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숙]올바른 사람 한 명의 힘, 권은희 과장
어제 국정조사 보셨습니까? 참 한심하고 참 통쾌했지요?
국정원 정치개입의 현행범 김하영을 비롯해 국정원 간부 2명을 더 불러놓고도 검찰 공소장 내에서 심문을 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이럴 것이면 차라리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기소된 사건의 재판을 대중에게 공개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검찰이 기소하지도 수사하지도 못한 김무성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가 나오지 않는 국정조사는 국정조사로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진 시간이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여전히 지리멸렬했고 국내정치개입이 나라를 구하는 길인양 잘못 알고 있었고 그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이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국정조사가 의미가 있는 건지도요.
서울경찰청 디지털분석관들은 말을 맞춘 듯이 똑같은 말을 했고 그 중에는 동영상으로 거짓말이 드러난 것까지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부끄러운 줄도 몰랐습니다. 보다 못한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인 신기남 의원이 ‘디지털분석관이 13명이 나왔으면서 디지털분석관실에서 만든 100여쪽 짜리 보고서는 어디로 갔는지, 왜 없는지를 대답할 사람이 한 명도 없느냐’고 지적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추궁에도 단 한 명도 아무 대답을 못하던 분석관들은 정회시간 한참을 보낸 후에야 다시 나와서는 실실 웃으면서 ‘그건 해프닝이었다. 보고서는 수서경찰서에 전달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미 그 전 시간에 수서경찰서장은 10쪽 짜리, 권은희 과장은 2쪽짜리 보고서만을 전달받았다고 대답을 했는데 말입니다. 분석관들끼리 쉬는 시간에 말을 맞춘 것이 당연해 보이는 정황에다가 거짓말이든 무엇이든 그 자리만 모면하면 된다는 태도가 경찰에서 나온다는 것이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진실을 파헤치는 경찰의 임무가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반면 권은희 과장은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진짜 경찰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김하영씨 컴퓨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전화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이 말은 서울경찰청장이 축소수사를 지시했다는 사실이자 금요일에 있었던 국정조사에서조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권은희 과장에게 격려전화를 했다’는 위증을 했다는 폭로입니다. 권은희 과장은 검색어 숫자가 검색시간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는데 디지털분석관실은 검색어 100개를 4개로 축소해서 수사 자체도 축소하려 했다, 디지털분석관실로부터는 2장짜리 부실한 보고서만 받은 것은 물론 분석프로그램도 대선이 끝난 뒤인 22일에야 깔아줘서 분석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야당은 그를 한편이라고 여겼겠지만 그는 ‘이런 축소수사가 대선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민주당 국회의원의 유도성 심문에도 냉정하게 “대선에 영향을 미쳤는가는 별론으로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대신 수사가 부진한 가운데 진행된 중간수사발표는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고 기획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일어난 사실을 토대로, 확신한 사실만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차분하게 사실만은 말하는 그의 증언을 거짓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공격했습니다. 먼저 디지털분석관 13명이 말하는 것에 그 혼자서 반대한다는 방식으로 그가 말하는 것은 혼자만의 독선이라고 주장하려 했습니다. 디지털분석관 13명의 출석을 일일이 부르며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받아냈지만 이건 동영상에서 디지털분석관들의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권은희 과장이 무능하다는 생각을 전파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권은희 과장이 사법고시 합격자로 경찰에 특채됐다는 사실 때문에 입증하기가 어려웠지요. 경대수 의원은 ‘민원실에 있어도 감금으로 봐야한다는 판례 알고 있습니까’하고 지식을 시험하듯 묻지요. 권은희 과장이 ‘알고 있습니다’ 대답하자 아무 말도 못합니다. 조명철 의원은 심지어 ‘어디 경찰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권은희 과장이 되물었으면 중단할만한데 ‘광주의 딸’로 표현된 것을 들어 지역색이 문제라는 듯이 지적을 합니다. 지역차별을 버젓이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명철 의원의 문제점만 드러났습니다.
김태흠 의원은 더 막나가지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길 바랐지요?’’지금도 대통령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거기에 대해 권은희 과장의 답변은 역시 아주 차분했습니다. “의원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헌법이 금지한 십자가 밟기 질문입니다.”십자가 밟기란 일본이 가톨릭 신자들을 가려내서 죽이기 위해 십자가를 밟아보게 한 것에 비유하여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행동을 압박할 수 없다는 인간의 자유권 존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권은 당연한 기본권이고 헌법정신입니다. 민주공화국에서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경찰로부터 배워야 뭐가 뭔지 알아차리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정말 부끄럽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바로 그 수준이기에 정치개입한 국정원을 비호하고 사실을 은폐한 경찰을 덮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제발 기본으로라도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단 한명의 힘이 온 마을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보여준 권은희 과장, 존경합니다.
☞ 2013-8-20 서화숙의 3분칼럼 팟캐스트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