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거창합니다.
거창한 마음을 먹고 시작했습니다.
허리를 치료해야지.
안나 파블로바의 무수한 후예 중 하나라고 뻥치고 다녀야지.
(은하계에서 그녀가 태양이라면 전 지나가다 지구에 내리꽂히는 운석 쯤?)
82에서 사람 더 안 들어오면 폐지된다, 선생님 진짜 좋은데 딴 데 가버리신다,
구구절절한 발레 광고글에 낚여서, 평촌까지 갔어요.
아직 의상이 없어서, 치마 레깅스 입구요, 위에는 진회색 7부 달라붙는 티 입고
추워 디질라 겨울철 저의 갑옷 전신 패딩으로 무장하고 갔어요.
코감기에 목감기라, 레슨하는데 코 풀러 뛰쳐나오지 않나 걱정하면서.
서툰 초행길, 늦은 줄 알고 문을 급히 열었더니,
청소년 아해들과 둘러 앉아 과자 파티 벌이시고 있는 분이 웃으며 조금만 기다리래요.
아, 소탈하신 선생님, 첫눈에 반했어요.
상냥하실 거야...틀려도 안 혼내실 거야...
제가 십대 때부터 수영을 한다든가 하며 거쳤던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들은 제일 싫어하는 말이, 가르쳐준 대로 하세요, 예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다구요!!!! 방금 가르쳐놓고 고대로 카피하라고 하지 마요!!! 인간 복사기가 아녜요!!!
사람이지 기계가 아녀요!!!!
하고 항상 말하고 싶었더랬죠ㅠㅠ
그래도 요가는 좀 했었지만, 그만둔지 십년은 돼서, 지금은 디스크나 걸리고ㅠㅠ
매트를 갖다놓고 스트레칭 시작합니다.
스트레칭까진 힘들어도 할 만했어요. 최근 허리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기에.
그러나 본격적으로 바 운동에 들어가자, 지금까진 장난이었단 걸 알게 됐습니다.
허리를 펴고 배에 힘준다, 그건 알겠어요. 그렇게 못해도 이해하겠어요.
그런데 뒷목을 펴라, 갈비뼈를 닫아라, 배꼽을 올려라.
마치, 한국어로 번역된 외계어를 듣는 기분입니다.
목은 목이지 앞목 뒷목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갈비뼈가 뭔지, 배꼽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는
외계인들 소리 같아요.
선생님, 상냥해 보이셨잖아요, 지금도 상냥하신데, 내용이 무서워요ㅠㅠ
붙잡고 따지고 싶을 정도인데, 취하고 있는 자세에서 쫌만 움직이면 쓰러질 거 같아서 따지러 못 갔어요.
서 있기도 힘든데, 그 자리에서 포즈를 취합니다.
5번 포즈, 한쪽 발의 뒤꿈치와 다른 발의 앞꿈치를 붙여놓고
팔은 아래로 내립니다. 더더, 내려요, 팔을 잡아 내리랍니다. 제 팔은 두 개 뿐인데
내리고 있는 두 팔을 잡아 내려 줄 팔은 어디 있나효ㅠㅠ
손가락도 엄지와 중지를 평행하게 펴면서, 새끼가 보이고, 그러나 너무 확 펴지 말고 우아하게~~
절대 한 동작도 하나의 지시만 나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아 까먹을 거 가타ㅜㅜㅜㅜ
양팔을 벌리는데, 윗팔부터 들어올려야 합니다. 누가 윗팔과 아랫팔 좀 분리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절로 분리가 안 되네요.
그렇게 벌리면서 손목의 동그란 뼈가 제일 위로 와야 합니다. 이때 손목을 돌리면 안 됩니다.
어차피 그 뼈가 위로 와도 눈이 안 좋아서 안 보였을 거야, 자신을 위로합니다.
하나를 기억하면 앞에 꺼 까먹습니다.
하나를 실시하면, 앞에 꺼 중단됩니다.
내 몸에 이렇게 여러 가지 부분이 있다거나, 그 부분들이 하나 같이 말을 안 들어쳐먹는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기억도 못하지만 멀티태스킹이 안 됩니다.
손을 처리하면, 발이 문제, 그런 정도가 아니에요,
새끼 손가락 처리하면, 엄지가 문제, 발바닥을 붙이면, 발목이 문제,
그리고 그 발과 손, 팔, 머리, 목, 어깨, 이딴 것들을 모두 총괄해야 합니다.
두뇌와 몸이 따로 노는 가운데 진도는 나갑니다.
동작이 빨라도 따라가기 어렵고, 동작이 느려도 자세 유지하기 힘듭니다.
겨우 바를 치우고 한숨 돌렸나 했더니,
연습장을 가로지르며 그랑 주떼를 합니다. 저도 아는 용어, 아름다운 도약이죠.
발레리나들이 하면 눈물납니다.
제가 해도 눈물나는 줄 첨 알았어요.
같이 옆에 짝을 이루며 가는데, 절 버리고 훨훨 가버리는 선배 언니를 따라
병아리처럼 종종종 따라가다, 마침내 도약을 하는데
그전에 도약 준비 운동 정도 하던 발이 결정적 순간 꼬입니다.
병아리와 비슷한 정도로 뛰긴 했어요. 닭 말고 병아리도 뛸 수 있는진, 모르겠네요.
벽에 머리 박을 뻔했습니다.
그렇게 쪼끔 뛰었는데, 왜 그랬을까요. 텔레포트라도 한 걸까요.
발을 교차하며 가로지릅니다. 깨끼발로 교차하다 중간에 쓰러질 뻔했습니다.
다들 나한테 걸려 넘어지는 대 참사가 벌어질까봐 버티고 버텼습니다.
모두 오늘 내게 목숨을 빚졌다는 걸 모르겠죠. (쓸쓸)
그래도 살아남았습니다.
선생님이 여전히 웃으시며 모두 잘했다, 내일은 더 빨리 나갈게요, 하십니다.
머리가 몽롱해진 상태라 웃습니다.
다리가 꼬이고 무릎이 풀립니다.
그러나 허리는 오히려 가뿐하면서, 제대로 운동한 느낌이 팍 납니다.
대박 못했는데, 떡을 치건 죽을 쑤건 반드시 해야 겠다는 생각이 이렇게 드는 운동 처음입니다.
무언가 굉장히 끝내주게 정교합니다.
내 몸도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디스크 이후 암울했던 허리 건강의 나날에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바도 못 운반할 체력이었는데, 힘 세졌다, 다리가 짝 붙으면서 곧아진다, 선배 언니들의
간증을 들으며, 결심했어요.
남자가 나타나는 날까지, 발레를 하리라고.
*지금도 수강할 수 있고, 선생님은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스승입니다. 몸 안 좋으신 분들은 정말 추천합니다.
문화 센터에 아기 맡길 데는 없지만ㅠㅠㅠ 일주일에 한 두 시간 정도 내보셨으면 좋겠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