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딸 아이가 이번에 모 학교 부설 영어캠프(3주간)를 다녀왔습니다.
가끔 전화를 하다보면 아이가 유난히 힘들어해서 학습량이 많아져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는데
퇴소일에 가서 보니 반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았습니다.
여자아이들 몇몇이 한 곳에 뭉쳐 있는데 아이에게 "저 아이들에게도 가서 인사를 하고 오렴"이렇게 말하자
아이가 저 아이들이 자신을 왕따 시켰기 때문에 인사하기 싫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제가 담임 선생님에게 "아이들끼리 무슨 일이 있었나요?싸웠나요?"하고 묻자
담임선생님은 잠깐 싸웠지만 서로 사과하고 지금은 다 해결되었다는 답변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인사하고 집으로 아이를 데려왔는데
영어 캠프 들어가 있는 동안 아이는 3주 내내 그 아이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하면서 다시는 캠프를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 엄마에게 전화하는 날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3분간 허락된 통화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캠프에서 쓴 일기장을 몰래 보자..정말 기가 막힌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일기를 읽으면서 너무너무 맘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가한 행동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영어 발음도 안 좋으면서 왜 자꾸 손들고 발표를 하느냐면서 수업 시간에 너는 발표하지 말라고 함
-아이가 다가가서 말을 걸면 끼어들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가 버림.
-다 같이 어떤 단어를 말하면서 놀이를 하던 중 우리 아이가 그 단어를 쓰자(polar bear라는 단어라고 합니다) 우리 아이를 지목하여 그런 막말을 하지 말라고 함. 우리 아이가 그게 왜 막말이냐. 너희도 다 말한 단어 아니냐고 항의하자 "그럼 막말이라는 표현은 취소할게. 아무튼 넌 그 말 쓰지 마"하면서 모든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줌.
-나도 예전에 왕따를 당한 적 있다. 논문에 따르면 왕따 당한 아이는 다른 아이를 왕따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왕따시키는 것은 당연한 거다(이게 무슨 궤변이랍니까.ㅜㅜ.)이렇게 우리 아이에게 말을 함.
-아이가 하지도 않은 행동--어떤 친구 방에 몰래 들어와서 서랍을 뒤지고 나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림
-아이에게 같이 숙제를 하자고 해서 그 친구 방에 갔더니 3~4명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고, 우리 아이를 가운데에 앉혀 놓고 나는 너의 이런 점이 싫다. 나는 너의 저런 점이 싫다..이런 식으로 한명씩 돌아가며 인민 재판 같은 행위를 함.
이 중에서 마지막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임 선생님이 아닌, 운영담당 선생님이 우연히 지나가다 보시고
그제서야 지속적인 따돌림 현상이 있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운영위원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원래 이 캠프의 원칙은 만약 집단 따돌림을 주도하는 아이가 있을 경우 그 아이는 무조건 퇴소 조치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를 포함한 모든 반 아이들(왕따 가담자 및 비 가담자까지 전부)을 한 곳에 모아놓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야단을 치고 이러면 너희들은 퇴소를 해야 한다고 하시자 그 왕따 가담자들이 울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우리 아이에게 오셔서 "네가 용서를 해라 안그러면 저 아이들 퇴소당하지 않느냐"이렇게 설득하여
결국 아이에게 와서 진정성 없는 사과멘트를 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아이가 다 왕따에 가담한 것은 아니었고
그 중에서 왕따에 가담하지 않았던 아이 중 한 아이는 우리 아이에게 와서
"미안하다,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하는데.."하면서 울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별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서..우리 아이는 그냥 여자 아이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남자 아이들하고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나머지 시간을 버텼다고 합니다.(왕따 가담자는 모두 여자아이들이었습니다).
제가 어이가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초등 고학년의 미숙한 그 여자아이들의 행동보다도
3주나 아이를 보살피고 있었던 선생님들 중 그 누구 하나도 부모인 저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미 캠프는 끝났고,,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을 찾아서 어떤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그건 그렇다 쳐도
저는 이 캠프의 운영 방침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이해하기 힘든 일은
아이가 운영위원회 선생님을 만나고 와서 거기서 있었던 일을 담임선생님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지금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뭐죠?"이렇게 아이에게 되물어서 아이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담임선생님은 한국인이며, 영어를 잘 하는 대학생입니다.
아직 교육학적 지식이나 소양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여도
자신이 담당한 반에서 일어난 왕따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미숙했다고밖에는 생각이 안 됩니다.
부모에게 알려지면 캠프의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서 끝까지 숨기려고 했던 것 같은데..
캠프가 끝나버린 이 마당에 제가 어떻게 해야 아이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지..정말 답이 안 나옵니다.
어젯밤에도 거의 잠을 못 자고 오늘 하루 종일 이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어서
현명하신 여러분의 지혜를 구하고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그냥 넘어가자고 합니다. 어차피 다시 만날 아이들도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