이 있어요 .제가
몇일전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갔다 오빠를 연락해서 다시 만났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항상 제가 행복하게 잘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살았다고,제가 오빠맘을 평생 아프게 했던
한사람이었다는 얘길 듣는데 ...마음 한편이 참 미안하고 고맙고 그냥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더라구요.
저는 지금의 남편과 친구처럼 아주 편하게 잘지내고 있어요.
오빠 친구들 얘기로 오빠도 부인이 아주 좋은사람이라 하더라구요.얼굴에서 그렇게 느껴졌어요.
부인 나이는 저보다 2살 어리고 같은해에 오빠도 아들을 저도 아들을 낳았더군요.
저는 결혼하고 4년후에 아이를 낳았으니 결혼한 년도는 다르겠죠.
오빠 만나서 저녁먹고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그냥 왜그렇게 모든게 미안하던지...
그런데 오빠는 나한테 자꾸만 미안하다며 뭐라도 사주려고 하는지...
사실 모른척 오빠맘을 아는데 모른척하며 신경안쓰고 오빠 마음을 너무 몰라준 사실이 미안한거였어요.
오빠도 저도 좋은 배우자 만났길래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나도 마음에 부담이 없이 편하게 만날수
있는거지 혹시나 한쪽이 배우자랑 사이가 안좋다거나 그런 상황이면 또다른 상황을 연출할
계기가 될수도 있겠다 뭐..그런 생각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을날 시골로 내려오는 차안에서 괜시리 마음한편이 쓸쓸하기도 하고 모든게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네요.
그러면서 남자는 첫사랑을 정말 잊지 못하고 사나보다~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네요.
주절이 주절이 너무 긴글을 써서 읽는데 힘드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