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스텝으로 재직중입니다.
대형병원에 스텝으로 오면서 가장 좋았던 거가 (아니, 유일하게 좋았던거) 뭔지 아셔요 ?
수술 기구들이 참말로 좋았습니다.
제가 있던 병원보다 더 시설도 좋고, 수술기구니 약들을 좋은 거를 써서 정말 수술할 맛이 나더군요.
그런데 이제 그게 어렵게 됬네요. 이제 back to 90's 입니다.
개인병원에서 수술할 수 없는 어려운 케이스 환자들 수술하는것이
사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가 가지는 유일한 보람이기도 한데
이젠 대학병원들끼리 서로 떠넘기기를 해야 할 판이네요.
경영이 어쩌구 저쩌구를 떠나 의사로써의 보람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 병원장님은 제 후배 산부인과 스텝한테 "돈도 못받는 자궁근종 절제수술은 이제 하지말라" 고
직접적으로 오더했다는 군요. ㅠㅠ
착찹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이게 뭔지 모르겠네요.. 정말..
이제부터 개인병원에서 수술못하는 케이스들은 국공립 병원으로 가셔야 할듯합니다.
거기는 그래도 나랏돈으로 수술하니
어려운 케이스들도 해주겠죠 ?
대학병원에 오셔도... 저희는 정말 수술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저 자궁근종 한 사람한테 40개 까지 근종절제 한적도 있습니다.
수술시간만 4시간 넘게 걸리죠.
이제는 근종을 한개 수술해도, 40개를 수술해도 병원이 받을 수 있는 돈은 같습니다 !!
그럼 누가 근종을 40개 떼는 수술을 해주겠습니까 ?
산부인과 수가는 매우 저렴합니다.
이제까지도 저렴했습니다.
근데 이제는, 정말 수술을 하지 않는게 되려 병원에 도움이 될 지경입니다.
더 안타까운것은 대학병원급이 아닌 1, 2차 병원들은
포괄수과제가 이득이되기도 하기때문에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라는 군요...
산부인과 내부에서 목소리가 합쳐지지 않는 상황...
3차 병원 병원장님들은 산부인과때문에 골머리 ㅠㅠ
수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날수도 있다니...
정말 울고 싶습니다.
산부인과 학회에서는 오히려 대형병원들은 이에 굴하지 말고
쓰던거 계속 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러지만.
도대체 월급쟁이들은 누구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건지 ㅠㅠ
그럼 아예 이분화해서
1, 2차 병원들은 이렇게 하고
3차병원급들은 어떻게 하자... 다들 모여서 대책을 좀 의논하고 싸우던지...
이건 이렇게 하잔말도 없고 저렇게 하잔말도 없고ㅠㅠ
오늘도 뱃속에 유착 심하게 진행된 자궁내막증 환자 수술하면서
돈 못받을 비싼 adhesion 방지제 하나 달라고 해서 뱃속에 뿌리고
이게 내가 뭐하는 짓인지 ㅠㅠ
내가 이거 쓰면서 왜 병원에 미안해 해야 하는지 ㅠㅠ 하는 자괴감에 시달립니다.
내가 이거 쓰면 병원에서 욕하겠지요 ㅠㅠ
나는 왜 수술을 하면서 욕먹고 있는 건지
의약분업때 거리에서 데모하면서도
의사된것에 후회가 없었건만
지금은 진정 슬프군요.
해결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돈있는 사람들은 로봇으로 수술하면 되고 (로봇은 포괄수과제 제외라고 하더군요)
돈없는 사람들은 질 낮은 약에 질 낮은 기구써서 수술받으면 되겠죠.
이게 왠 의료수준 낮추기 정책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정 짜증나고 슬프네요.
해결방법이 없는 걸까요 ?
82쿡 여러분들, 지혜를 좀 짜내주셔요.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들, 어려운 환자 케이스들 해결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월급이 떵떵거리고 살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대학병원 의사라고 누가 굽신거리면서 존경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유일한 삶의 낙을 뺏지 말아주셔요 ㅠㅠ
이런글 올린다고 또 욕하실까요 ? ㅠㅠ
정말 진정 답답하고 어디 호소할때도 없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