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막말칼럼] '귀태' 파문서 드러난 박정희 실루엣
박정희는 노동자, 농민에게 자애로운 소탈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왕과 백성의 사이 즉 종적관계에서 발현되는 태도다. 그는 야당 지도자 또는 언론의 비판 및 견제를 견디지 못했다. 항상 자신이 공적지위는 물론 정신적 신망 면에서 국가 최상위에 있어야 하고, 누구도 자기와 같은 반열에 얼쩡거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종신집권으로 요약되는 ‘유신’이란 내란을 획책했고, ‘법 위에 법’ 긴급조치를 남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김대중 등 자신의 지위를 위협했던 야권 차세대 주자에는 살기(殺氣)를 표출했고, 심지어 측근 김종필을 비롯, 김성곤, 김진만, 길재호, 백남억 등 4인방이 ‘2인자’를 참칭하고 나서자 곧바로 축출했다. 동아일보의 기업 광고를 모두 끊어 고사시키려 했던 행태도 상징적이다. 박정희 왕조의 창조, 이것이 그가 말하는 ‘한국식의 민주주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