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학교보내고, 서둘러 설겆이도 하고, 옥상에 빨래도 널고 나니 볼에 와닿는 바람의 감촉이 참 부드럽네요.
아침에 일어나, 샴푸한 제 머리칼에서도 은은한 향기가, 잊었던 먼 옛날의 친구가 보내주었던 꽃편지같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면서 블링블링하게 주변 아지랭이와 함께 공기중에 떠다니는 것도 기분이 좋아서 잠시 눈을 감고 옥상한켠에 있는 낡은 평상위에 걸터앉아있으니, 빨랫줄마다 걸린 청결한 빨래들이 소리없이 펄럭거리는 모습이 어쩜 그리 평화로운지..
그 상태로 눈을 감고 있으니 햇볕속에 빨래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제 눈꺼풀위로 음영처럼 언제까지고 펼쳐지네요.
이제 눈앞의 앞산자락에도 벚꽃이 피고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장관이 펼쳐지리라 하는 생각과 함께 외로움이 제 등뒤에 가만히 와 서있네요.
친구들도 없고, 나이 39세에 이제 갓 10살이 되어 신학기를 맞이한 딸아이는 지금쯤 학교에 있을것이고.
없는 살림에 반지하에서 아이를 낳고 다섯살이 될때까지 정말 치열하게 아이를 키워내면서 살아온 지난날들.
일찍 조실부모한 남편과 함께 살아낸 세월들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죠.
학력의 끈이 짧은 탓에 낡은 작업복차림으로 박봉의 월급으로 하루온종일을 기계앞에서 소음과 싸우며 일하는 남편은 반지하방에 와서도 밤에도 종종깨서 우는 아기때문에 신경질을 많이 부렸어요.
눈을 부릅뜨고 화를 쏟아내는 남편앞에서 아기를 안고 묵묵히 그 많은 아픔들을 감내해야 했던 제게 빛한점 들어오지 않던 반지하의 어둠은 밤에는 특히 제게 공포였어요.
한동안 스탠드가 필요했는데도 돈이없어서 그걸 못사다가, 나중에 그 스탠드를 사가지고 돌아오던 어느 가을날, 이젠 칠흑같은 그어둠도 더이상 내손바닥에 물컹하게 잡히지 않을것이란 즐거움으로 가득차 밑창이 다 새어서 빗물이 늘 고여있는 낡은 단화도 아무렇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평소에도 듣고 본것은 많아서, 아기데리고 남의 집에 가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정말 반지하에서 치열하게 아이를 키우면서 살았어요. 그때에도 가계부를 쓰면서 작은 메모를 매일매일 남기곤했는데 가끔도 펼쳐보면 지나간 제 삶의 편린들이 지금도 가슴아프게 폐부를 찌르더라구요.
그런 제가 참 열심히 살은것 같은데, 돌아보면 늘 저는 혼자라는 사실이 더 울컥해서 오늘같이 옥상가득 무지갯빛으로 어롱대는 이 봄날 빨래들을 하얗게 널어놓고 눈물그렁한채 앉아있어요.
벚꽃이 분분하게 날려서 좋을 봄날,
저는 주택공사로 매각되어서 모두 이웃들이 다 이사나가고 텅빈 빌라에서 오직 우리만 남아 넓은 옥상한켠 낡은 평상한끝에 앉아 눈물만 그렁그렁..
혼자 이렇게 앉아있으면 그 밝은 봄볕에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애잔해지고 지나간 옛일들이 가슴저려와서 혼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