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숙]쇼를 찬양하지 말지어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퇴임한 김능환 전 대법관이 결국 로펌으로 갔습니다. 다음달 2일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고문변호사로 일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들어서는 길은 대부분의 고위직 판사 검사들이 아무 분별없이 들어서지만 분명 올바른 길은 아닌, 전관예우의 길입니다.
김 전 대법관은 3월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그만 두면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고 법무법인으로도 가지 않겠다고 하고 실제로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을 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일부 신문과 방송은 그런 그가 청렴의 상징이요, 고위공직자의 본이라고 찬사를 보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그와 아내의 추레한 사진을 곁들여 대대적으로 찬양을 했습니다. 그가 퇴직 후 아내가 채소가게를 할 거라는 기사는 이미 1월부터 등장해서 언론의 찬미 행진은 서너달을 이어진 셈이었습니다.
자, 이제 그의 본모습이 보입니까? 그때 찬양했던 언론들 좀 머쓱해지셨습니까? 사실 그가 채소가게를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건 공직의 귀감으로 찬양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대법관 중에 선정되고 대법관은 장관급이라 1년 연봉이 1억이 훨씬 넘습니다. 김능환씨가 51년생이니 나이가 예순을 넘었습니다. 보통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애진작에 자식들 독립시키고 부부 둘이 삽니다. 그가 대법관이 된 것이 2006년이니 두 사람 생활에 1억이 넘는 연봉을 7년 가까이 받은 사람이 저축은 안 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연금도 있습니다. 1980년에 4급공무원에 준하는 판사에 처음 임용됐으니 30년 이상 봉직한 김 전 위원장의 공무원 연금은 어림잡아도 400만원이 넘습니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그동안 해놓은 저축과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우아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편의점을 차려야 한다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서 까먹었거나 굉장히 호사스런 생활을 즐겨서 생활에 기본적인 비용이 많이 들거나 아내가 편의점 같은 걸 취미생활로 즐기고 싶어했다거나 아니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손 벌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거나 같은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그냥 청승일 뿐 사회의 귀감은 전혀 아닙니다.
게다가 편의점이라는 게 무언가요? 생계를 위해 중산층 서민들이 차리는 업종입니다. 고액연금소득자가 굳이 여기에 뛰어드는 것이 어떻게 청백리의 표본이고 사회의 귀감이 될 수 있습니까?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면 그걸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남들도 다 사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이고요. 그가 가진 전문지식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눠준다면 그제야 사회의 귀감이라고 할 것입니다.
김 전 위원장은 율촌으로 가는 이유에서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고 밝혔다지요. 꾸준한 생산이 없으면 꾸준한 마음이 어렵다. <맹자>에 나오는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는 “맹자의 말 그대로 성인이나 도덕군자가 아니고 일반 백성의 한 사람이니 소득이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법무법인으로 가는 이유를 설명했답니다. 어떤 분은 대법관을 지낸 뒤 법률지식을 살리는 교수로 가고 아무 일도 안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전관예우 받는 로펌으로 가면서 뭔 말이 그렇게 거창하십니까?
네, 뭐,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나쁜 짓만 아니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나 채소가게를 하든 편의점을 하든 로펌을 가든 그게 그렇게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하십시오. 대단하게 살지 않으면서 대단한 일을 하는 듯, 칭찬을 받아야 하는 그 나쁜 버릇부터 끊으십시오.
그리고 객관적 상황을 두루 살펴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칭송하기에만 급급한 언론들, 그래서 쇼를 위대한 행위로 포장하는데 무감각한 언론들, 그 못된 버릇도 좀 끊읍시다.
☞ 2013-8-28 서화숙의 3분칼럼 팟캐스트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