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8월17일 청천병력과 같은 아버님의 죽음을 시작으로 온 가족은 풍비박산의 길로 들어섰고 37년간 40여 차례의 이사를 할수 밖에 없었던 민족지도자 장준하선생님의 유가족들.
지난 3월30일 시청앞에서 많은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신후 안장되셨습니다
지난 3월26일 법의학계 세계권위자인 이정빈교수의 '가격에 의한 1차 죽음 후 추락했다'는 감식 결과가 발표된 후 지난 3월 23일 서대문형무소자리에서 있었던 추모사진 전시회를 시작으로 27일 오후 시청앞 동편에 추모소를 만들어 많은 시민들의 추모를 받았습니다. 저는 시민상주로 추모객들에게 유가족들을 소개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큰아들인 장호권씨는 딸만 둘 두었고 둘째아들 장호성은 딸 하나 아들 하나, 미국에 있는 셋째 아들 장호준은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 왼편부터 둘째 장호성, 큰아들 장호권씨부부, 미국에 있는 셋째 장호준목사 외동딸, 장호권씨 둘째 딸, 제주에사는 장준하선생님 막내딸 내외, 장준하 선생님의 종손인 호성씨 아들 장현욱군-
2009년 노무현대통령 서거때에는 별안간 닥친 일이고 쥐바기에 대한 결기가 있어서 그런지 12시간 이상을 혼자 상주자리를 지켜도 피곤한 줄을 몰랐는데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5시간을 서서 있었더니 다리도 허리도 아프고....
평택에서 16개월된 사내아이를 안고 올라왔다는 젊은 애기 아빠, 초등학생, 고등학생, 정복 입은 경찰관등 장선생님께서는 많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셨습니다.
그제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친의 무덤을 두번씩이나 파야만 했던 불효에 대한 속죄로 시묘살이를 하고 있는 장호권선생을 뵙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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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묘살이를 하고 있는 장남 장호권씨 경향신문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묘소 곁에는 경사가 있어 계단 아랫쪽에 설치된 천막
천막 내부에 계신 장준하선생님
그제 만나 언제까지 하실겁니까 물었더니 “아버님과 그사이 못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고 아버님이 ‘그만 해라’ 하실 때까지 할 계획입니다.”라는 군요.
그제 오후 장준하공원 앞 도로를 지나치던 차량이 후진하여 들어와 묘소에 큰절을 올리는 몇분도 만났습니다.
서울보다는 북쪽이고 임진강이 가까워서 기온이 차갑더군요.
저녁 늦게 둘째 아들 호성씨가 와서 오늘 아침 비가 오는 가운데 두형제가 삼우제를 지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시는 분들께서는 시묘를 살고 있는 장호권씨의 손을 한번 잡아드림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