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석]그 분의 정체를 여적 모르시나요
안드로메다 공주님을 여왕으로 모시는 지구별 나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좀 많이 당황한 것 같다. 청와대 3자회담을 마치고 난 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우리 대통령은 좀 다른 거 같다”라고 독백하듯 한 말에서 그가 느꼈던 황당함이 뚝뚝 묻어난다. 그는 또 “(지금의 정국경색을) 대통령과의 담판으로 풀려고 했으나 그 길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으니 다시 또 다른 길을...”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스스로 인정하듯 투사가 아니다. “(투쟁을 하기 보다는) 만나서 잘 설득하면 공감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났으니 서로 얘기를 나누다보면 공감하는 대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려다 안드로메다인을 만나다
김 대표는 소설가 출신이다. 소설가는 끊임없이 인생과 사람과 시대를 관찰하고 경험하고 연구하면서 상상력을 키운다. 그의 머릿속에는 만나 본 적도 없는, 그러나 상상 가능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제안했을 때는 상상 가능한 사람과 대화를 하고자 했던 것인데 결과는 사람이 아니라 안드로메다에서 온 공주를 만난 셈이다.
막막한 표정으로 청와대를 나서는 김 대표를 보며, 얼마 전 언론계 한 원로선배에게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이 분이 76년 한 신문사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때 이야기다.(당시 이 신문사는 석간발행으로, 박정희 개인소유나 다름없다던 한 방송사와 같은 회사 소속이었다)
어느 날 12시 마감을 앞둔 가장 바쁜 시간에 회장실에서 급한 호출명령이 떨어졌다. 회장실로 올라 가보니 까만양복을 입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이 복도에 쫙 깔려 있있다. 자기 회사인데도 신분을 확인한 후에야 회장실에 들어갔는데, 한 가운데 평소 회장자리에 영애 박근혜 씨가, 그 왼쪽에는 회장, 방송사 사장, 방송사 전무이사, 보도국장이, 오른 쪽에는 신문사 사장 신문사 전무이사가 장중한 분위기 속에 순서대로 어전에 도열하듯 마주 앉아 있었다.
이 분이 자기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박근혜 씨가 비로소 입을 열더니 “근처에 중요한 행사가 있어 참석했다가 여러 분들을 뵙고 가고 싶어 들렀습니다. 지금 나라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여러분들께서 해 주셔야 할 일들이 너무 중요합니다. 아버지께서 관심이 많으시고 저 역시 여러분들께 기대가 큽니다.”라는 식으로 한참 훈시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쪽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 때 퍼스트레이디 역할 3년차였던 박근혜 씨의 나이는 불과 스물여섯, 그 언론사 회장의 나이는 박정희 대통령과 동갑이었다.
부친과 동갑 언론사 회장 앞에서 일장 훈시
언제 어디서나 항상 남 위에 군림하려는 인간들이 있다. 정치권이나 재벌집안에 이런 인간들이 바글바글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띤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들을 ‘버릇없이 자란 부잣집 외동아들’ 혹은 ‘무남독녀 외딸’같다고 부른다. 재수없이 이런 이들과 어울리게 되면 피곤하고 빈정 상하기 일쑤다.
더 나쁜 것은 이런 유형의 인간일수록 도통 남의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면서 제 귀에 달콤한 말만 주워 담는다.
이런 자가 조직을 장악하면 조직 내 개인의 품성과 자질은 아무 쓸모가 없어지게 되고 조직을 위한 충언도 없어진다. 양심은커녕 상식마저 사라진다. 오로지 보스의 뜻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보스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이익이 배분된다. 그런 조직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쪼개진다.
정치권에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명멸한 독재자들 중에서도 이승만이 대표적으로 이런 인물로 꼽힌다. 임시정부를 들어 먹었고 해방 후 나라를 좌우로 갈가리 찢어 놓으며 친일파만 살려 놓았다.
하다못해 전두환마저도 대통령직을 찬탈하기 전까지는 상전을 모셨고, 하나회를 조직해 옆과 아래의 말을 들었다. 우리는 간웅 이승만 이래 또 한번 아주 독특한 인간형을 대통령이 아닌 ‘여왕’으로 모셔야 할 판이다.
안드로메다는 지구로부터 250만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