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주말까지 휴가입니다.
그간 미루어두었던 모종의 사적인 일을 오늘 오전 처리하고,
남들 다 일하는 평일 오후의 상대적 한가로움을 즐겨보려고 던킨도넛에 앉아있었지요.
도서관 로그인이 아이패드에서 안 되던 문제가 있었는데
전화를 걸어 문의하자 친절한 담당직원이 해결해주었어요.
이건 다른 얘기지만, 저희 도서관은 e-book읽기가 너무 복잡해요.
책을 제공하는 주체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시스템을 각각 사용해야 하는군요.
하여튼, 문제가 해결되어 기쁜 마음으로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받아서 열심히 읽고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오네요. 모르는 핸드폰 번호였지만 저는 일단 온콜이므로 받았지요.
젊은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서울지방경찰청이라면서 제 명의의 대포통장이 발견되었다는 거에요.
제 이름, 생년월일을 정확히 말하면서
어느어느 은행에 작년 8월2일자로 개설된 통장이 있는데 본인이 개설하신건가요?
하는겁니다.
흠...저는 그런 적이없는데. 전혀 아닌 일이라, 당황도 안 되거니와,
남자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억양과 또 다른 뭔가가, 이 사람이 경찰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어요.
남자는 재차, 본인이 개설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한다, 원래 개설에 신분증 사본이 있어야 하는데
본인이 직접 사본이나 신분증 준 거 아니냐며 저에게 따지듯이 확인해서 제가 당황하기를 바라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 때 개설한 적 없다는데 왜 전화로 이러느냐,
그 은행에서 정확히 신분증 사본 확인하고 통장개설 한 것 먼저 확인하고 전화한거냐,
웃으면서 따지니까 그걸로도 시비를 걸려고 해요.
왜 웃냐고요. (웃겨서 웃었는데...)
저를 너무 몰아붙이니 아하, 이 사람 경찰 아니구나, 싶어서
이름과 소속을 물어보았어요. 확인해보라며 당당하게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알았다, 일단 끊고 확인했지요.
당연히 경찰에는 그런 사람 없구요.
제 생년월일과 번호가 아마 해킹당한 사이트 어디에서 팔려나갔나봐요.
이런 전화 받으면 참 당황스럽고 어이없고 그렇군요.
며칠 전, 우리 깡패는 부엌에서 뭔가를 자랑스레 입에 물고 제 침대로 왔어요.
신기하거나 맛있어 보이는 걸 발견하면 제 예전 고양이-지금은 부모님이랑 사는-도
침대로 가져오곤 했는데, 편한데서 몰래 보거나 먹으려고 그러는 걸까요?
하여튼, 깡패가 입에 물고 온 건 제 양초 원료인 가루 왁스 봉지였고
구멍 뚫린 봉지에서 흘러나온 가루 왁스가 제 좁은 집 부엌에서 침대까지 은하수를 그리고 있었어요.
저는 밤 10시에 때아닌 마루청소를 하였지요.
바닥에 달라붙은 가루들이 아직도 간간히 발견되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