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탐닉하는 남자, 설명하는 남자
루브르에서 윤운중을 찾아라
재미없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즐거워야 한다. 그렇다고 불량식품처럼 달짝지근한 길로만 가지 않는다. 유익하지 않은 재미는 ‘아니올시다’다. 명화(名畵)를 넘어서 이제 클래식까지 자유자재로 설명하는 남자. 단순 해설사가 아니다. 미술과 음악, 더 나아가 역사와 안생을 술술 풀어놓는 윤운중(47) 미술해설가다. 대체 많고 많은 지식을 어떻게 터득했을까.
흰색이 짙은 연회색 구름이 가득한 5월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인형들이 한자리에 모인 카페에서 윤운중 미술해설가를 만났다. 이 카페에서 보자고 한 이는 바로 그였다. 집과 지척이기도 했지만, 인형으로 세계문화를 알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 ㄴ흥미로운 일이었다. 기자에게 친히 “카페 주인 내외가 강의하는 ‘인형과 함께 떠나는 세계문화여행’을 꼭 들어봐라”라고 권유까지 해주었으니 말이다.
문화를 탐닉하는 윤운중 미술해설가. 아직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 석 자일 수도 있겠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국내 최초로 문화 콘서트인 ‘아르츠 콘서트’를 기획했으며, 그 이전엔 한국인 최초 유럽 5대 미술관의 해설을 맡았다. 그리고 최근 책 <루브르를 천 번 가본 남자> 1, 2권을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 하나의 콘텐츠로 다양한 장르에 적용되는 것)’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21세기형 사람이다.
“책을 만들어 내는 데 7년이 걸렸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인데, 컷(cut)시킨 원고만 500페이지가 될 거예요. 제가 봤을 땐 미술사를 공부하거나 유럽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루브르를 천 번 가본 남자>가 필독서가 될 겁니다.”
그의 목소기엔 확신이 가득하다. 그만큼 유럽 미술사에 자신이 있었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미술사와 친했던 것은 아니다. 그 시작은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처음부터 미술을 접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한국 유삭생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공부하다) 막히면 윤운중을 찾아라.’ 미술사에 관련된 책과 자료를 제가 많이 소장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 설명을 들으면 공부하는 데 도움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대중을 위한 ‘아르츠 콘서트’도 평이 좋아요.”
이 정도 설명이라면 그가 미술사를 얼마나 꽉 잡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공자에게도 비전공자에게도 인정받는 그다. 사실 우리나라 미술사도 어려워할 판인데, 우리보다 이름과 제목이 몇 배 긴 서양 미술사를 손바닥 안을 보는 것처럼 쥐락펴락하는 이는 알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나라 정규 미술교육 과정과 환경을 생각해보면 미술 흐름을 파악한다는 일은 보통 관심이 아니고서야 어렵다.
많은 언론에서 그를 ‘엔지니어·연구원 출신 미술해설가’라고 소개한다. 그렇다. 그는 삼성전자 중앙연구소 전임연구원을 지낸 전형적인 이과 출신이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그에게 미술은 생고한 분야였다. 게다가 학창시절엔 너른 축구장을 휘젓는 축구선수였다. 이때만 해도 고갱과 고흐는 형제인 줄 알았다. 그랬던 그가 미술사에서 내로라하는 도슨트(Docnet: 미술작이나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원)가 됐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가 미술해설가로 ‘재미’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의문과 연구심이었다.
“200년 로마에서 여행업을 하고 있던 친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유럽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나 일손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죠. 예, 로마로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지어 습득이 아닌, 미술관련 책을 읽은 것이죠. 제가 간 이유는 여행이 아닌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박물관 해설서를 정말 통쨰로 외울 정도였죠. 뭐,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다뤘던 인공지능, 초음파 센서에 비하면 미술사는 덜 복잡하죠. (작품에) 3차원 회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허허.”
윤 해설가는 로마 시내, 바티칸 박물관 투어를 진행하는 친구를 따라다니며 공부했다. 그리고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열심히 봤다. 작품의 전체를 보기도 하고 부분 부분을 꼼꼼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더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유학생들을 만나 미술 작품에 대해 물었다. 처음으로 도슨트가 된 나이는 서른일곱이었다. 로마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 10년간 미술사 책을 사는 데 1500만 원이 넘는 돈을 쓰기도 했다.
도전을 즐긴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란 이승엽 선수의 말이 떠오른다.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의미가 담긴 이 말은 선천적인 것 보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일궈낸 윤 해설가의 삶과 똑같다. 그는 흘린 땀은 늘 공평하고 곧 희열이 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윤 해설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복해내 다른 이, 특히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부단히 열심을 냈다. 그의 최종학력은 부산 알로이시오 전자기계고등학교 졸업이다. 이후 삼성전자 공채에 합격했으며, 수원에 있는 연구소에서 제어알고리즘 연구원으로 지내며 드럼세탁기 등을 연구·개발했다. 회사 내에서도 곧잘 잘해 인정받는 그였다. 그러던 그가 회사를 훌쩍 떠났다.
윤 해설가는 “12년간 연구원으로 지내다가 외환위기(1998) 때 스스로 일을 그만뒀다”며 “반복되는 대기업 생활이 지겨웠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란 생각이 든 것도 그때”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삶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에겐 ‘극복’과 ‘창조’가 잠재돼 있다. 그리고 그간 해왔던 영역과 새로운 영역을 융합할 수 있는 통찰력까지 겸비했다.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프레젠테이션을 매일같이 해야 했는데, 이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꼼꼼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작품해설을 할 때도 제 감상보단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구렁이 담 넘듯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보통 가이드가 ‘이 색을 이렇게 쓰면 이런 느낌이 들죠’라고까지 말해 버려요. 그럼 관람객은 그 이상은 느낄 수 없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있는 사실만 설명합니다. 대신 알기 쉽고 재미있게 말이죠. 이런 (객관적인) 부분이 저를 다른 미술가들과 차별화를 시킨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안내인’”이라며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선까지 안내하는 게 나의 몫”이라고 설명한다. 객관적인 설명을 위해 윤 해설가는 루브르박물관에서 작품을 설명하며 다른 미술관에 있는 그림과 사진 등을 준비해 눈앞의 작품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한다.
프랑스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그에게 작품 설명을 들으러 온 이들은 하루에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이 찾아왔다. 정말 루브르박물관을 천여 번 드나들었다. 회사에서 근무하던 때와 사뭇 달랐다. 그는 유럽에서 보낸 해설가의 삶을 “자신을 찾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장선상으로 문화기획가로도 삶을 살고 있다. 행복하고 재밌는, 그리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윤 해설가는 한국에 왔다. 이곳에서 ‘아르츠 콘서트’를 열고, 그 무대에 직접 올라선다. 이제 명화와 함께 클래식도 해박한 지식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는 관객에게 멋진 무대를 선사하기 위해 클래식 공부에도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아르츠 콘서트’는 명화와 클래식 음악을 공연장에서 함께 감상한 후 이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공연이다.
“불안함이 주는 긴장감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전 도전하는 게 즐겁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재미있으니까요. 미술과 음악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습니다. 게다가 유익하니까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좋은 콘텐츠잖아요.”
그에게 미래 계획을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늘이 미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만약 매력적인 게 나타난다면 전, 그 일에 흠뻑 빠져들겠죠? 지금은 이 일(해설가)을 하는 게 가장 즐거우니까···. 서양미술·음악사를 넘어서 동양도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문화사를 알면 과거와 현재의 삶이 보이거든요. 재밌어요!”
출처: 역사와 문화를 깨우는 글마루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