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은폐, 경찰 은폐, 방송의 은폐
그저께에 이어 어제(25일)도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는 계속됐습니다. 거기서 놀라운 뉴스가 나왔습니다. 경찰이 국정원이 증거인멸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대선 기간 중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의 수사과정이 담긴 cctv 동영상을 제시했습니다.
12월 16일 새벽 4시인데 아마 분석관 하나가 너무 졸렸던 모양입니다. 새벽 4시까지 수사를 강행군했을테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자도 돼요?’라고 질문하니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데 지금… 댓글이 삭제되고 있는 판에 잠이 와요?’라는 대답이 들립니다. 이 두 소리 뒤로 ‘댓글이 삭제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추가로 나옵니다.
그리고 어제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상규 의원이 폭로한 내용은 새로 밝혀진 사실이자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경찰청의 사실 은폐보다 무서운 내용인데 KBS는 그걸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조사 자체가 여야 공방의 가장 중요한 사항인데 KBS 9시 뉴스에서 보도 순위도 12번째 꼭지로 다뤘습니다. MBC는 아예 논외로 하고 시청료 받는 공영방송만 따져봐도 그렇습니다.
12번째로 다루더라도 내용은 제대로 담았느냐, 아닙니다. “여야는 여직원 감금과 이른바 매관매직 논란, 서울청장의 대선개입 논란 등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습니다.” 여야의 공방이라고 말해놓고 양쪽 입장을 진흙탕 싸움처럼 소개했습니다. “여당은 공직을 미끼로 야당이 전직 국정원 직원을 회유했다, 야당은 당시 서울청장이 보신을 위해 수사결과를 왜곡했다고 주장했습니다.”양쪽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소개한 부분에서는 더 이상하게 대비를 시켜놓았지만 시간관계상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문제는, 왜 새로운 소식이고 중대한 권력기관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이걸 소개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언론이 무엇입니까? 권력을 비판하고 새로운 소식을 알린다, (그게 언론) 아닙니까?
이걸 감추는 KBS가 언론입니까? 한국방송공사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공영방송은커녕 언론의 기본도 못 갖추면서 시청료에서 지원을 받을 자격은 됩니까?
KBS가 국가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절명의 원칙이 아니라 공영방송이 있어야 상업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말하고 어두운 곳을 비춘다는, 사회의 보편적 정의를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KBS 스스로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에 대한 지원이 KBS로 가야 할 이유는 그저 관행이라는 것 말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공영방송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왜 공영방송을 살려야 하는가, 구체적인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권력을 비판하는 방송, 국정조사를 생중계하는 방송,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대로 소개하는 방송은 공교롭게도 대안방송들입니다. 이들을 위해 내가 내는 세금이 쓰여지는 게 공영방송을 지원하는 원래 취지에도 맞는 것입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그 방안을 찾을 것인지 고민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