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칠순이 넘으신 시아버지는 성격이 보통이 아니십니다. 제 남편 말로는 대학생때까지 맞았다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한번 어리광을 피운적도 없고 대든적은 더더욱 없고.. 반면에 시어머니는 정반대이신 분이에요. 시아버지에게 절대 복종하고 사시는.. 사실 배우실만큼 배우신분이 왜저러고 사시는지 이해가 잘 안가는 면도 있어요.
이번에 결혼하고 처음맞는 제 생일이어서 시누이가 제 생일상을 차려줬어요. 시어머님이 손목이 안좋으시고 저도 부담주기 싫어서 그냥 밖에서 식사나 하자 했는데 시누이가 시집오고 처음맞는 생일이라며 아이 둘 데리고 생일상을 차려주는데 그건 정말 너무 감사했어요.
근데 늘 문제는 시아버지네요.
저는 임신 3개월입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임신이 잘 되지 않아서 저나 신랑이나 난임병원에서 온갖 검사받고 배란유도약 처방받고 몇달을 고생해서 아이를 가졌어요. 처음에는 의사가 자연임신은 힘들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운이 좋게 자연임신이 되었고 지금 입덧으로 엄청 고생중입니다.
이번에 식사를 하면서 아버님이 회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시누가 회를 떠왔어요. 아버님은 저보고 자꾸 회를 먹으라고 하시는데 전 회를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임신중이어서 회를 먹기에도 찜찜해서 그냥 네~이러고 안먹었습니다. 제가 직설적으로 회를 못먹는다고 말하지 않아서 일까요? 저보고 계속 먹으라고 술도 조금 주시면서 마시라고.ㅠㅠ
그러시면서 처음에는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해야한다.
그 다음에는 첫째는 딸이고 둘째는 아들이었음 좋겠다 - 이얘기는 수차례 저한테 하셨는데 저는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딸을 낳고 둘째랑 셋째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휴...
식구들 모두 아버님이 말씀하실때는 토를 달면 안되는 분위기 입니다. 그게 학습이 되어서인지 모두들 가만히 있더군요. 전 제 아빠가 며느리에게 그랬으면 한마디 했을 꺼에요.
저는 아무래도 한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 아버님 저는 하나만 낳을껀데요.
- 왜?
- 힘들어서 못키울것 같아요
- 안돼~ 첫째도 애가 없는데 너희들은 애를 많이 낳아야 한다고. (아주버님은 결혼 10년차인데 애가 없어요) 본인이 키워주시겠다는 둥. 나는 애를 딸이며 아들이며 계획적으로 낳았다는 둥.
더 얘기해봐야 아버님한테 대드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근데 왜이렇게 화가 날까요. 뱃속의 아이가 아직 안정기에 접어든것도 아니고 저도 입덧때문에 힘든데, 저희 나이도 많고 여유도 없는데 자꾸 애를 낳아서 어쩌라는 건지...
제 남편은 나중에 아버님에 저한테 그런말하지 말라했다가 욕 바가지로 드시고, 상놈이라느니 쪼다라느니 (화가나면 말을 막하십니다) 그런말 듣고 제 앞에서 한참을 열폭하네요.
아버님은 언제 어디서든 기분이 나쁘시면 표현을 하는 스타일이고 저는 몇번 지적질을 받아서 사실 아버님을 대하기가 많이 어렵습니다.
제가 결혼전에 인사드리러 갔을때 제 남편이 저를 데리고 오고 어머님 아버님은 직접 식당으로 오셨어요. 대중교통으로. 근데 위치가 애매해서 많이 헤맸고 오시면서 화가 많이 나셨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버님이 표정이 싸늘하시더군요.
아버님은 저를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00가 아가씨를 많이 좋아해서 기대를 하고 왔는데, 어른이 오는데 방에서 그러고 있냐, 나와서 인사를 해야하는거 아니냐. 그게 무슨 버릇이냐.
저는 아무리 기분이 상했다고 해도 보자마자 면전에 그런말을 하실줄 몰랐습니다.
두번째로 어머님은 아버님이 집에 계시면 외출을 마음대로 못하십니다. 어느날 아버님이 약속이 있으셔서 아버님빼고 저와 어머님과 시누와 점심을 드시고 싶으셔서 약속을 잡았는데 (사실 여자들끼리 편하게 모이고 싶어서 아버님 몰래 약속을 잡았습니다) 마침 아버님 약속이 취소가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약속을 한거니깐 아버님한테 사실을 얘기하고 다같이 만나기로 했습니다. 어느 식당에 갔는데 어머님 아버님은 5분 먼저와서 맥주를 드시고 계셨고 저와 시누는 약속시간 정각에 도착했습니다. 식당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아버님이 식당에서 나와서 저희쪽으로 오시더군요 저는 아무생각없이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갑자기 저희를 보시면서 화를 내시더군요. 손가락질을 하면서
- 어디 어른이랑 만나는데 미리와서 있어야지 제시간에 오냐고. 그러면서 이럴꺼면 너희들이랑 앞으로 밥 안먹는다고.
그러시면서 가버리셨습니다. 저와 시누는 어안이 벙벙. 어머님한테 아버님이 몇분 기다리셨냐고 물어보니깐 7분 기다리셨답니다.
어머님은 저희보고 식사하라고 자기는 따라 들어가겠다고. 거기서 밥이 넘어갑니까? 시어머니나 시누나 둘다 바싹 얼어 있더군요. 저는 그럼 집에 가셨으니 가서 사과를 드리자고 같이 모시고 집에 갔습니다.
