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앞두고 이런저런 끄적대다가 발견한..
전문작가분이 친구에 대해 올려서 퍼왔습니다. 제 마음을 딱 읽어서 너무 놀랬다는…
친구라는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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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e> 밀도의 관계학
자랑은 아니겠지만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그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그런 나에게 충분히 만족하고 산다. 내가 친구라고 부르는 이는 대략 삼십 여명, 그 중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열 명 이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일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많아야 백 명이다. 그 이상 가면 나는 소란스러운 광장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막막하고 불행해진다.
단순히 게으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챙기고 관리해야 할 것이 많은 이 바삐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만큼은 영혼과 마음없이 관리하고 싶지 않다. 내가 명함을 만들지 않는 것도 그 이유다. 연락하려고 하면 어떻게든 연락처정도는 찾아서 다가갈 수 있다. 형식적으로 부피만 쌓여가는 친분과 인맥은 삶을 불필요하게 성가시고 산만하게 할 뿐이다. 외로움을 매꾸기 위해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게 낫다.
그렇다 하더라도 친구는 삶을 살아가면서 이 대개는 허망하고 반복적인 삶에 찰랑찰랑 윤기를 주는 소중한 존재다. 친구는 나의 존재를 긍정해주고 때론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일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슬플 때는 위로해주고 힘들 때는 도와주고 심심할 때는 놀아준다. 자신의 생활에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는 존재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심리적으로 무척 부대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구라는 것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친구가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친구가 많다고 즐거운 것도 아니다. ‘오늘부터 친구가 되자’라고 해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라는 개념은 꽤 막연해서 나는 상대를 친구라고 생각해도 상대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상대를 친구라고 생각안해도 상대는 나를 절친한 친구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친구’의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그래봤자 친구가 많아질수록 밀도는 떨어지고 농도는 옅어질 뿐이다.
가령 친구가 많아서 두루두루 모두와 사이좋게 지낸다고 하자. 내가 몸이 아플 때 그 많은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줄 것 같지만, 의외로 와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가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친구가 많아, 내가 아니어도 사람들이 많이 갈거야, 싶다. 친구가 많이 있는 사람은 매일 저녁 여러 사람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 그것은 그것대로 즐겁게 지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친구들이 내가 힘들 때 도와줄지 안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시 친구라기보다는 그냥 ‘아는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친구라고 하는 것은 한 번에 물리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챙길 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냥 친구도 아닌 ‘절친한 친구’라고 한다면 손에 꼽힐 정도인 게 당연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거기서 각자 우정을 쌓는다고 해도 모두와 계속 꾸준히 만나는 건 아니다.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서서히 안 만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친구’라고 부르기 애매해지는 관계들이 생긴다. 그건 나쁘거나 죄짓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에 사람들은 들어오고 나가기도 하며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친구를 새로 얻고 친구를 또 잃어간다. 그러면서 내 곁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이 나의 절친한 친구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친구관계에 있어서 ‘양보다 질’은 숙명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것이 아닌 바에야 많은 사람들을 알아간다는 것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 친구가 많아도 내 스케줄러를 채우기 위한 사교라면 원래부터 없어도 된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내가 힘들 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들로 충분하다. 친구는 ‘늘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기고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이니까.
오래 남을 만한 친구관계라면 ‘노력’이 필요없다.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러움에 위배되는 노력은 ‘부담’과 ‘무리’일 뿐이다. 친구를 억지로 만들면 상처를 받을 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상처를 주는 일이다. ‘왜 나는 친구를 오래 사귀지 못할까’라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오래 좋은 마음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아름답겠지만 나의 감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유지시켜야 할 관계는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그 관계를 유지시키거나 끊는 것이다. 친구를 대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딱 한 가지, 그 친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말고는 없다. 잠시 서로에게 거리가 필요하다면, 상대를 보내줄 수도 있어야 한다. 마음이 안 맞는 사람들과 억지로 맞추려는 노력을 할 시간에 나와 가치관의 지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와 맞는 사람들을 새로이 만나려는 시도가 차라리 창의적이다. 동시에 ‘이래야만 한다’는 완벽주의는 버리고 관계형성에 있어서 ‘나다움’이 뭔지를 물어야 한다. 내겐 친구가 충분치 않다며 힘들어하지만 혹시 ‘친구라면 이래야 한다’는 잣대를 두며 가혹해지고 있는 것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할 만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나 자신을 데려다 주는 것, 나는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번짓수 틀린 곳에서 억지로 끼워맞추면서 ‘난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자문하는 것은 어른스러움이 아니라 자학이다. 관계는 그저 즐거워야 한다. 어른이 되서 좋은 것이 뭔가? 나는 무리한 인간관계를 애써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좋았다. 혼자서도 잘 놀아도 이상한 사람 취급 안 받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마음껏 좋아해도 되는 것. 내가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싶을 때 만나는 것, 그것이 좋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마음에 들면 사귀고, 그게 아니면 혼자서 지내는 것을 선택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조금씩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었다. “나 친구 별로 없어.”라고 해도 나는 그 별로 없는 그 친구들을 그 누구보다도 소중히 할 것이기에, 역시 그것은 자랑은 아니지만 가장 나다운 선택이었다.
글/임경선
출처 : http://catwoman.pe.kr/xe/282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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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구가 어떤 의미지 하고 고민하면서 일도 안하고 과연 어떻게 살아왔고 내 주위엔 누가 있나 생각하게 되네요.
그러다가 찾아본 전문작가님의 글.. 정말 와닿네요.
조금 있으면 추석이네요. 연휴기간 동안 주변사람들에게 안부전화라도 해야겠어요.
그냥 센치해지네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