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 집의 막내며느리예요.
큰형부부는 오십대. 결혼한지는 삼십년 넘었어요. 대기업 부장이어서 잘 삽니다.
작은형부부도 오십대. 결혼한지 이십오년 넘었고 여기도 대기업다녀서 잘 살아요.
저희는 이제 결혼한지 십년. 저희도 그럭저럭 삽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지으시고 아버님 올해 팔순. 어머님 칠십여덟이세요. 각자 지병이 있으시지만
자식들에게 십원 한장 안 받으시고 농사 지어서 두 분 사세요. 오히려 아직도 자식들이 얻어 먹어요.
시시콜콜 이야기 하자면 끝도 없구요. 세 아들 대학공부까지 다 시켜주셨고 신혼때부터 쌀이며 반찬까지 다 해서
매번 버스타고 집까지 가져다 주셨고 신혼때는 생활비도 주셨다고 해요. 부모님 병원비가 들어가면 계산 다 해서
현금으로 부쳐주시고 며느리가 병원에 하루 이틀 지내면 간병비로 삼십만원씩 계산해 주세요. 자식 힘든 거 싫다고 십원 한장도 안 받아가세요. 제가 시집오기 전에 작은형님이 병원에 모시고 가고 큰형님이 일주일간 병원에 있었는데
몸이 너무 아파 집으로 돌아가실 수 없는 상황에 두 사람이 어머니 앞에 두고 서로 모시고 가라 싸운 적이 있대요.
왜 내가 해야 하느냐고. 그 모습을 보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살아서는 다시는 자식집에 안 가겠다
울면서 결심을 하셨대요. 그래서 자식집에 안 가십니다. 오시라고도 안 하지만요.
제가 결혼하고 저희 집에도 한사코 안 오시려고 하셨는데 제가 그 이야기 듣고 너무 가슴아파 잘 해 드렸어요.
저희 집에는 오세요. 오실 때 드실 반찬 다 만들어 오시고 반찬 떨어지기 전에 가세요.
허리 디스크 수술하고 나서 집이 푸세식 화장실이라 너무 고통스러워하셔서 한집에 백만원씩만 내서 집에 수세식 화장실 고쳐드리자 하니 큰아들 작은아들 다 반대해서 지금도 푸세식 화장실 쓰시구요
암수술 하시고 나서 정수기 달아드리자고 하니 시골물 좋은데 왜 정수기 쓰냐고 큰아들 작은아들 다 반대해서 정수기 못 달고 있다가 제가 제 돈으로 달아드렸어요. 그랬더니 시골오면 정수기 물 잘 먹기만 먹습니다.
큰아들은 오십다섯. 이제 육십 다 되어가는데 작년에 팔십되신 시아버님께 자기 결혼할 때 집 안 사줬다고, 취직한 후에 대학원 공부 자기가 벌어서 했다고 부모로서 해 준게 뭐가 있냐고 폭언하고 간 뒤에 반년째 부모님하고 연락끊고 살고 있구요
작은 아들도 비슷합니다. 올여름 이 폭염에 집에 한번 다니러 오지 않구요. 쌀이며 김치며 된장이며 간장이며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떨어지면 나타나서 쓸어갑니다. 집에 올때는 포도 한 박스. 귤 한박스 정도 사옵니다.
전 막내며느리예요.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지요. 우리라도 자식도리 하자고 모시고 오고 모셔다 드리고 병원도 모시고 다녀요. 어떨 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아무 말 없이 이 모습을 지켜봐야 하니까요.
얼마전에 시어머니가 아무한테도 연락없이 아버님과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어요. 나중에 알고 갔더니 아무한테도 알리지 마라 하셨어요. 심혈관쪽으로 시술받으셨는데 시술받으신다 알려도 아무도 나타나지도 전화도 안하더라구요. 시술마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는 걸 저희 집으로 가자고 하니 안 가신다고 너무도 완강하게 안 가신다고 버스타고 집으로 가시는데 그 모습보고 버스정류소에서 저도 많이 울었어요. 너무 가슴아파서. 그랬다고 알려도 아무도 찾아가 보지도 않아요.
자기들도 자식들이 있어요. 미국유학보내고 자동차사줘요. 자기는 부모님처럼 자식 안 키우고 잘 키운다고 말해요.
부모님은 물려받은 게 없어 농사지어 대학까지 시켜주는게 최선이었는데 집 안 사줬다고 부모가 해 준게 아무것도 없대요.
아. 이런 인간들을 형제라고 네 아주버님. 하려니 속이 썩어서 문드러질 것 같아요. 심하게 말하면 남편과 이혼하고 이 인간들 안 보고 살고 싶어요.
언제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제 몫의 재산 찾아가려고 난리나겠죠. 그렇게 안 오던 시골집에 좋은 차 타고들 나타나겠죠.
그 때 한마디 해 주려구요.
양심이 좀 있어라. 인간들아.
그 때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부모님 돌아가시면 진짜 안 보고 살고 싶어요. 같이 욕 좀 해주세요. 주말에 다녀왔는데
진짜 속상하고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