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중에 저는 막내이고, 저희 큰언니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언니가 워크샵 갈 일이 있어서 초등학생 조카를 저희 집에 맡기기로 했어요.
미리 약속된거라 아침에 언니랑 통화는 안했고 형부가 조카를 데려왔는데 형부 표정이 영 안좋아서
어디 편찮으신가,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물으니 그제서야 형부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힘들다고 그래요.
형부도 오늘 출근하는 날이라 길게 얘기는 못해도 잠깐 들어왔다 가시라고 해서 얘기 들어보니..
언니가 고등학생 큰 조카를 너무 심하게 잡고, 큰 애 혼낼 때 작은애가 옆에 있으면 둘째도 덩달아 심하게 혼나고.
형부가 밤 늦게 퇴근해서 보면 언니도 퇴근해서 소파에 늘어진채로 그대로 있다가 큰애가 시야에 잡히면 또 큰애 잡고..
아침엔 형부가 식구들 깨기 전에 먼저 출근하니 몰랐다가 작은애가 어느날 아침에 엄마가 밥 좀 주면 좋겠다 했다고..
형부 일이 밤 늦게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고 해서 매일 가정 일을 돌보거나 도와줄 수는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저희 형부. 정말 가정적이고 시간만 되면 집안 일 형부가 알아서 다 하고 애들 챙기고 그런 분이세요.
제가 우리 형부 너무 대단하다 느낀게 몇년 전에 형부가 집에서 두어시간 걸리는 곳에 2년 정도 발령받아 주말 부부였는데
그 때 언니가 몸이 안좋거나 애들이 어디 아프거나 하면 어떻게든 반차라도 내고 집에 와서
밀린 청소 빨래 반찬 등등 싹 다 해놓고 두세시간 눈 붙였다가 새벽 첫차 타고 출근하고.. 자주 그러셨거든요.
언니 체력이 안되는걸 저는 잘 알아서 그러지말고 한번씩 도우미라도 쓰지 그러냐 하면
언니는 또 그럴 돈이 어딨냐고 화내고..
돈 문제에서 또 엮어 생각해보면, 정확히는 몰라도 형부 월급도 꽤 되고 집 있고 차 있고, 언니도 일 하고.
언니나 형부 성격에 빚도 없고 검소한 사람들이라 소소한거 아껴도 집안 일에 돈 들어갈 일 있으면
아낌없이 저희 엄마아빠 앞으로 돈 들어갈 일 많이 맡아주고 그랬어요. 물론 사돈댁에도 잘 챙기구요.
둘째언니나 제가 한다고 해도 둘째형부나 저희 남편은 그런 대인배가 못되서 큰언니 하는 만큼은 못하고
늘 큰언니랑 형부한테 감사하는 마음 가지고 있어요. 특히 언니보다도 형부한테요.
아들이라고 막내 남동생 있지만 아직 장가도 못가고 본인 밥벌이 하는 정도라 아들 역할도 못 지워주고
늘 큰 형부가 집안 일 돌봐주고 큰언니가 앞장서서 모임이며 여행이며 얘기 꺼내면 저희가 따르구요.
올 봄에 저희 아빠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사업하고 계시던게 있어서 부모님 생활비는 안챙겨드려도 됐지만
경제적인걸 떠나서 큰 형부한테 저희 엄마도 많이 의지하고 늘 고맙게 생각하세요.
아빠 돌아가시고 엄마가 우울증 비슷하게 생기셔서 저희 식구 모두 걱정할 때
먼저 나서서 장모님 모시겠다고 한 것도 형부고, 주말이면 형부가 애들 챙겨서 엄마 집 가서 한번씩 자고 오고 그래요.
저희 언니는 어떤가 하면.. 효녀이고 효부에요.
형부가 저렇게 저희 친정부모님 챙길 때 언니도 지극 정성으로 사돈어르신들 챙기고 모셔요.
형부가 셋째 아들인가 그러는데 사돈어른들이 다른 아들 며느리 안찾고 늘 저희 언니만 먼저 찾고 그러세요.
언니랑 형부랑 정말 빈손으로 만나 결혼해서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저축하고 애들 잘 키우고 그렇게 살았어요.
저희 조카들도 정말 착해요. 큰애가 고2인데 조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순하고 착해요.
그런데 문제는, 언니가 큰 조카한테 너무 많은 짐을 줘요.
