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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외로움

푸른봄 조회수 : 3,706
작성일 : 2013-03-05 21:46:08

아이학교보내고, 서둘러 설겆이도 하고, 옥상에 빨래도 널고 나니 볼에 와닿는 바람의 감촉이 참 부드럽네요.

아침에 일어나, 샴푸한 제 머리칼에서도 은은한 향기가, 잊었던 먼 옛날의 친구가 보내주었던 꽃편지같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면서 블링블링하게 주변 아지랭이와 함께 공기중에 떠다니는 것도 기분이 좋아서 잠시 눈을 감고 옥상한켠에 있는 낡은 평상위에 걸터앉아있으니, 빨랫줄마다 걸린 청결한 빨래들이 소리없이 펄럭거리는 모습이 어쩜 그리 평화로운지..

 

그 상태로 눈을 감고 있으니 햇볕속에 빨래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제 눈꺼풀위로 음영처럼 언제까지고 펼쳐지네요.

이제 눈앞의 앞산자락에도 벚꽃이 피고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장관이 펼쳐지리라 하는 생각과 함께 외로움이 제 등뒤에 가만히 와 서있네요.

친구들도 없고, 나이 39세에 이제 갓 10살이 되어 신학기를 맞이한 딸아이는 지금쯤 학교에 있을것이고.

없는 살림에 반지하에서 아이를 낳고 다섯살이 될때까지 정말 치열하게 아이를 키워내면서 살아온 지난날들.

일찍 조실부모한 남편과 함께 살아낸 세월들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죠.

학력의 끈이 짧은 탓에 낡은 작업복차림으로 박봉의 월급으로 하루온종일을 기계앞에서  소음과 싸우며 일하는 남편은 반지하방에 와서도 밤에도 종종깨서 우는 아기때문에 신경질을 많이 부렸어요.

눈을 부릅뜨고 화를 쏟아내는 남편앞에서 아기를 안고 묵묵히 그 많은 아픔들을 감내해야 했던 제게 빛한점 들어오지 않던 반지하의 어둠은 밤에는 특히 제게 공포였어요.

한동안 스탠드가 필요했는데도 돈이없어서 그걸 못사다가, 나중에 그 스탠드를 사가지고 돌아오던 어느 가을날, 이젠 칠흑같은 그어둠도 더이상 내손바닥에 물컹하게 잡히지 않을것이란 즐거움으로 가득차 밑창이 다 새어서 빗물이 늘 고여있는 낡은 단화도 아무렇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평소에도 듣고 본것은 많아서, 아기데리고 남의 집에 가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정말 반지하에서 치열하게 아이를 키우면서 살았어요. 그때에도 가계부를 쓰면서 작은 메모를 매일매일 남기곤했는데 가끔도 펼쳐보면 지나간 제 삶의 편린들이 지금도 가슴아프게 폐부를 찌르더라구요.

그런 제가 참 열심히 살은것 같은데, 돌아보면 늘 저는 혼자라는 사실이 더 울컥해서 오늘같이 옥상가득 무지갯빛으로 어롱대는 이 봄날 빨래들을 하얗게 널어놓고 눈물그렁한채 앉아있어요.

벚꽃이 분분하게 날려서 좋을 봄날,

저는 주택공사로 매각되어서 모두 이웃들이 다 이사나가고 텅빈 빌라에서 오직 우리만 남아 넓은 옥상한켠 낡은 평상한끝에 앉아 눈물만 그렁그렁..

혼자 이렇게 앉아있으면 그 밝은 봄볕에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애잔해지고 지나간 옛일들이 가슴저려와서 혼났네요.

 

 

 

IP : 124.195.xxx.152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님..
    '13.3.5 9:55 PM (125.135.xxx.131)

    39살 그 나이만으로도 아름다워보여요.
    다소 힘든 세월도 보내셨지만..따사로운 봄 날 평상에 앉아 아련한 추억도 생각하고..좋네요.
    좋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심성이 따뜻하셔서..행복도..

