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형이라... 대학 땐, 데모도 주동하고 그랬는데, 직장생활하면서 내 스스로의 고민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15년....
이리저리 떠돌다 남편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고서야 지리산에 다시 가 보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지리산이 그렇게 크고 깊은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5개 시군에 걸쳐있다는 것이 가늠이 잘 되지 않았지만, 어제 서울오는 버스에서... 가도가도 이어지는 산자락에, '아, 저래서 빨치산이 10년 가까이 숨어살 수 있었던 거구나...' 싶었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 희미하게 잃어버린 시대와 역사에 대한 공감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태백산맥이며, 토지... 혼불. 그런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여기 82보면서 나 자신을 다잡고, 전라도 여행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내 문제에만 골몰하던 슬픈 15년을 떠나보내고,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다리가 그리 튼튼하지 못해 인월-금계(둘레길 2코스) 구간 20여 킬로미터 중 6킬로미터 정도만 걸었는데도 다음날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어요.
장대한 지리산을 겨우 코딱지만큼도 아닌 정도만 걷고 왔으나 나름 수확이 있었습니다.
바로... 민박집의 발견.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코스인 2코스, 인월 달오름마을에서 이틀을 묵었습니다.
달오름마을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민박집 주인님들의 사진과 음식 사진이 있어, 대충 주인장 인상만 보고 선택한 민박집.
그런데, 그곳에서 정말 멋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민박집 안주인이 직접 지리산 재료로 담근 장들과 음식들에 감탄하고 감동.
제가 원래 제아무리 맛집이라고 한 번 이상 가지 않는 입짧은 사람인데, 거기서 이틀간 총 6끼를 먹었네요.
곰취나물이 잠긴 간장까지 숟가락으로 닥닥 긁어먹을 정도로 감탄과 감동의 음식들.
거기 민박집에서 '지리산 나물밥'이라는 식당을 3개월 전부터 운영하고 계시다고 하더군요.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모든 음식이 입에 착착 붙어서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뭘 사먹지를 못하겠더군요.
지리산이고 뭐고, 그저 지리산 나물과 지리산이 기른 고기로 만든 음식만 먹고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보니,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그곳의 맛에 대해 칼럼을 썼더군요.
나름 제 입맛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도 받고..^^
실은 혼자만 알고 혼자서만 먹고 혼자서만 그 민박집에 머물고 싶었는데 82에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굴뚝같더라구요.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지리산 둘레길 2코스는 아직 헐벗은지라,(아직은 겨울풍경) 크게 볼 것이 없었고, 오히려 인월에서 버스타고 뱀사골로 들어가서 뱀사골에서 간단한 산행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2코스는 해를 정면으로 받으면서 걷는 길이 많고, 흙길보다는 시멘트길이 많아서 걸음이 불편했습니다.
주인장이 알려주신 2코스 중, 산 하나를 넘어서 만나는 '히말라야'라는 인도에서 유학했다는 부부와 자그마한 딸아이를 보는 풍경도 좋았고, 라씨도 맛났습니다.
제 남편은 라씨가 나왔는데 짜이를 시킨 줄 알고 "그 홍차맛 나는 건 왜 안나오냐"고;;;
우리밀 식빵을 구워 사과쨈과 같이주는 이천원 짜리 토스트도 잘 먹었답니다.
제 주말여행은 역사와 시대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맛집기행으로 급변경된;;; 그런 여행이었네요.
그 시작은 심히 창대하였으나... 끌끌끌...
지리산 여행하시고 싶은 분들께 드리고픈 두서없는 정보였습니다.
그리고, 차편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인월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요. 지리산 고속이라고...
동서울 터미널 사이트 검색하셔서 표 미리 예매하셔야 해요.
기차로는 남원역까지 가서 남원역 앞에서 30분마다 한번씩 다니는 인월행 버스를 타세요.
버스 막차시간은 오후 8시 반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