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부인 새해 첫 편지
이제 고작 6개월 남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드는 생각,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인영의원님께서 면회 오셔서 “법무부시계가 국방부시계처럼 느리게 갔다.”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젊은 청춘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사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시청자여러분과 가족들에게 조금 많이 미안하지만 저는 이곳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240cm * 200cm 공간에 세 사람이 기거하다보니 그것도 24시간 동안... 사실 처음에는 너무 좁아서 숨이 막히고 위풍이 너무 세서 낮 시간동안 발이 시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좁은 공간에 세 사람이 북적대다보니 예민해지기도 하고 다리를 한번 펼 때도 눈치가 보이기도 했답니다. 여기서 어떻게 지내나 싶어서 잠시 괴로웠으나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저는 평소 언제나 사찰체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찰 선방에서 세상만사 다 잊고 3박4일 잠시 머물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지만 사찰체험을 하려면 새벽3시에 예불을 드려야 한다는 말에 꿈을 접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 방 크기가 그런 사찰 선방 크기랑 비슷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바로 직전까지는 숨 막히는 구치소였는데 바로 고요한 나만의 피난처가 되어 버렸답니다. 기도원이다 선방이다 생각하니 이 방은 너무 맘에 드는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동안 늘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고민하며 쫒기 듯 살아온 시간들로부터 폴짝 뛰어올라 나를 돌아보는 일에 집중할 공간에 들어오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 혼자 이런 호강을 누려서...
작은 문제가 있다면 함께 생활하는 언니들과 문제였습니다. 제가 있는 방은 3인실인데 천만다행히 두 언니는 저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해 주셔서 한 분은 제 빨래를 다 해 주시고, 또 한 분은 저의 나머지 정리정돈을 다 해 주시고, 식사 때도 주 분이 서로 저를 챙겨주고 계신데 두 분 사이가 별로 좋지가 않아서 자꾸 티격태격 하시면서 저의 명상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제일 어린 것이 뭐라고 하기도 좀 그래서 속으로 왕 짜증을 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뜩 ‘여기가 연극무대이고 두 사람은 나를 위해서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다.’라고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ㅎㅎㅎ
그 순간부터 두 언니들의 투닥거림은 최고의 시트콤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혼자 보기 아까운 환상의 코믹연극을 하루 종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ㅎㅎㅎ 제가 보는 눈과 마음이 달라지자 답답한 공간, 짜증나는 상황은 최고의 공간, 최고의 기쁨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의 작은 어려움은 추위였습니다.
지금은 방에 전기판넬이 깔려있어 바닥이 따뜻하지만 20여년 전 저의 선배님들이 기거할 때는 나무바닥에, 푸세식 화장실, 방 안에 고드름이 매달렸었답니다. 이런 선배님들에 비하면 감히 제가 춥다는 말을 하기 부끄러워 졌고, 방이 춥다고 문풍지를 국가에서 친절하게 공급해 주어서 창문 틈을 빈틈없이 막아버렸더니 낮 시간동안에도 방이 더 이상 춥지 않게 되었습니다. 방 언니 한 분이 인테리어 사업하시던 분이라 완전 전문가 ㅋㅋㅋ
방이 따뜻해졌다고 며칠을 신나게 지냈는데 ‘노숙자 공중화장실에서 자다가 동사’라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너무 먹먹해지고, 내가 너무 호강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 없이 마음이 불편해졌답니다. 저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여러분은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사시는 듯합니다. 대선 결과 때문에 말입니다. 뭐라고 위로해 드려야 할지 딱히 적당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요. ㅠㅠ
애청자 여러분, 너무 깊은 패배의식에 빠져서 모든 희망을 버리진 마시기 바랍니다.
한편으론 ‘너무 다행이다.’라고 저처럼 애써 생각을 바꿔 보시기 바랍니다. MB가 저지른 일들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 일들 뒷감당하려면 문님이 얼마나 개고생을 했겠습니까? 개고생해서 뒷감당 해놔도 김대중대통령처럼, 노무현대통령처럼 무능한 진보라고 욕먹고, 무시당하고, 억울한 소리를 듣고 진보세력과 문님 가족들까지 모욕당했을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럼, 박당선자는요?
저는 그것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벌써 인수위 수석대변인부터 인물을 고르는 것 보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습... 혹시 잘 할까봐 내신 걱정했는데 ㅋㅋㅋ 기우였던 것 같고, 저렇게 저하고 싶은 대로 하다보면 반드시 벽에 부딪힐 테니 ‘온 국민의 눈에서 환상이 깨질 날이 올 거다.’라는 생각에 저는 ‘고소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당선자에게 MB가 싸 놓은 똥 열심히 치우라고 응원할 겁니다. 다 못 치우면 저는 할 말이 많아져서 좋고, 혹시 다 치우면 온 국민이 행복해서 좋고, 이래저래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2007년을 기억하십니까?
분배를 이야기하면 ‘빨갱이다’라고 말하고, 복지를 이야기하면 ‘무능한 좌파’라고 말했던 시절 말입니다. 2010년 무상급식 때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던 한나라당과 보수 꼴통들을... 그런데 5년 만에 박후보 공약에 경제민주화와 무상보육, 복지예산 100조원 공약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혹시 기억하십니까? 저는 ‘민주당을 이용하기 위해서 강화시키려고 했던 것’ 말입니다. 양당구조가 되면 국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박후보가 정권을 잡기 위해 분배와 복지를 인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자는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작은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저들이 이런 약속들을 지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적어도 분배와 복지를 ‘빨갱이’로 몰던 짓은 못할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당선자에게 약속을 반드시 지키라고 매일매일 요구할 겁니다. 5년 내내 ㅎㅎㅎ
원효대사의 해골물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망에 심장을 물어 뜯겨 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이외수
혜민스님 책에 보니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이외수작가에게 여쭈었더니 “존버정신을 잊지 마라.” 존버정신? “존나게 버티는 정신!”이랍니다.
저는 2012년 봄에 제가 한 말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야권후보가 당선 가능해 질 때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2월 쯤 국민 위로방송을 하게 될 것이다. 장작부인이 되어 온 세계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기억 안 나셔도 어쩔 수 없지만, 저는 제 역할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저를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잊어버린다 해도 저는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첫 방송은 “두부먹방”으로...
몸이 자유롭지 않게 되니 생각의 자유에 집중하게 됩니다.
돌아가신 김근태의장님은 언제나 내공이 깊으셨습니다. 그 내공은 십 수 년 수배생활과 6년 가까운 수감생활을 하면서 신체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정신세계에 집중을 많이 하셨기 때문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ㅋㅋㅋ 내 육신을 작은 공간에 잡아 두고, 짜여 진 일정으로 내 시간을 지배하려 하더라도 내 머릿속은 나만의 것이고, 내 생각은 누구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아무리 화나게 하려 해도 내가 화를 내지 않으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누군가 간절히 내가 절망하고, 슬퍼하길 소망하고 있다면... 내가 질 수 없지!”라는 생각을 하면 하루하루가 기쁜 투쟁의 시간이 된답니다.
“투쟁은 즐겁게...”
“마지막에 웃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날마다 말마다 더 강해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이 보신 망치부인은 ‘레벨1’ 이었다면 훨씬 더 강하게 업그레이드 돼서 돌아가겠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갇혀 있는 시간만큼 더 더 강해져서 돌아갈 테니까요. ㅋㅋㅋ
저는 요즘 최고의 마음공부 중입니다.
2013년 1월 6일 서울구치소 241번 망치부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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