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언론의 자유를 잃어가는 사회
자신의 삶에 어떤 떳떳하지 못한 발자취가 많을수록 비밀이 많아지는 법 아닐까요? 그렇기에 비밀이 많은 사람은 대체로 부도덕한 경우가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지도부의 비밀을 은폐하기 위해 참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그 은폐하려는 비밀은 바로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만연한 부패와 비리입니다. 언론은 그 동안 사회 지도층의 부패나 비리를 견제하려 힘써왔습니다.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독재정권 하에서는 많은 탄압을 받기도 했지요.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대체로 잘 보장되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이래 언론탄압이 다시 시작되었고 그것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종면 YTN 전 노조위원장을 시작으로 오늘 MBC의 이상호 기자까지 그 동안 훌륭한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분들에 대한 해고조치가 정권시작부터 말까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언론을 이렇게 탄압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 기능을 할 수 있을 지 염려스럽습니다.
ㅣ이상호 기자, 국민의 기자가 되기로 약속하다.
MBC 이상호 기자가 결국 해고되었습니다. 이미 지난 12월 MBC가 이상호 기자를 해고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말들이 나왔었는데, 그 말들이 그대로 적중됐습니다. MBC는 이상호 기자를 해고한 이유가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상호 기자가 '회사의 명예를 실추' 시킨 것은, 지난 대선 전날 그가 트위터에 'MBC가 북한의 김정남을 인터뷰하려고 한다' 라는 허위사실을 올린 일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한 일'은 팟캐스트를 통해 '고발 뉴스'를 진행했다는 점이라고 하니, 참 우스울 뿐입니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MBC 김정남 접촉 의혹'은 이미 지난 1월 4일 허무호 기자의 증언을 통해 사실임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허무호 기자는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을 만나, 5분간의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는데요, 이 사실을 대선 하루 전날 이상호 기자가 밝혔다는 것이 어떻게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일이 될 수 있는 지 의문스럽습니다.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인데, 그 역할을 다한 이상호 기자가 MBC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니 이 무슨 망발입니까! 또한 고발 뉴스의 제작과 진행 역시 품위유지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기보다는 기자로서 팩트를 국민에게 전달하려고 한 공익적 행위라고 높게 평가받는 것이 합당한 일 아니겠습니까!
김재철 사장이 부임한 이후 이미 이상호 기자는 MBC의 자회사인 MBC C&I로 파견되어 좌천된 상태였습니다. 그곳에서 진행한 '손바닥 TV'는 BBK 관련 속보와 파이시티 현장 르포를 다루려다 폐지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좌천과 '손 TV'의 폐지는 입바른 소리만을 하려는 이상호 기자가 '정권의 나팔수'가 되려는 김재철 사장에게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오늘 해고 통보가 내려왔음은 이제까지의 일들을 볼 때 너무나 순차적이고 당연한 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상호 기자는 그동안 MBC에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1995년 MBC에 입사한 이래로 '시사매거진2580', '신강균의 뉴스 서비스 사실은' 등의 시사프로그램에서 탐사보도기자를 했고, 2005년에는 최초로 '삼성 X 파일' 사건을 보도하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발로 뛰는 기자, 탐사보도기자였던 그는 이제 MBC의 기자가 아닌 국민의 기자가 될 것임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ㅣ참된 기자를 위한 대안 언론이 필요하다.
진보언론이라는 한겨레, 경향신문의 1일 발행 부수는 50만부도 되지 않지만, 보수언론이라는 조중동의 1일 발행 부수는 300만부가 넘습니다. 또한 이번 정부 들어 MBC, KBS, SBS는 사실상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2012년부터 시작된 종합편성채널들은 보수 위주의 언론 지형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 쪽으로 너무나 치우친 언론 지형, 그리고 권위에 도전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다하던 기자들이 연이어 해고당하고 있는 현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사회의 다원성은 쉽게 보장될 수 없습니다. 언론이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지난 대선이후, 국민들은 이러한 문제를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대안 언론을 설립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서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현재까지도 활발한 논의와 참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이상호 기자의 해직을 지켜보며, 또 그 동안 해직된 기자들을 생각해보면서 저는 이러한 사태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온다.'고 했던가요? 연이은 기자들의 해직은 어쩌면 우리에게 또 다른 한겨레 신문의 탄생을 가져다 줄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한겨례 신문이 전두환 정권 하에서 해직된 기자들을 모아 국민주로 발족한 신문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우리 역시 해직된 기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국민주로 '국민TV'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국민TV'가 이제까지 한겨레가 보여준 신뢰성 있는 언론의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오늘, 또 한 명의 좋은 기자가 해직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을 또 다시 공익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정권이나 권력자가 아닌 우리 국민들에게 있습니다. 저는 그 힘이 바로 대안 언론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안 언론을 통해 그들에게 공익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그들에게 마음 껏 사회의 비리를 고발하고,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보폭을 보장해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호 기자의 해직이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대안 언론의 설립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