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때문에 이번 명절에 안 가신다는 글을 읽고..
저 같은 대응법도 있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어서 글을 써봅니다.
저도 아랫동서 한 명 있습니다.
저보다 5살 어리고.. 어린 만큼.. 철 없는 구석도 많죠.
그런데 굉장히 사이는 좋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께서 엄청 약올라 하십니다.
네, 제 대응방식은 '약올리기'예요.
시어머니께서.. 착한 척 하시기를 좋아합니다.
착하고 좋은 시어머니 소리.. 굉장히 듣고 싶어하시죠.
이런 시어머니 없다, 뭐 그런 소리를요.
하지만.. 저 첫째 출산 후 2주만에 시댁 가서 밥 하고 설거지 했고,
주말마다 저희 아이 보여주는 시댁모임 때문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둘째 출산 4주만에 김장도 했고요.
그럼에도 본인은 굉장히, 굉장히 좋은 시어머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른께 대들지 못하는, 그렇게 교육 받은 저는..
한참을 그렇게 끌려다녔나봐요.
문제는.. 항상 그렇듯, 새 사람이 들어오니 확연히 드러나더군요.
제 앞에서는 그리도 동서 험담을 하시던 시어머니(결혼 전부터요)
동서 앞에서는 그리도 제 험담을 많이 하셨더군요.(동서가 다 불어요^ ^;)
그리고 제게.. 형님 노릇 하라며, 엄청 갈구셨습니다.
본인은 착한 척을 해야 하니, 제가 나쁜 역할을 맡기를 바라셨던 거죠.
저는 원래, 누구 위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동서에게 지금까지 존댓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냥.. 전 그게 편해요.
그리고, 크게 제게 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뭐라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동서가 제게 해를 입힐 것이 뭐가 있겠어요?
같이 억울한 시집살이 하는 입장인데, 내가 1시간 더 많이 일했네, 내가 하루 더 많이 일했네..
따져봐야 속상하고 둘 다 억울하죠.
그래서 절대 형님 노릇 안 합니다.
그런데.. 저보다 남편이 먼저 터지더군요.
동서의 뺀질거림에.
한 번 뭐라고 하려고 벼른다기에,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착한 척이 아니라, 시아주버니가 동서에게 뭐라고 하면.. 그 집안 뭐가 되겠습니까.
더 보기 싫고 안 좋아지죠.
남편이.. 뭔가 느낀 게 많았는지
(그 사이 제 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본인도 동서가 생겼거든요. 그것도 엄청 뺀질거리는 ;;)
남편이 팔 걷어부치고 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을 봐도 같이 가서 짐 들어주고, 전을 부쳐도 제 옆에 딱 달라붙어서 전을 부쳐요.
제가 설거지 하면, 제 옆에서 어깨 주무르며 얘기합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정말.. 정말 약올라하시더군요.
그리고 동서 또한 부러웠는지, 시동생을 잡기 시작해서..
전 부칠 때는 두 내외가 같이, 넷이 사이좋게 부치게 되었습니다.
참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속으로 천불이 끓을 시어머니는 제외.
아들.. 끔찍하게 생각하는 분이시거든요.)
..남편이 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냥 이런 방법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장 큰 복수랄까요.
제 입 안 더럽게 하고, 제 손 안 더럽게 하고..
상대방은 약올리는 ;;;
정말 성질 더럽죠? 재수 없죠?
그래도 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시어머니와도 겉으로는 매우 잘 지내고
동서와도 매우 잘 지내고.
명절 때면 두 내외 사이좋게 전 부치고 요리하고 치우고.
..시어머니는 끙끙 앓으시지만요 ;;
당한 게 워낙 많아서, 시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아직 생기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제가 그렇게 사람을 미워할 수 있었나..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었나.. 괴로웠지만,
지금은 괴롭지 않습니다.
제 그릇이 그 정도려니.. 생각하거든요.
제 그릇으로는 이게 최선이다.. 하고요.
겉으로 잘 지내는 정도.
겉으로 형님 노릇 안 하는 정도.
겉으로 중간은 가는 며느리인 정도요.
하지만.. 꿈은 하나 있습니다.
남의 집 귀한 딸은 절대.. 이런 전철을 밟게 하지 않겠다는 꿈이요.
네, 아들만 둘 뒀습니다 ㅜ ㅜ
장남인 남편, 처음에는 저희 첫째 보고 시부모님께 "제사 지내줄 장손"이라고 큰소리 땅땅 치더군요.
지금은.. "제사는 우리 대까지만 치를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라고 말합니다.
(차례, 제사 준비를 다 같이 하다보니.. 그 고생을 자식한테 하게 하고 싶지 않게 됐다고 하더군요.)
글을 적다 보니.. 고도의 자기 자랑처럼 느껴져서.. 뻘쭘해지네요.
하지만.. 아직 착한 척이 남아있어서, 명절 전날 새벽 같이 시댁 가서 일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맏며느리랍니다 ;;
(결혼 초에는 명절 전전날, 전전전날 갔었죠.)
그냥 '약올리기'와 '재수없기'로 대응하고 있는 맏며느리가 있다는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적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