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최인호 선생님께서 30대이셨을 때 뵌적이 있어요.

못난이 조회수 : 2,551
작성일 : 2013-09-26 13:55:46

제가 고3이던 70년대 후반의 어느 겨울의 지방 대도시.

아직 준공이 덜된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이어령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같이 오신 분이 최인호선생님과 소설가 손장순씨.

이유인즉슨 여류소설가였던 손장순씨가 쓴 소설에서 제 모교인 여고를 졸업한 여주인공을 형편없이 그려서 학교를 폄하해서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그랬던거 같아요.

70, 80년대 당시 각 여고마다 이미지가 있었는데 시험치고 들어가던 당시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녔던 명문여고는 과부학교, 시내 중심에 있어서 공부는 못하지만 예쁘고 날라리애들이 많이 다녔다던 저희 모교.

아마 그 소문 그대로 손장순씨가 모 소설에서 묘사했던거 같고, 그걸 알게된 모교 동창회에서 난리가 났었어요. 사과하라는 압력에 못이겨 사과를 하고 당시 재학생들에게는 덤으로 문학강연을 한거죠.

그 단편소설이 ‘문학사상’인가 하는 월간지에 실렸었고 당시 이어령선생님께서 ‘문학사상’의 주간이었던거 같았어요. 최인호선생님은 당시의 베스트셀러 인기작가라 그랬는지 같이 오셨더군요.

너무 오래전이라 이어령 선생님 강연은 기억나는데 최인호 선생님이 강연을 하셨는지는....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사과받고 강연 후 사인회에서 구름같은 인파를 헤치고 강연메모를 했던 노트에 이어령선생님 사인을 받고 감개무량해 했더랬죠.

이어령선생님의 수필을 모조리 다 섭렵하고 감동받았던 이어령 선생님 팬이었던지라..

친구들이 다들 최인호 선생님 사인 받으려고 발버둥을 치는걸 보고 코웃음을 쳤어요.

그땐 제가 한창 겉멋에 빠져 순수문학이니 뭐 이런 거에 집중하며 최인호 선생님 같은 분들은 통속작가라며 무시하던 철없고 허세덩어리 여고생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그 후에는 최인호 선생님의 소설을 재밌게 읽고 영화도 재밌게 봤어요.

30년 넘게 샘터라는 잡지에 기고되었던 ‘가족’이 가장 좋았고. 그 외에도《타인의 방》,《잃어버린 왕국》,《바보들의 행진》,《별들의 고향》, 《지구인》,《상도》,《깊고 푸른 밤》, 《해신》, 등 수많은 수작을 남겨 감동을 주었던 분을 가까이서 뵙고도 남들 다 받는 사인을 못 받은 저는 역시 사람보는 눈이 없나봐요.

 

최인호선생님의 비보를 듣고 예전회상에 잠기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IP : 58.29.xxx.134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그당시
    '13.9.26 2:02 PM (183.109.xxx.150)

    이어령이 한국의 살아있는 지성이니 뭐니해서 엄청 떠받들던 시절이었죠
    한국영화는 방화라 불리면서 외화에 비해 천대받던 시절
    그당시 분위기가 그랬던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어령 그분은 암기력좋은 백과사전적 인간에 짜깁기를 잘하는 사람?
    최인호씨같은 분이 요즘이 전성기였다면 정말 훨씬 대접받고 많은걸 누리시고 사셨을것 같아요

  • 2. 못난이
    '13.9.26 2:10 PM (58.29.xxx.134)

    그러게요.~
    이어령선생님은 요즘으로 치자면 여고생들에게
    무한 추앙받는 한비야씨 정도로 인기인이었던거 같아요.

    그에 반해서 최인호 선생님은 당대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시대를 앞서가며 문화를 선도하셨던 분.

  • 3. roo
    '13.9.26 2:14 PM (202.14.xxx.177)

    쾌유하시길 바랬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4. ...
    '13.9.26 2:36 PM (118.43.xxx.3)

    http://theacro.com/zbxe/free/922295

  • 5. 못난이
    '13.9.26 2:43 PM (58.29.xxx.134)

    ...님그 시절의 제가 그랬었나봐요.

