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수능을 두 번 봤어요. 그리고 전문대학원 입시도 한 번.
고등학교 입시까지 더하면 총 네 번의 시험에서 언어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다른 과목이 기대만큼 나올 때 언어가 언제나 한 방 터뜨려 줘서.
예전에 같이 공부하던 친구와 학원 선생님이 언어의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어서
그 때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나는 왜 언어 점수가 잘나올까?
중고등학교 때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거나 논리를 찾아볼 틈이 없이
그냥 닥치는대로 푸는 데 급급했었어요.
나중에 수능을 다시 보면서 살펴보니, 언어영역의 틀이 보여요.
일단 정해진 출제 영역이 있어요.
문학, 비문학, 어법 등.
그 안에서 또 문학은 고전이냐 현대문학이냐, 산문이냐 운문이냐,
비문학은 또 예술, 사회, 경제, 철학, 어학, 과학...
이러한 영역 내에서 질문이 주어지는 데, 이 때 답은 옳은 것만 나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문에서 고양이를 설명하고 옳은 것을 고르라면
"일반적인 고양이는 다리가 세 개이다." 라는 문장이 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출제 영역에 대한 지식이 아주 많으면 지문을 안 봐도 답을 대략 고를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상식 많고 다방면으로 다독한 학생이 배경 지식의 도움으로 빛을 발합니다.
특히 수능은 고등학교 수준의 문제이므로 상식 수준의 지식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 분야만 편식한 사람은 크게 도움을 못 받아요.
저는 사회학과 철학분야가 약점이어서, 여기서는 순전히 지문의 정보만으로 답을 골라야 했어요.
이 때는 추론실력과 논리적 판단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합니다.
일단 지문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서
답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보기 두세개를 뺍니다. 여기까진 별로 안 어렵습니다.
남은 두세개 중에서 내 나름의 논리로 제외 가능한 것을 선택하면, 남은 하나가 답이 되는데,
이 때 누군가에게 내가 이 답을 고른 이유를 설명한다고 생각하면서 선택을 합니다.
자, 내가 이렇게 설명하면 옆 사람이 과연 설득될까? 내 말이 논리적인가?
내 주장의 근거를 이 지문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절대 감으로 찍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맞춰도 다음에 또 맞춘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리고, 언어 과외를 하면서 느낀 건데 지문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정도가
사람마다 너무나 차이가 커요. 같은 속도로 같은 지문을 읽었는데
학생과 제가 기억하는 정보의 양이 매우 다른 것을 보고 놀랐어요.
기본적인 읽기 능력은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쉬운 문제를 빨리 풀고
심사숙고하여 어려운 문제를 풀 시간이 나옵니다.
읽기가 느리면 아무래도 고득점은 힘들어요. 다독하면 읽기 능력은 향상이 되겠지요.
이건 수학 실력에도 좀 관계가 있어 보이던데,
예전 학생 하나는 수리역역의 괄호 채우는 문제를 잘 못 풀었어요.
가만 보니, 앞에서 주어진 정보 몇 가지가 동시에 머릿속에서 굴러가야
식을 세우고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그걸 한꺼번에 암기하기 어려워 하는거에요.
시험지에 씌어있어도 정보량이 조금만 많으면 동시 처리가 어렵더군요.
나이가 들어서 수능 지문을 다시 보니, 시야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는 느낌이에요.
예전보다 출제자의 의도가 조금 더 잘 보이고, 문제의 형식이나 논리도 좀 더 눈에 들어와요.
두 번째 수능 때는 모든 EBS 문제집을 다 풀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시간낭비였구요,
특히 말도 안 되는 문제로 가득찬 문제집 하나에 들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까워 죽겠군요.
그 시간에 교육청 모의고사와 기출문제를 한 번 더 보거나 차라리 수학을 더 공부할 것을.
일하러 나왔다가 눈도 오고 일도 하기 싫어서 예전 얘기를 써봤습니다.
집에 가서 볶음우동을 해먹고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