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에 걸린 오징어 이야기를 보다 보니
댓글에 호박 얘기도 여럿 나와서
한 십년전에 저장해둔 글이 생각나 퍼왔습니다
이글 쓰신분은 소설가로 데뷔하셨던 걸로 기억되는데
확실하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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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결혼한지 갓 1년을 넘긴 새댁이었던 나는, 남편이 석달이나 누워있어야 하는
대 수술을 받게 되자 마음이 참 아펐다. 맨날 누워만 있으니 입맛도 없을 것이고...
수술한 두 다리는 퉁퉁 부어서 괴로워하고... 어뜨케 저사람을 위로해줄까... 고민하
다가 단호박! 생각이 났다.
단호박... 얼마나 부드럽고 달고 맛나던가... 게다가 것도 호박의 일종이니까 아마 부
기가 빠지는 효과도 있을 거시다... 라고 생각을 하고 쌩- 하니 동네 마트로 달려갔
다. 제일 통통하고 예쁘게 생긴 단호박을 득달같이 사들고 와서 찜솥에 불 올리고
단호박 찔 준비를 시작했는데...
식칼로 단호박을 짝- 반쪽으로 쪼개는 순간... 오메... 떠올리기조차 싫지만... 거짓
말 안 보태고 수천마리 벌레가 우글거리고 있었던 거시였다. 벌레들의 용모를 설명하
자면, 구데기 같기도 하고 살찐 밤벌레 같기도 하고 불어터진 라면가닥 같기도 한...
그런 뿌연 넘들이었다...
벌레를 보는 순간 기냥 탁 덮어버리고 쓰레기통에 팍- 처넣었으면 이 단호박 괴담
도 없었을 거인데... 가만 보아하니 이 벌레부대가 씨 부분에만 와글와글 모여 있고
정작 우리가 먹어야 할 살 부분은 완전히 아무 이상 없는 것이 문제였다. 말하자면
벌레와 나는 밥상이 달랐던 거이다.
나는 음식 버리면 큰일나는 줄 아는 사람... 이 단호박을 버려야 하나? 살려야 하
나? 고민하다가... 사실 뻔한 결론이었지만 살리자! 라고 마음먹고 단호박에서 벌레
들을 추방하기로 했다. 사실 어려워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참외 속 걷어내듯이 식칼
로 호박 속만 싹 걷어내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글대고 있는 벌레들을 향해 식칼을 대는 순간... 나의 진정한 단호박 괴
담은 시작되었으니... 이 벌레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순진한 밤벌레나 구데기와는 차
원이 다른 넘들이었던 거시였다... 넘들은 앗! 위기다! 라고 느끼자마자, 몸을 동그
랗게 말더니 반동력을 이용해 푱! 하고 튕겨나왔다. 내가 벌레부대를 쑤시자마자
단호박속의 벌레들이 추석날 불꽃놀이처럼 푱! 표옹~ 다다다다- 하고 일제히 튕겨
져 나오기 시작한 거시였다.
이넘들의 튀는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높이로는 30~40센티는 족히 올라갔고, 사방 1
미터 반경으로 사정없이 튕겨져 나가 온 바닥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 머리
위로도 대여섯 마리가 투둑 투둑 떨어졌다.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안방에는
병드신 서방님이 누워 계시니, 내가 비명을 질렀다간 운신도 못하시는 서방님이 얼
마나 놀라고 걱정을 하시겠는가... 나는 정말 이를 악물고 끙끙거리며 펄떡펄떡 뛰
었다.
약 10초쯤 후, 단호박 속에서는 벌레들이 아직도 튕겨져 나오고 바닥에 떨어진 넘
들은 다시 팔딱거리며 더 멀리로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서 좀 정신을 수습한 나, 내
가 이래뵈도 생물학과 출신인데... 경추이탈로 처치한 쥐가 수천마리, 무식한 프레스
로 박살내버린 대장균은 수십억마리일텐데... 이까짓 호박벌레들한테 기죽을게 뭐
냐... 하는 깡다구를 쥐어짜내서 넘들을 소탕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때 내가 바퀴벌레 죽이는 약이라도 뿌려볼 생각을 못하고 기냥 무식하게
힘으로 눌러 터뜨려 죽여야겠다는 생각만 했던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얼이 빠져 있
었던 모양이다.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서 한넘을 꾹 눌렀다. 죽었겠지... 생각하
면서 휴지를 떼는 순간, 휴지 밑에 깔려있던 넘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내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튀어올랐다. 하마터면 먹을 뻔 했다. 이넘들, 생긴건 밤벌레 같지만,
껍데기는 정말 코뿔소 껍데기처럼 단단한 넘들이었던 거시였다... -.-;;
기겁을 하고 이넘을 다시 휴지로 붙잡아서 팔이 부들부들 떨리도록 힘주어 눌렀다.
한참 후에야 딱- 하고 터지는 소리... 아... 세상에 뭐 이런 넘들이 다 있어... 나는
정말 속으로만 잉잉 울면서 일단 빗자루로 가까운데 있는 놈들을 한 삽 쓸어담아서
뚜껑있는 쓰레기통에 쳐넣고, 이미 멀리 도망가 사방에서 튀고 있는 벌거지 놈들을
추적해 한놈한놈 터뜨리기 시작했다. 쓰레기통 속에 갇힌 놈들은 어찌나 극성스럽
게 튀어오르는지 쓰레기통 뚜껑에서 계속 두다다다 소리가 났다.
이넘들을 쫓아댕기는데 거진 한시간은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야차같이 눈을 까뒤집
고 니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하는 각오로 이 세상에서 제일 징한 벌거지들을 처
단했다. 휴지로 싸서 이이이잉- 하고 힘주어 누르면 한참 후에야 툭 터지기를 수백
번...
아무튼 사방팔방 뛰어댕기던 벌거지들이 한무더기 휴지더미와 함께 이승을 하직하
고, 쓰레기통 뚜껑을 두들기던 넘들에게는 그제서야 생각난 에프킬라를 한사발 안
기고, 그렇게 모든 벌레들을 처단한 다음에 나는 무엇을 했겠는가? 그렇다, 나는 단
호박을 삶았다!
지난 두시간동안 마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통 모르고 있는 서방님에게 나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단호박 접시를 대령했다. 두 다리에 깁스를 하고 깜짝 요리
가 무얼까 궁금해하며 기다리던 서방님이 쟁반을 보고 말했다.
"... 색시야, 나 단호박 싫어해... 난 고구마도 물고구마는 안 먹자너... 난 저러케
물컹한건 시러... 미안한데 그냥 너 먹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겠는가?
음식 버리면 죽는 줄 아는 나도, 차마 그건 못 먹겠더라...
그래서 그 눈물의 단호박은 기냥 쓰레기통 속으로 고요히 들어갔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로 단호박을 사지 않는다. 반쪽으로 쪼개 놓은 것도 있지만, 것
도 안 산다. 악몽은 한번으로 족하니까.
일산에서 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