    그분의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고 인기에 연연하는 깊이가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문학이란 그렇게 단순한 잣대로 규정되는 게 아니란 걸 알 수가 있다.
    다만 사람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 6. ....
    '13.9.26 4:03 PM (114.201.xxx.42)

    최인호 선생님의 작품중 관음증 환자의 애정 행각을 그린 적도의 꽃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나이 많은 사업가의 첩 노릇하는 여자를 좋아해서 나중에는 그녀가 겪는 버림과 배신을 고스란히 체험하다 복수까지 해준다는 작품이죠.

    관능적이고 나름 스릴 넘친 작품이였습니다.
    80년대 아파트가 신분의 상승처럼 여겨지고 정신보다 물질이 앞선 상황에서 일어나는 괴리를 아주 통속적이게 그린 작품이였네요.

    최선생님은 유독 여성이 성을 파는 상황을 아주 담담하게 그리셨어요.
    그 속에는 경제를 창출하지 못하는 존재는 성이라도 팔아야 산다... 이거 아닌가 싶습니다.

  • 7. 영원한 청년
    '13.9.26 4:30 PM (175.114.xxx.16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12800 모뎀 이상 좀 봐주세요~ 3 a... 2013/10/28 478
312799 서울 자율고 입시 결정 났어요. 5 자율고 2013/10/28 2,027
312798 현아 새노래 뮤비 대박 야하네요 10 ㅇㅅ 2013/10/28 4,253
312797 권영세-박원동’ 대선직전 수사발표 조율한 듯 1 불법SNS조.. 2013/10/28 511
312796 요요마의 키친 가보신 분 1 요요마 2013/10/28 1,064
312795 오늘 가요무대 장난 아니네요.. 4 엿니 2013/10/28 3,360
312794 풀어놓은 개.. 어떻게 하나요? 2 .. 2013/10/28 683
312793 핸드카트 바퀴가 부러졌는데요.. 3 .. 2013/10/28 1,299
312792 강아지들이 다 이런가요 11 ... 2013/10/28 1,488
312791 아시는 분! 코스트코에서 파는 18k 목걸이 동네 금 은방과 비.. 1 궁금해요 2013/10/28 6,912
312790 배슬기랑 신성일 찍은 영화... 4 .. 2013/10/28 2,822
312789 영혼이 빠져나갈려는 꿈을 꿨어요 ㅇㅇㅇ 2013/10/28 659
312788 대문에 홍어글 보니 홍어 먹고 싶네요 5 2013/10/28 892
312787 혹시 개고기 먹으면 안 되는 사주도 있나요? 23 사주 2013/10/28 4,609
312786 패딩은 샀는데 코디가 문제네요 5 ... 2013/10/28 1,470
312785 바질과 파슬리는 어떡게 다른건가요? 3 비올라나 2013/10/28 8,210
312784 usb발난로 따뜻한가요? 3 아우발시려 2013/10/28 5,227
312783 초5아들,공부할때 자꾸 꼬추를 만져서 전혀 집중을 못해요. 11 화장실도자꾸.. 2013/10/28 4,181
312782 틈새마기 시공 외풍 2013/10/28 994
312781 "윤창중 사건 벌어지면.." 주영대사관, 어이.. 2 무명씨 2013/10/28 818
312780 남대문시장 몇시에 문여나요??? 1 ... 2013/10/28 819
312779 아파트 1층인데 쥐가 들어왔어요 ㅠㅠ 7 연우맘 2013/10/28 3,898
312778 '물고기 떼죽음' 4대강 사업 후 잇따라 세우실 2013/10/28 355
312777 부산 서면에 커트 잘하는 미용실 부탁합니다. 미용실 2013/10/28 1,849
312776 그냥 여자끼리 결혼할수 있게 해주면 안되나요? 31 ........ 2013/10/28 5,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