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수영장에 딸아이를 데려다주려고 길을 나서니 아쉽게도 우리가 타고가야할 버스가 눈앞에서 바로 사라지네요.
저버스를 또 기다리려면 한 30분은 기다려야 할텐데 하면서 길을 건너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의자에 앉아있으니 맞은편 요양병원 7층짜리 건물이 보입니다.
어느 창문에는 파란색 수건이 한장 걸려있는 모습이 보이고 어느 창문에는 약품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그런 모습을 보니까, 결혼전 근무했었던 작은 정형외과병원이 떠오르더군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딴지 얼마안되어서 지역신문을 보고 취업한곳이 우리동네에서 세번정도의 구간을 거치면 다닐수있는 정형외과였어요.
이제 막 개원한 병원이었는데 하루 24시간 근무하고 다음날은 쉬고..
그러길 1년 2개월을 그렇게 근무했는데 앛미 8시 30분부터 오픈해서 저녁 7시까지 낮근무였고,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까지 또 그렇게 부엉이처럼 온전히 날밤을 새워 근무를 했어야 했어요. 밤근무는 혼자 했어야 했는데 밤에 근무하다보니, 남편에게 얻어맞고 갈곳이 없어서 맨발로 달려온 근처 아파트아줌마도 있었고, 괜히 화장실 찾으러 온 술취한 아저씨도 있었고 갑자기 교통사고가 크게나서 9명씩이나 응급환자들이 몰려온적도 있었고..
혼자 베드 깔고, 그렇게 몰려온 환자들, 머리꿰매고 드레싱하고, 주사놓고 약준비하고,,
그런데 그게 힘든게 아니라 제가 26세라는 나이에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준비해서 그 이듬해인 27세에 완전 무경력으로 정형외과를 들어갔잖아요.
문제는 저를 다 왕따시키는겁니다.
물리치료사부터 방사선사, 그리고 같은 조무사 2명까지. (경력자였음)
그리고 제가 피부는 아주 흰편이었는데 얼굴이 너무 못생겼었나봐요.
가끔 저보고 코가 너무 낮다고 웃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 소개팅에서도 대놓고 맞은편남자가 마음에 안든다고도 말하더니 혹시 모르니 조금 더 만나보겠다고 하면서 만날때마다 그렇게 제게 화를 낼수가 없더라구요.
그리고 자신은 홀어머니가 있고 가정형편이 넉넉치 않은데 결혼을 하면 같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화이트데이때 사탕바구니를 선물해준 다음날은 그게 얼마나 비싼데~~넌 왜 말수가 이리도 적냐~~하고 제앞에서 징징대는 말투로 몇번을 리바이벌을 하더라구요. (지금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때 한말 또 하고 또하면서 은근히 사람을 고문하고, 돈을 쓸줄모르는 소심한 성격)
나중에야 알았어요. 내가 못생겨서 맘에 안들어 그 사람이 그렇게 면전에서 내 자존심을 구겨놓고 앙탈을 부린것이라는것을요.
우리도 , 엄마가 저렴한 가격대의 후줄근한 원피스를 사주면서 입고 학교에 가라고 하면 저절로 목소리도 징징거려지고 짜증을 부리면서 앙탈을 부리잖아요.
그사람이 꼭 그랬거든요.
다음날 차분한 목소리로 이별을 통보하니, 알았다고 전화를 끊는데 한편으론 너무 속시원한 느낌까지 들더라구요.
그후로 그 사람 이름도 얼굴도 흐지부지 잊혀져 기억이 안나는데 그 짜증섞인 앙탈부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생각나요.
왜냐면 제가 27년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소개받아본 남자였거든요.
고마운게 하나있다면, 제게 스킨쉽한번 하지않은 점...
버스가 오기 30여분동안 그 요양병원을 올려다보니 현충일, 1시30분 무렵의 그 한낮은 30도가 넘는 여름 그자체로 길바닥도 작열하는 햇빛으로 넘쳐나고 하늘은 구름한점없이 푸르른데 잊고있던 예전일이 마구 떠올라서 목이 갑자기 타는겁니다.
그리고 제 어린시절도 오버랩이 되면서 저는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국민학교시절을 무서워했어요.
가난한 단칸방,매일 술을 마시고 가족들을 못살게 구는 아빠, 그리고 삭정이처럼 마를대로 마른 엄마,
어릴때의 저는 겁이 참 많았어요.
학교에서도 늘 겁이 잔뜩 실린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았거든요.
늘 체벌만 하는 선생님들이 무서웠고 매일 먹을것만 안다고 엄마한테도 혼나는 배고픈 제게 희망은 전혀 없었던 그 시절,
비열하고 못된 남자아이들에게 시달리기도 했었던 그 때, 집에다간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참아내면서 국민학교 시절을 버텨왔는데 늘 준비물도 못해가고 공부도 못했던 그 유년시절이 제겐 꼭 북한 수용소에서의 생활같이 비참하고 슬픈, 게다가 무더운 여름한낮같은 시절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정확한 규격으로 배열된 학교창문이나 병원창문들을 올려다보면 막막한 어떤 끝없는 환멸을 느껴요.
저 창문안에서 나는 얼마나 집에 가고싶을까..
하는 그런 감정.
그러면서 직장생활중에, 은근히 당했던 몇번의 왕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걸까 문득 오지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몇번을 되새김질했네요.
그리고 무료한 얼굴로 역시 버스를 기다리는 열살딸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새삼 한군데도 나를 닮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저도 직장생활을 잘할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