현관문을 잠궈서 밖에서 못열게 해놨습니다. 몇번 열려고 하니깐 안에서 소리를 지르시면서 들어오지 말라 하십니다. 그러다가 제 분에 못이겨서 나오시더니 저희에게 또 손가락질을 하면서 어디 어른이랑 식사하는데 늦게 오냐고. 시누에게는 내가 약속시간 안지키는거 제일 싫어하는거 모르냐고. 그러면서 시어머니 어깨를 밀치시면서 나가라고 다들 꼴도보기 싫다고.
저같음 안들어갈텐데 시어머니는 굳이 그 소굴로 들어가시고 저희는 각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시모네 집이랑 시누네랑 저희랑 걸어서 5분 10분 거리입니다.) 같이 걸어가는데 시누는 눈물을 보이더군요.
세번째는 복날이었던것 같아요. 엄마가 저희 불러서 닭백숙을 해주셨어요. 저랑 남편은 너무 맛있게 먹었고 저는 시부모님께 삼계탕을 해드리고 싶어서 다음날 점심에 초대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친정에서 집에가는 길에 재료를 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할 그릇 다 꺼내놓고 밑반찬들 셋팅 다 해놨습니다. 근데 시어머님과 시누가 전날부터 하는 말씀이
- 아버님이 이를 다치셨는데 치과에 못가고 있다, 닭이 질길까봐 걱정이 된다. 괜히 네가 한소리 들을것 같다.
저는 삼계탕이 질겨야 얼마나 질기며, 며느리가 해준다는데 조심해서 드시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준비 다했는데 아침에 시어머니께서 캔슬을 놓으시네요. 아무래도 닭은 아닌것 같다고. 허탈하더군요. 그럼 미리말씀을 하시던가..(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타박할까바 노심초사하시는 분이라서 저를 위해서 그러셨다고...)
대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서 제 신랑이 아버님을 위해 삼계탕을 준비했는데 이렇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니 하시는 말씀이
-나는 삼계탕보다 닭볶음탕을 더 좋아한다.
네번째는 결혼하고 처음맞는 명절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댁에서는 제사도 안지내고 친척들도 없어서 특별히 음식을 하지도 않고 조용히 명절을 보냈습니다.
선물로 갈비셋트가 들어와서 시어머니는 저보고 음식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저희집에서 음식을 해서 명절에 시모와 시누네와 먹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맞는 명절인데 시어머님이 해주셔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저는 음식하는 걸 워낙에 좋아했고 이왕 하는거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해서 정말 정성을 들여서 음식을 했습니다
(저희 집은 엄마가 음식솜씨가 있으셔서 잔치도 많이하고 할때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편인데 반해, 신랑네 집은 먹는거에는 그닥 투자를 안하는 편입니다)
전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갈비찜부터해서 며칠전부터 메뉴짜고 장보고 음식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있길래 아이들 좋아하는 것도 메뉴에 넣고, 아버님이 생선을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생선찜도 놓고 나름 고기 야채 생선 구색을 맞췄습니다.
상은 작고 그릇들은 큰데 시누가 말도없이 생선회를 사왔더군요. 사실 그릇에 비해서 상이 작아서 불편하긴 했습니다. 전 며칠동안 음식냄새를 맡았더니 밥맛도 없고 시아버지 좋아하실지 눈치만 보는데 다른건 일절 안드시고 생선회만 드십니다. 사실 며느리가 음식했으면 한젓가락이라도 맛봐야 하는게 예의 아닌가요?
다 먹고나서 갑자기 저를 부르십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앞으로 음식 두어가지 줄여라. 메추리알 장조림을 가르키면서 이런건 왜 했냐 앞으로 하지말아라.(전 애들 반찬이 없을까봐 했습니다)
- 순두부찌개를 가르키면서 어떤 음식은 따뜻해야 맛있는거다. 그거 있지않느냐 부르스타. 앞으로 찌개나 국은 부르스타위에 올려라. 왜 식당에서는 따뜻한거는 따뜻하게 차가운거는 차갑게 나오는데 가정집은 그게 안되는지 모르겠다.
저 표정 썩었습니다. 더 서운한거는 시누나 시어머니나 아버님이 그리 말씀하시는데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더군요.
살림 이제 시작한 며느리가 그정도 차렸으면 잘했다고 칭찬해주는게 우선 아닌가요? 저는 식사 끝나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나 시댁식구들 모일때 음식안하겠다고. 식당에서 사먹자고.
이게 모두 결혼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아버님에게 오만정 다 떨어져서 같이 한공간에 있는것도 불편할 지경이고 무슨일이 있거나 하면 어머님에게 연락을 합니다. 뭐 사실 어머님이 자주 전화를 하시니깐 저는 전화를 거의 안한다고 봐도 무방하네요. 제 남편도 아버님을 어려워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무조건 어머님에게 콜입니다. 문자든 전화든.
아버님은 그게 서운하신가봐요. 딸 아들 며느리가 다 어머님하고 소통을 하니깐.
언젠가 시부모님과 저의 친정부모님이 만나는 자리에서 사위가 제일 이쁘다고 - 본인한테 연락 자주 하니.
첫째며느리나 둘째며느리나 자기한테 전화한통 안한다고.
저희 엄마아빠는 요즘 아이들이 그런다. 저희 며느리도 아들과 꽤 오래 사귀고 결혼했는데도 우리한테 연락하는걸 어려워한다. 우리는 그냥 그려러니 한다.
그러자 아버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내가 다 고쳐놓겠다고. 하시면서 벼르고 계시답니다.
쓰다보니 참 긴 글이 되었네요. 문득 잠도 안오고 태교는 해야하는데 좋은 생각만 해야하는데 저런 것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글을 써보면 좀 잊혀질까 싶어서 써봤어요.
저도 참 성격이 못되먹어서 적당히 살살거리면서 살아야 하는데 저렇게 상처를 받고나니 마음의 문이 닫히네요 벌써..
아..앞으로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맞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