큰애 초등학교 때 까지는 언니가 전업주부로 있으면서 학원 하나 안보내고 싹 다 엄마표로
올백 맞고 전교 회장하고 그랬어요. 영재원도 다녔구요. 중학생 되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면
늘 안고 빙빙 돌고 뽀뽀하고 팔짱끼고, 남자애가 그렇게 곰살맞고 순둥이였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가면서 언니가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큰애가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그러면서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큰애가 한다고 하는데 언니 눈에는 너무 부족해 보이고, 그렇게 착하고 순한 아인데
지도 사춘기라 엄마한테 대들수도 있고 (정말 정말 소심한 말대꾸같은거요) 친구들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저는 아직 애들이 어려 사춘기를 모르니 제 눈에는 그냥 그 무렵 애들 다 그러하듯.. 그런 정도인거 같은데
언니가 애를 그렇게 잡았어요. 뭘 해도 악을 먼저 지르고 애가 잘 얘기해보려고 해도 화 먼저 내고.
그러니 애는 점점 밖으로돌고 자연히 성적도 떨어지고. 그러면 언니는 또 애를 더 잡고.. 이 악순환이 3년 되어가요.
식구들끼리도 만나면 저도 말해보고 부모님도 언니 타일러보고 그러면 그때는 또 잠잠하다가 다음에 보면 똑같아요.
그러다가 큰애 중3 때 학교에서 심리검사 비슷한걸 했는데 저희 조카가 자살고위험군? 이런걸로 나왔다고..
그래서 언니랑 형부랑 애랑 상담도 몇 번 받고 좀 나아지는 듯 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 또 시작했어요.
상담도 몇 번 받다가 비싸고 눈에 띄는 변화도 없고 하니 그만 뒀고, 큰애는 이제 아예 엄마를 투명인간처럼 보고..
그때 상담사가 아이보다 엄마가, 그러니까 저희 조카말고 언니가, 더 문제라고, 마음에 응어리가 있다고 그랬어요.
언니가 맏딸로 자라면서 겪었을 많은 일들.. 저는 그저 짐작만 해 볼 수 있기에
감히 언니한테 이렇다 저렇다 조언도 못 해줘요. 또.. 말 꺼내봤자 화만 내니까 말 걸기도 무섭구요.
저희 엄마가 속정은 깊은데 겉으론 절대로 표 안내는 그런 성격이세요. 연년생, 두살 터울로 줄줄이 애 낳고
시부모님에 시동생들 건사까지 하느라 옛날 엄마들 다 그러셨겠지만 저희 엄마는 유난히 더 냉정했어요.
저희 자매들 마흔 훌쩍 넘은 나이지만 아직까지도 엄마 사랑 그리워하고 잔정에 배고파 하고 그래요.
그 부족한 부분 그나마 채워주시던 아빠마저도 올 봄에 돌아가시고.. 엄마도 이제 늙으시고.. 저희가 기댈 수도 없고..
언니가 자라면서 동생들 돌보기도 하고 돈벌이 하면서는 살림에 보탬이 되기도 하고..
뭐라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운데 상담사가 맏딸 컴플렉스를 버리라고 했다 그래요.
언니랑 큰 조카 사이가 점점 극으로 치닫으니 매일 집에선 큰 소리 나고 집안도 어수선하고
그러다가 아마 지난 밤엔 아주 심각했던 모양이에요. 둘째한테 물을까 하다가 얘도 알거 다 알 나이라 ..
형부가 급기야는 오늘 그러시더라구요.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정말 이러다가 이혼하는구나 싶다고.. 형부도 사람인데 오죽할까 싶어 저도 그냥 듣고만 있었어요.
오후에 큰 조카 데려다가 다른 말 안하고 엄마가 너 사랑하시는거 알지,
너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거야 잘 풀어나가면 되니까 나쁜 길로만 나가지 마라.. 하니까 애가 펑펑 울어요.
애 달래주다가 이 녀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언니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형부한테도 미안하고 해서
저도 같이 그냥 펑펑 울어버렸네요. 마음 한켠에는 우리 엄마가 좀 따뜻한 엄마여서 이럴 때 좀 기대고 싶은데
그럴 엄마가 아니라 그동안 힘들었던 제 마음도 같이 무너졌던 것도 같구요.
아휴.. 모르겠어요.. 너무 기나긴 이야기라서 단순하게 정리도 안되고..
상담을 받아도 본인이 변해야 효과가 있는거라 무조건 언니한테 상담 더 받으라 할 수도 없고..
언니도 안쓰럽고 조카도 안쓰럽고 형부한테도 그저 미안하고.. 정말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