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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모자라지만 몇가지 말씀

고맙습니다 조회수 : 2,885
작성일 : 2013-03-27 10:56:06

아까 귀농 생각하신다는 분 글 읽고 이제 4년차 농부로 몇 자 적어보려고 글 씁니다.

저는 사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둘 다 초등학생인 40대 초반입니다.

 

다들, 농사짓겠다 내려온 남편 "따라" 오다니 어떻게 그런 마음 먹었냐고 대단하다고들 하십니다. 네, 저도 물론 제가 가겠다고 한 게 아니라 남편 따라 온 게 맞습니다. 남편은 적자생존, 경쟁과 소비적인 삶의 방식이 싫어 농사를 짓자고 하고, 만일 제가 싫다고 하면 이혼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고... 그래서 저도 처음엔 반대하다가 남편이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고, 아이들에게도 생명을 키우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3년 오지게 고생했습니다.

그 고생담은 나중 얘기구요... 먼저 귀농하시겠다고 먼저 남편이 말씀꺼내신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불쑥, 귀농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그저 홧김에, 술김에 나온 거라 여기지 마시고 그 이야기를 할 만큼 사회생활이 힘들다는 걸 잘 달래주시고 힘내시라 위로와 격려 아끼지 말아주세요. 오죽하면 저런 소리를 할까 잘 다독여주시고, 그 다음에 왜 내려가고 싶은지 그 이유를 잘 들어주세요. 그리고, 그 후에 그 이야기를 들은 내 생각은 이러하다, 짚어주세요.

정말 귀농은 한 사람의 의지만으론 지속되기 어려운 결정이랍니다. 삶의 변화라는 게 어마어마하지요. 아이들 교육이나 안정된 생활을 중시하는 여자들에겐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막상 내려와서는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많습니다. 남한에 사는 사람이 북한의 삶에 대해선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밖엔 알 수 없듯이, 도시의 삶과 농사짓는 삶 역시 그렇게 눈으로 보여지는 일면만으로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부모님이 짓고 계신다 해도 자식들은 그저 며칠 일손 돕는 거지 온전한 경험은 되기 어렵습니다. 어려서 지어봤다, 는 섣부른 판단의 근거도 되지 않습니다. 농법이 얼마나 바뀌었는데요. 더군다나 농사로 소득을 올리실 생각이면 예전 이야긴 꺼내지도 마세요.^^

어떤 작물을 짓느냐, 그 동네의 분위기는 어떠냐에 따라 소득도, 성향도 사람에 대한 배려도 많이 다릅니다. 한 지역에서도 다 다른데 농사짓지도 않는 주변인의 이야기만으로 어떻게 귀농후의 삶을 상상해보겠어요. 그래도 미리 알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으시다면 귀농운동본부에서 3개월마다 여는 <귀농학교>에 가보시고, 네이버 카페 <지성아빠의 나눔세상>같은 귀농 카페들에도 가입하셔서 먼저 내려가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살펴보세요. 이런 교육은 구체적인 작물재배법, 이런 게 아니라 다들 어떻게 사는지 시골살이의 입문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충의 감을 잡는 거지요,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정도로 여기시면 됩니다. 마음의 준비인 셈이지요. 본인이 직접 재배 전반을 익히고 싶으시다면 또 그에 관련된 교육도 믾습니다,

짓고 싶은 작물이 있거나, 구체적인 귀농지가 결정됐다거나 뚜렷한 재배 계획이 있으시다면 지역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이라든가 여러 교육들이 많으니 거기 가셔서 배우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전문적인 강사들에 의한 수업도 알차고,  지역민이나 같은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경험과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고, 인맥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워낙 교육과 지원이 많으니 잘 골라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해보는 게 가장 좋은 예비교육이랍니다. 