  • 2. 에겅
    '13.3.5 10:03 PM (112.153.xxx.54)

    힘내시구요...좋은날이 곧 오리라 생각되요..

  • 3. 다른걸 다 떠나서
    '13.3.5 10:08 PM (119.70.xxx.194)

    무슨 글을 이렇게나 잘 쓰시는지? 감탄하고 갑니다

  • 4. 저도
    '13.3.5 10:20 PM (121.171.xxx.74)

    님 글솜씨에 감탄하고 갑니다
    굉장한 보물을 갖고계세요

  • 5. ...
    '13.3.5 10:28 PM (118.38.xxx.131)

    글 잘 쓰시네요.
    갈고 딱으시기 바랍니다

  • 6. 저도요
    '13.3.5 10:38 PM (112.153.xxx.54)

    정말 아름답게 글 잘쓰시네요....공모하는데 꼭 보내보세요.~~

  • 7. 서정적감성
    '13.3.5 10:43 PM (211.234.xxx.190)

    감수성이 대단하시네요
    사랑스러우신분 같아요
    행복하세요

  • 8. 로오라
    '13.3.5 10:53 PM (168.154.xxx.35)

    야 참 글을 잘 쓰시네요.

  • 9. 행복 한스푼
    '13.3.5 11:00 PM (203.226.xxx.246)

    봄날은 누구에게나 오고 또 말없이 가 버리지만 남아있는 자욱에 우린 지난날을 회상하죠 님이 계신 작은 뜨락에도 봄볕이 따사롭게 내려앉을겁니다 고운심성으로 빚어낸 글 한점 한점이 타인같지않은 마음에 잠시 머물러봅니다

  • 10. 무크
    '13.3.5 11:00 PM (118.218.xxx.17)

    와우....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이 이미지가 머릿속에 지나가네요......잔잔한 여운까지....
    꼭 틈틈히 글 써 보세요!!!!
    세월의 고단함을 통해 어쩌면 원글님 안의 잠재된 재능이 더 단단히 여물었을지 도 모르쟎아요.
    예술적 감각이 탁월하세요.

  • 11. ..
    '13.3.5 11:04 PM (223.33.xxx.141)

    남보다 못한 가족,친구라는 이름으로 힘들게하는
    그런 인연들보다는 차라리 나아요
    너무 외로워 마세요
    어차피 인생은 혼자 타박타박 걷는 거예요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라 꼭 복 받고 사실거에요
    건가하시고 행복하시길 빌어요

  • 12. 새바람이오는그늘
    '13.3.5 11:05 PM (58.141.xxx.148)

    이 글 읽는 저도 눈물이 그렁그렁...

    인간은 정말 외로운 존재인거 같아요... 결혼을 하던 안하던, 아이를 낳았던 낳지 않았던.

    올해 결혼 10년차이지만, 아직도 날 몰라주는 남편에게 야속한 요즘에 공감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13. 저에게도..
    '13.3.5 11:22 PM (39.7.xxx.78)

    대충 훝어보다 글솜씨에 놀라 다시 첨부터 차곡차곡 읽어봅니다... 내면이 단단하신 분이라 느껴지네요..
    글솜씨가 부럽구요..

  • 14. 해피해피
    '13.3.6 4:06 AM (110.70.xxx.189)

    저는 38인 미혼이지만 마음의 먹먹함이 느껴집니다

  • 15. 아휴..
    '13.3.6 9:37 AM (113.10.xxx.156)

    님....진정으로 하다못해 라디오시청자사연이라도 글좀 기고해 보세요...표현력이 남다르세요...

  • 16. ok
    '13.3.6 9:42 AM (125.129.xxx.139)

    외로움도 승화되면 이런글이 됩니다
    외로움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예요
    사람들과 무리지어 살다보면 사색은 안되죠

  • 17. 쥬니맘
    '13.3.28 6:31 PM (14.44.xxx.5)

    정말 님 외롭지 않으세요 .라디오 작가 해보세요. 우리 엄마들의 감성을 충분히 울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듯 해요.


    소설을 옮긴듯 한. 문화센터나 정말 공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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