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를 아침에 3개 주고 저녁에 4개 준다니까 화를 내던 원숭이가 아침에 4개 주고 저녁에 3개 준다니까 좋아했다고 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다. 얄팍한 속임수로 어려움을 피해 보려는 수작을 이름이다. 또는 그런 수작질에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음이기도 하다.
사람이라고 다른가. 주겠다는 20만원을 안 주겠다고 해도 별로 화를 내는 것 같지 않다. 갖고 있던 20만원을 빼앗겠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사람들이 그렇다.
조삼모사 연상케하는 ‘노인연금’ 공약파기사태
공약이란 후보자와 유권자의 공적 계약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학문적‧이론적으론 물론 그렇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다르다. 국제투기꾼이라는 폄하에도 불구(또는 투기를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 줄기차게 ‘열린 사회’를 위해 노력했던 조지 소로스가 오래 전에 ‘공약의 타락’을 분석한 바 있다. 금융전문가답게 금융시장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금융시장이 시장참여자들의 오류성과 반사성 때문에 평형으로 수렴되지 않고 오히려 이탈하면서 ‘붕(boom)/뻥(bust)'을 반복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정치판에서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후보자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능력과 생각을 내보이고 유권자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희망에 맞게 자신의 주장을 각색한다. 그렇게 되면 후보자들의 주장과 유권자들의 희망은 일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치는 억지로 짜 맞춘 것이기 때문에 당선자는 당연히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정치에 실망하게 되고, 정치인들은 점점 더 허황된 약속을 하게 되면서 평형이탈의 상황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원숭이 주인의 얘기다.
다음은 어리석은 원숭이의 입장이다. 유권자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하는 후보를 뽑아야 하지만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기의 이익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더 나쁜 것은 유권자들이 무관심할 때다. 즉 그들은 후보자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해치지 않는 한 어떠한 속임수나 거짓말에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로스가 아니고 웬만한 장삼이사라도 이런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유권자들은 선거 때만 되면 정신이 나가버리는 것 같다. 공약의 현실성, 후보자의 진정성을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고 허풍선이가 클수록 열광한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당선자가 공약을 깨도 항의하거나 다음 선거 때 ‘응징’을 다짐하는 법이 없다. 으레 그러려니 체념하거나 곧 잊어버린다. ‘뉴타운’에 그렇게 당하고도 한나라당을 찍는 사람들, ‘노인연금’에 이렇게 당하고도 새누리당을 찍을 사람들 말이다.
너그럽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노인 유권자들
그래서 아마도 새누리당은 다음 선거 때 쯤 되면 “노인연금공약을 깬 것은 민생정치를 외면한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이었다”고 거짓말하며 ‘노인연금 50만원’을 또 공약으로 내세울지 모른다. 정치의 수준이 민심의 수준인 까닭이다.
속이는 것은 나쁘고 속는 것은 억울하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두 번. 세 번 연달아 속는 것은 억울할 것도 없다. 사기질을 계속 하게 유혹한다는 점에서 속이는 것보다 속는 것이 더 나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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