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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향기가 있었네

스윗길 조회수 : 1,264
작성일 : 2013-09-25 05:13:19

시골집에 향기가 있었네

 

멀지 않았던 옛날이야기이다. 시골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신작로 양쪽에 여러 팔을 벌리고 서있는 커다란 포플러나무가 날리는 먼지를 내내 차곡차곡 뒤집어쓰고도 제자리를 버리지 않고 서서는, 풍경에 잡힌 신작로 비탈길 옆구리를 더듬어 지나가는 수줍은 강물을 시각으로 밀어, 정겹게 쓰다듬듯 시골 강을 바라보고 있다.

 

돌다리는 얕은 파란 강물 사이사이를 가로막고 모로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여름날 이마에 솟아난 땀방울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길손이 마치 땡볕 더위를 한껏 참아 내는 사건과도 같이, 조선중기 어느 무명 하인의 전신에 땀내 나는 일복에서 이 여름이란 계절마저 사색의 냉수로 뒤집힌다.

 

지금의 역사의 서러움도 늘 그렇듯이 가슴 뻥 뚫린 머나먼 선조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해결 못한 한 많은 사모곡은 그리움의 흔적이 되어, 슬픈 돌다리 하나하나에 저리 빗대어 쓰러질 듯 인사동 어느 고서에 기대어 또 서있는 형국이다.

 

한 쪽 구석 기억의 저편에 과거 초가집이 많았던 60년대는 당시 기와집에 사는 내 친구 집을 부러워했었고, 70년대 고급 양옥에서 살았던 드물었던 다른 친구 집을 부러워했었다.

 

그 친구는 보기에도 키가 매우 작은 친구였었는데 옆 동네 시골 초가와 자신의 집을 늘 비교하며 항상 자신의 키보다 한참을 크게 자랑했기 때문에, 청년시절 그 친구를 보며 나중에 돈을 벌어 나도 근사한 양옥을 하나사서 잘 살아야지 하며 생각했었던 옛일이 가끔씩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나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고 오롯이 전통을 계승하는 수업과 수행에만 모두를 매달려 왔다. 벌써 오래된 얘기다. 전통공예를 시작한 지도 34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격동의 80년대 단위 아파트에 살면서도 편리하다 하면서 통나무집을 동경했었던 기억이 또 우리들에겐 누구나 있었을법한 그 시절은, 학생운동과 불안한 사회의 시작이었지만 어쨌든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쳐 빠져나왔던 우리의 슬픈 현대사가 존재한다.

 

우리의 근대사는 1990년, 2000년대에 발전과 번영을 이뤄낸 지난날 우리 기업인과 근로자와 일꾼이 있었고, 국가의 미래 초석인 한국인으로서 과학으로 훌륭한 두뇌들이 움직이고, 연구하고, 창의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과 모두가 각자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지성과 품성에 게으르니 않고 충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은 그야말로 첨단의 시대이고, 생명의 시대에고, 우주의 시대이고, 자원의 시대이고, 종자의 시대이다. 특히 종의 자원 연구와 보호는 미래를 선도하고 지배하는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 종의 자원의 중요한 범주 안에 ‘종과 기술을 계승한 전통’이 국가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그런 보존이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어느 면에선 제법 잘 이어져오고 있다. 어렵게 어렵게도 이어져오고 있는 우리의 전통을 잘 보존해야하는 이유가 오늘에도 국가이익이 되어 존속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를 문화재보호법이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시골집은 짚을 얹은 삶의 긴장이 없는 넉넉한 초가집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오셨던 시골집은 아름다운 녹색의 허브향기가 있었다. 널찍한 앞마당 옆 켠 장독대 바로 밑에는 채송화, 봉숭아, 참나리꽃, 보라색 무궁화꽃이 늘 피어 있었고, 싸리나무를 엮어 담을 만든 담벼락엔 나팔꽃이 해마다 출제를 열었으며, 앞쪽을 향한 정면 담 모퉁이 중간엔 오동나무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도 쑥쑥 자라고 있던 시골집이었으니 말이다.

