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2년 됐을 겁니다. 복도식 아파트 1층 제일 끝집에 사는데
잦을땐 하루 한 번, 뜸할 땐 일주일에 한 두 번, 끊임없이 현관을 걷어차고 도망갔어요.
처음엔 귀여운 수준이었죠. 그냥 벨 누르고 튀어서 "누구세요?" 나가면 아무도 없는 정도.
딱히 벨 한 번 울린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니고
바깥에서 지들끼리 킬킬거리면서 하도 티를 내니까 그냥 반응도 안 하게 됐어요.
저 어릴적에 남의 집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본 기억도 떠오르고.. 저러다 말겠지 했지요.
점점 심해지더군요. 벨을 한번이 아니라 세네번씩 연달아 울리더니
나중엔 거기에 세게 두드리기. 나중엔 아예 쾅! 걷어차는 걸로 강도가 높아졌어요.
늘 시간도 일정하죠. 학교 끝나고 귀가하시는 길에 복도 끝집마다 걷어차시는 게 일과인듯.
조용히 집안에 있다가 갑자기 밖에서 문을 걷어차면 얼마나 놀라는지요.
나중엔 그 시간 언저리에 바깥에서 남자아이들 웃음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오늘 거실에 서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한번 쾅 현관을 걷어차는 거예요.
순간 미친듯이 욕하며 쫓아나갔어요. 다른때 같음 고개 내밀고 두어번 둘러보고 말았을텐데...
아무리 애들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어서. 분노의 질주;;;
그리곤 도망가던 셋 중 한 녀석을 잡았네요.
근데 참나... 전 되게 어릴 줄 알았는데. 중학생.
잡힌 녀석 왈, 자기가 찬 게 아니래요. 도망간 녀석들이 찼대요.
자기는 그냥 옆에 있다가 제가 쫓아오니까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됐다고, 이름이랑 사는 곳, 전화번호 물으니 기가 죽어서 대답하는데
가짜 번호 같아서 그녀석 전화기로 저한테 바로 걸어보니까 역시 거짓말.
다시 혼내고. 다른 녀석 이름이랑 번호 물으니 전화번호는 모른다고.
그 녀석 핸드폰에 검색하니까 바로 나오고.
전화를 걸어 니 친구 잡았으니까 당장 몇 동 경비실 앞으로 오라고 했죠.
좀 지나니 두 녀석이 쭐래쭐래 오더군요.
근데 둘 중 큰 녀석이 자기는 중학생이고 작은 녀석은 초등학생인 지 동생이라며,
그런데 자기네는 억울하다며, 문을 걷어찬 건 자기네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었다는 거죠.
자기네는 그 근처에서 우연히 화약을 터트리고 놀고 있었을 뿐인데
누가 우리집 문을 발로 차고 도망갔고, 제가 화가 나서 뛰어나오기에 얼결에 도망을 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네는 이것을 가지고 논 것인데 이 소리를 제가 문 차는 소리로 착각한 게 아니냐며,
손수 빵빵 터트리는 시범을 해보이시며 이렇게 억울할 순 없다는 표정으로 호소를 하더군요.
그 잠깐 오는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려 각본을 짠듯했어요.
가만 쳐다보다가.. 이미 얘가 다 말했다고. 너희가 찬 거 안다 하니까
아니라네요. 아마 쟤가 무서워서 거짓말을 한 걸 거래요.
먼저 잡힌 녀석에게 물었죠. 너 여태 나한테 거짓말 한 거니?
아니래요. "진실"이래요. 쟤네가 찬 거 맞다고.
삼자대면이 묘한 긴장감을 띄어가는데
가장 작은, 초딩 동생이라 일컬어진 녀석이 결연하게 입을 열면서 가로되,
자기도 쟤도 걔도 모두 중학교 1학년. 같은 학교 친구들이라고.
문은 자기네가 찬 게 맞답니다. 형이라던 녀석이 작게 "개새끼.." 하더군요.
애들한테 말했어요.
그래, 사실대로 말해라. 거짓말 하려고 하지 말아라.
솔직히 너네가 했다고 인정한다고 내가 너희들을 때리겠냐 어쩌겠냐.
집에 쫓아가고 부모님한테 이르고 할양이었으면 이렇게 너네랑 얘기하고 있지도 않았다.
내가 바라는 건 잘못했다는 사과와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몇년동안 특정 집을 정해놓고 하루이틀꼴로 그 집 문을 걷어차는 건 장난이 아니라 괴롭히는 거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놀라고 스트레스 받는다.
아기가 있는 집도 있고, 수험생이 있는 집도 있다. 그러는 거 아니다.
누가 너희집 문을 매일 걷어차고 도망가면 기분이 어떨 것 같냐.
결국 세녀석 모두의 인적사항 적고 사과와 약속 받고 돌려보냈네요.
참나.. 코밑은 거뭇거뭇하게 수염까지 난 녀석들이 저런 장난치고 다니고.
면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몇차례나 하며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만하고.
잡고나서도 좀 씁쓸해요. 앞으론 안 그래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