또 농사 지을 작물의 판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즘은 공판장보다는 직거래를 통해 이익을 높이는 분들도 많습니다. 도시 살던 사람에겐 주변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많아 판매에 유리합니다. 이 부분도 내려오시기 전 잘 생각해보셔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시기에 꼭 필요한 건 농사지을 땅과 집, 창고와 농자재를 구입할 경제적인 여유입니다. 저희같은 과수농사가 좀 전문적입니다. 그래서 저희 지역에서는 귀농을 생각하고 지역농업기술센터에 문의하시는 분들께 "3억 들고 오시는 거 아니면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말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금액은 땅 구입비, 1-2년치 생활비, 집이나 창고 건축비나 농기자재 구입비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 아닙니다. 생활비와 땅 구입비 정도입니다.  이 금액도 일정 규모로 땅을 매입하고 생활비와 영농비 해결하는 정도입니다. 귀농할 때 여윳돈은 많으면 많을 수록 삶이 여유롭습니다. 그러니, 무작정 내려오지 마시고 먼저 이후에 어떻게 땅을 구입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며, 집과 창고, 여러 농자재-여기서 농자재라면 필수항목인 1톤 트럭, 트랙터, 경운기, 운반차, 약차 등등의 기계들과 리어카, 컨테이너박스, 소소한 자재들 모두를 일컫습니다. 농자재, 참 비쌉니다!

최소 1년치의 생활비는 있어야 버티실 수 있어요, 투잡을 하거나, 연금이 나온다거나, 월세가 들어온다면 모를까요. 쓸 데는 많고 들어올 데가 없는 생활이라면 맨날맨날 얼굴 붉힐 일 투성일테니까요. 그러니, 경제적인 상황 꼼꼼히 따져보고 언제쯤 내려가면 좋을지 꼭 같이 의논하세요. 땅과 집은 당장 사지 않아도 되니 먼저 농사 지을 작물과 내려갈 지역을 결정하는 게 최우선순위랍니다. 저도 내려가자고 말하고 나서 작물 정하고 지역 정하는 데 7년 걸렸습니다. 단번에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면 시행착오가 많습니다. 꼭 같이 여행다니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농사짓는 거 철철이 살펴보고, 귀농선배들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다같이 나들이 다니듯 다녀보세요. 꼭 천천히 찬찬히 같이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당장 내려오지 않다라도 이렇게 다니다보면 마음도 다잡게 되고, 새로운 소통의 시간이 생겨 참 좋더라구요. 생의 전환점이라 여긴다면 굳이 귀농하지 않아도 소중한 경험으로 기억되겁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같이 농사를 지으면 경제적으론 여유가 있겠지만, 부모님 방식에 맞춰서 지어야 하니 몸도 힘들도 마음도 힘든 경우가 많은듯 합니다. 친정부모님과 지낸다면 좀 나을까요? 글쎄 경제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라서요. 이 부분에 대해선 정말 잘 의논해보시고 결정은 신중히 하시길 바랍니다. 다수의 경우이나 부부 뿐 아니라 가족들과의 상의와 합의가 참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농에 대해선, 여러 다큐멘타리를 통해 다들 성공적인 편안한 삶, 여유로운, 자급자족의,... 이런 좋은 소리들만 들려오더라구요. 이건 언론을 통해"뽀샵" 효과도 크다고 보여집니다.

귀농하고 억대 매출... 이러시는데 실상 순이익은 얼마일까요.

일단, 농사와 내가 잘 맞는지 아시는 게 필요합니다. 닥치면 뭐든 하겠다는 생각이시면 도시에서도 하실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고자 하신다면 귀농은 큰 도전이지만, 그 이상의 기쁨과 행복도 누리실 수 있겠지요. 그러니 부디, 잘 준비하시고, 같이 의논하셔서 올바르게 삶의 방향을 잡아가기길 바랍니다.

 

 

 

 

IP : 112.165.xxx.106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3.3.27 11:01 AM (115.140.xxx.126)

    귀농 관심자는 아니지만, 글이 참 좋네요. 추천합니다.

  • 2. 귀농귀촌
    '13.3.27 11:13 AM (61.77.xxx.108)

    귀농보다는 귀촌을 하고 싶은데 귀촌이야말로 여유가 있어야겠지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3. 별헤는밤
    '13.3.27 11:35 AM (180.229.xxx.57)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구구절절 지금 제게 큰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 4. 체험에선
    '13.3.27 11:57 AM (121.88.xxx.128)

    우러나온 진실한 조언이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 5. 감사해요
    '13.3.27 12:48 PM (61.33.xxx.59)

    아주 유익한 정보 좋은 글 추천합니다

  • 6. 귀촌
    '13.3.27 1:15 PM (211.40.xxx.228)

    나이들면 뭐하고 살아 생활비를 줄일까하다 귀촌할까 하는데...도움됩니다.

  • 7.
    '13.3.27 1:23 PM (39.121.xxx.190)

    아주 현실적인 글이고 도움 많이 되는 글이네요.긴글 시간내서 써주셔서 감사해요.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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