 

그 늠름하고 커다란 오동나무 아래로 열매가 직접 낙하하면 콩 만 한 조그만 회색열매가 나무 밑에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이 작은 열매를 이빨로 살살 까서 조심스럽게 먹어보면 그렇게 콩만 한 것이 맛있을 수가 없다.

 

고소한 맛이 희한한 맛이면서도 묘하여 이것을 먹는 동안 나의 학우이자 시골 원조친구들은 어깨를 서로 잡고 서로를 마주하여 열매를 다 까먹으며 또 그렇게 행복해 했다. 이는 세상 어디에도 지금은 없는 그 맛이었기 때문이다.

 

오동나무에만 앉는 봉황이 유일하게 먹는 열매가 이 오동열매이다. 산해경 ‘남차삼경’편 기록을 보면 봉황에 대해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는데 ‘도과산에서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단혈산이 있는데 산 위에는 금과 옥이 많다’고 했다. 오색무늬가 있는 봉황은 분명 거기에서 살고 이 길조의 새근 천하가 태평성대일 때 나타나는 지상 최고의 새이어서 항상 최고였다.

 

이 봉황이 앉은 오동나무가 조부의 시골집에 그리도 잘 자라고 있었건만 봉황새는 그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끝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들의 시대에는 꿈일는지 모른다. 또 영영 다음 세대에 가서도 아예 나타나지 않을지도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매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세계 어디에선가는 서로 싸우고 정치전쟁, 영토전쟁, 해역전쟁, 종교전쟁, 노동전쟁, 종족전쟁 등 수없이 많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떠서 먹었었던 필자는 어린나이에 우리의 무궁화 꽃을 항상 보며 자라왔다. 해질녘 저녁에 꽃을 오므렸다가 조용히 내일을 준비하고선 싱싱한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생하고 씩씩하게 얼굴을 내미는 활짝 핀 무궁화 꽃을 보고 자라면서, 이다음에 커서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까 하는 미래의 자신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많이 국가가 요구하는 길을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시골 토종흑돼지를 지금처럼 사료를 줘서 키우지 않으시고 쌀겨나 식구가 먹고 남긴 음식 등 여러 가지 찌꺼기 등을 듬뿍 주어 토실토실 살 오르게 키우셨다. 토종닭은 제 품으로 새끼를 낳는다. 어디든 이리 저리 데리고 다니며 벌레도 먹고 풀잎도 먹으며 건강히 키워주는 그런 어미가 너무 대견스러워 나는 가끔씩 할머님 몰래 한주먹씩 쌀을 닭 가족에게 특식으로 뿌려 주기도 했다.

 

움직일 수 없는 닭장에 갇혀 사료만을 먹게 되면서 식용의 육계로서 생명을 마감하는 불쌍한 닭 사육장의 닭 신세는, 특정 사람들의 목적달성만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으로서의 소임을 다 할 수밖에 없는 조선조 노비의 신세와 무어가 다를 것이란 말인가. 방학 때 한 번 씩 할머니의 지시로 부엌 아궁이에 군불 때기 불을 때면서 이글거리며 모두를 삼킬 듯 한 불꽃은 아직까지도 필자의 뇌 세포에서 피어올라 떨어져 나가지 못한 이유는 불꽃이 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혼을 잃게 되면 육신을 끌고 다닐 일은 자연히 없어지고 만다. 사색이 없는 산책을 백날 천 날을 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혼이 없으면 모두가 소용없는 일이다. 어느 혼이든 혼을 팔아먹으면 역사에 욕을 먹게 되는 것이고 혼을 잘 사오면 존경을 받을 일이다.

 

구수한 시골의 혼은 사람의 향기에 있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풍성한 혼의 그리움에 있다. 갈수록 먹먹해지는 시골 인심을 어찌하면 좋을까?

 

우리의 고향엔 지울 수 없는 향수가 있어 자주 찾아가서 이를 달래고, 우리들의 시골에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가 있으니 늘 가슴이 혼이 되어 떨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혼과 시골이 행복해진다. 시골집에 우리가 그토록 그리던 우리들의 향기가 있다.

 

출처: 역사와 문화를 깨우는 글마루 9월호 구영국의 전통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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