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교회'라는 것을 읽어낼 수 있는 좋은 시 한 편

@@@ 조회수 : 1,141
작성일 : 2013-10-08 03:53:51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

IP : 108.14.xxx.132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패랭이꽃
    '13.10.8 4:04 AM (186.109.xxx.159)

    기형도 시인은 시를 참 잘 써요.
    어떤 일인지 이해는 가네요.

  • 2. 감사합니다
    '13.10.8 8:31 AM (203.247.xxx.210)

    좋은 시 잘 봤습니다

  • 3. 가드니아88
    '13.10.8 9:44 AM (39.117.xxx.239)

    기형도시인은 그리스도인 이었을까요? 성경이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한다는 말 깊이 공감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19046 좀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2013/11/13 335
319045 "상담사도 누군가의 가족"…콜센터 직원의 '처.. 1 무개념인간들.. 2013/11/13 1,019
319044 ugg어그 2 춥워 2013/11/13 1,193
319043 길가다 외적으로 끌리는 상대에게 말 걸어보신 적 있으세요? 2 2013/11/13 1,434
319042 15분 일찍 퇴근했다가 .. 어휴 2013/11/13 795
319041 벙개했으면 좋겠어요 8 ... 2013/11/13 1,099
319040 중학교 배정이요 방법이..... 2013/11/13 494
319039 태국인 친구 출산선물 뭐가 좋을까요? 5 선물 2013/11/13 1,069
319038 인디애나 주립대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18 궁금 2013/11/13 16,808
319037 정석 수1 (2014년형 기본편) 나가면서 병행해서 풀만한 문제.. 3 정석 2013/11/13 978
319036 니가 ‘넘버 투’냐?” sa 2013/11/13 403
319035 노후대비 얼마나 되어 있으세요? 6 늦가을초겨울.. 2013/11/13 3,239
319034 KBS 수신료 인상, 여당 인사 단독 처리 강행하나 2 절대 안 .. 2013/11/13 808
319033 김진태 청문회 중단…‘삼성 떡값리스트’ 나오자 새누리 강력항의 검찰의 지연.. 2013/11/13 750
319032 남편이 지방발령 받았어요... 2 성나저이 2013/11/13 1,734
319031 김무성 신내림 받았나봐요 26 푸하하 2013/11/13 12,875
319030 저를 따라하는 친구 10 ... 2013/11/13 3,808
319029 오로라서 노다지 말투가 넘 싫어요.. 8 .. 2013/11/13 2,430
319028 나쁜짓해서 돈버는 것도 아니고... 2 -- 2013/11/13 673
319027 DKNY 싱글 노처자들 컹온 9 싱글이 2013/11/13 880
319026 고3들 뭐하고 있나요? 8 수험생 2013/11/13 1,625
319025 피부가 너무 칙칙해요.. 1 피부 2013/11/13 1,211
319024 이율 괜찮은 1년 적금 으네 2013/11/13 1,239
319023 서울의 줄 서는 맛집이래요 115 못가 본 시.. 2013/11/13 25,495
319022 남자 성형 어떻게 생각하세요? 13 ㄷㄷ 2013/11/13 2,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