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가 있는 날이군요.
저희 아이도 시험을 보고 있겠네요.
그런데 전 오늘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서야 시험이란걸 알았답니다.
예, 공부, 시험, 입시…이런 말들이 저희 애와 저 사이에서 멀어진지 꽤 된 것 같아요.
긴 얘기를 짧게 하기 참 어렵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주절거린들 뾰족한 수가 나지는 않겠지만
오늘은 뭔지 속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고 싶네요.
무남독녀인 아이는 어려서부터 아주 활동적인 아이었어요.
동네 문방구 아주머니가 가끔 절 보면 딸을 가리키며 “생긴 건 딱 기집앤데…노는 건..어휴”
하실 만큼 늘 남자애들과 뛰어다니며 노는 여자 아이었죠.
초등 저학년까지는 별로 문제삼지 않았답니다.
여자애는 이래야 한다는 것도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했구요.
그런데 아무래도 초등학생 남자애들이 또래의 여자애들 보다는 개구진 경우가 많고
욕설도 먼저 시작하고 그렇잖아요.
애가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도 늘 남자애들과 어울리면서 책가방 던져 놓고 놀기 일쑤고
여자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더라구요.
전 아직도 제 딸이 동성애인지 어려서 남자애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동성들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한 것인지 확신은 못하겠어요.
한마디로 단짝 친구라는 것은 가져보지 못한 아이었어요.
또래들은 제 딸을 선머슴 같은 괴짜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렵에 시작된 것 같은데 딸아이가 같은 학교 여자애에게 장난처럼 좋아한다는
표시를 했던 것 같아요. 애들이 많은 곳에서 걔에게 좋아한다고 소리지르거나 하는
그맘때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애들한테 할 법한 행동이죠.
상대 여자애는 그걸 굉장히 싫어했고 또 꼬맹이들이어서 장난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특활 활동으로 밴드부를 하면서 알게 된 여자애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요. 밤새 싸이를 하거나 문자를 하고 선물이나 먹을 것을
사주는데 용돈을 다 쓰고 부족하면 제 지갑에 손을 대기도 했답니다.
그때부터 아이와 저의 전쟁이 시작됐어요.
한 마디로 그 애에 미쳐서 자기의 모든 생활을 놓아버린거죠.
공부도 손을 놓았고 점점 반항만 거세졌습니다. 오로지 걔의 충실한 친구 내지는 애인이
되는 것에만 몰두하더군요. 하지만 상대 아이는 이성애자고 그렇다 보니 제 아이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만큼 제 아이를 좋아할 리도 없었지요.
중학교 생활의 절반을 그렇게 전쟁처럼 살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전 제 아이를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짧게 잘랐던 머리도 사정사정해서 단발로 길러주고 이제부턴
정말 중요한 시기이니 잘해보자고 다독였죠.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아이는
또 다른 친구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리곤 또 반복이었죠.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선물을
주고 전화기를 붙들고 살고……그러느라 고1이 지났어요. 그 사이 아이와 제 사이는
정말 바닥을 치고 전 더 이상 아이를 되돌릴 기운을 잃었던 것 같아요.
고1 겨울방학이 시작할 때 이제는 정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시간이라고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고 제안을 했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답니다.
아이는 이번엔 다른 학교 여자애를 좋아하게 됐네요.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그 여자애의 학교로 가서 학원을 데려다주고
시간을 보내다가 학원이 끝나면 지하철로 세 정거장 정도 떨어져있는 그 아이의 집에
데러다주고 집에 오는 것이 일상입니다. 제게 받는 용돈 8만원과 이혼한 남편에게서 받는 15만원
모두를 그 아이에게 쏟아 붓고 있지요. 게다가 그 여자애의 학교엔 제 딸 보다 훨씬 남자 같은
여자애가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어요. 제 딸과 연적인거죠. 아이는 그 애를 이기기 위해서
그 여자애에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그 연적인 아이를 미워합니다.
하지만 정작 저희 딸이 좋아하는 그 여자애는 이성애자예요. 그래서 제가 타일렀죠.
너도 너의 연적도 그 여자애와 너희가 원하는 사이가 될 수는 없다고 .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결국 상처만 받을거라고.
하지만 아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나 봅니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아이와 제 사이는 엉망이 됐어요.
아이가 제게 원하는 것은 그저 용돈과 편안할 정도의 무관심, 그리고 자기가 속상할 때
들어주는 것입니다. 전 개선의 의지, 아이에 대한 화, 포기 사이를 헤매다 이젠 포기에
정착하는 중이구요. 도저히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안 쳐다보고 살다가도 어느 날 밤이면, 그리고 출근하는 길에 학교에 가려고
횡단 보도에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떄면, 그리고
오늘처럼 이런 시험이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될 때면 다시 한 번
가슴이 무너집니다. 저와 아이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구요.
아직 스무 살도 살지 않은 저 아이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되는가 싶어서요.
짐작이 가시겠지만 아이의 성적은 엉망이예요.
학급 35명 중 31등. 영수의 내신 점수는 20~30점.
상상도 할 수 없던 성적표를 이제 무심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지금 좋아하는 여자애와 끝난다고 해도 아이는 또 다른 상대를 찾아서 되풀이하겠죠.
인문계 고등학교를 최하의 성적으로 졸업한 여자가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는 삶은 무엇일까요.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자고 특성화고로 옮기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어도
자기는 대학에 가겠답니다. 미대에 가고 싶대요. 어떻게?라는 질문이 나오면 막힙니다.
자기도 자신이 어떤 상태라는 것은 잘 아니까요. 그리고는 과외를 시키든 어떻게든 하랍니다.
전 알아요. 아이가 그저 핑계를 대고 싶은 것이란걸. 막상 과외를 시킨다 한들 자기가 하겠단
의지가 없지 시작한 일은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서라도 다시 노력해봐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맨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이제라도 저희 아이에게 희망을 찾아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재수삼수를 해서라도 대학에 보내려면 이렇게 최하위권의 아이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여쭤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신세한탄이 되었네요.
세상에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특히나 자식은 내 맘대로 안된다는 말…
이젠 경험으로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제 딸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또 저 뿐이란 걸 알기 때문에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네요.
제게 어떤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들려주세요. 감사히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