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0일자 한겨레 칼럼입니다.
내가 전교조다
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다. 환갑을 맞는 나는 이른바 ‘일부 몰지각한’ 늙은 교사다. 나는 전교조로 해직되어 10년을 거리의 교사로 보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솜털 보송보송한 ‘중딩’ 아이들과 사랑싸움에 빠져 세상 돌아가는 걸 잊고 지낸다. 그러다 난데없는 소식을 들었다. 현 정부에서 전교조 등록을 최소하겠다는. 그것도 이명박 정부에서 희생된 후배 교사 9명을 전교조가 자르지 않는다는 꼬투리를 잡아서라고 한다. 나 자신이 해직 교사였고, 1500명이 해직되면서 깃발을 올린 것이 바로 전교조의 역사인데 말이다.
해직 교사 9명 때문에 6만명, 24년 역사의 전교조 등록을 취소하겠다고? 치졸하게 꼼수 부리지 말자.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 종의 다양성은 생태계 지속성의 원리다. 의견의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원리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바로 독재요, 죽음의 원리다. 문제는 민주주의다.
한편에서는 전교조에 초심을 잃지 말라고 점잖게 가르친다. 그러나 아이들의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 독재의 하수인으로 거짓을 가르치며 아이들 앞에 부끄럽게 서지 않으려는 초심으로 출범한 전교조에 쏟아붓던 온갖 비난과 왜곡과 끔찍한 탄압을 나는 잊지 못한다. 군부독재정권도 악법도 법이니 지키라고 을러메었다.
전교조를 돌아본다. 어찌 전교조가 다 잘만 했으랴. 올곧은 교육을 바라는 교사와 아이들, 다수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안고 출범한 전교조가 모두의 비원에 얼마만큼이나 답했을까. ‘처음처럼’의 지향을 지키지 못하고 때로는 교사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인성까지 망가져가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 흘리고 밤을 새워 고민하지 못한 때도 많다. 철저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교육이 갈수록 더 병들고 그 깊이만큼 올바른 교육에 대한 절절한 희망이 높은 한 전교조는 6만명만의 조직이 아니다. 전교조는 여전히 많은 국민의 교육적 대안이고, 이미 부정 못할 역사다.
‘전교조 무찌르기’가 공안 전문가들이 본보기로 손보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이 물 건너가면서 국민들 눈돌리기용은 설마 아닐 것이다. 친일과 독재를 은폐하고 독립과 민주의 투쟁을 깎아내리려는 한국사 교과서 출판 같은 교육 정책과는 맥락이 닿지 않은 것이기를 바란다. 해직 교사로 출범한 전교조에 해직 교사가 없던 때는 없었다. 전교조 합법화 이후 14년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하는 보수정권이 국제노동기구에서 수차례 권고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권고한 기준을 외면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나는 아이들과 ‘욕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은 보통 면전에서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하고 뒤에서는 비난하기 일쑤다. 진짜 친구는 면전에서 혹독하게 비판하고 돌아서서는 칭찬하는 사람이다. 욕친구는 내 인생의 ‘소금’이다. 세상도 소금 같은 욕친구가 있어야 썩지 않는다. 제대로 된 언론, 시민단체, 야당 등이 세상의 욕친구다. 쓴소리가 무서워 욕친구의 입을 틀어막으면 반드시 제가 썩는 법이다.
나는 암 환자다. 그것도 지난겨울 두번째 수술을 받은 재발 암 환자다. 10년 해직 동안의 분노와 절망이, 그에 따른 스트레스와 과로가 일단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해직 교사 출신 중 암 등으로 먼저 간 분들이 30명도 넘는다. 지금 내 유일한 희망은, 바깥에서는 최고의 골칫거리들로 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순수덩어리인 아이들과 어우러져 하루하루를 기쁘고 보람차게 살아내는 일이다. 아이들과 사랑만 하기에도 아까운 삼년 남짓 남은 시간이 내게 허락된다면 말이다. 한데 애써 잊고 싶은 세상일이 삶의 켜를 파고든다. 돌아보니 30년 나의 젊음은 몽땅 전교조였다. 내 존재의 밑동을 뒤흔드는 찬바람이 부니 어쩌란 말인가.
신연식 서울 동마중 교사
서명합시다. 여기에서 서명받고 있네요.
전교조 설립취소 위협 중단 백만인 서명운동.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