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너무 힘드시지요? 어제 어느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입니까?
퀴블러로스의 죽음에 대한 5단계
1단계-부정
예기치 못한 충격에 대한 자기 방어로 볼 수 있으며 현실에 대한 혼란과 아픔을 이겨내고자 하는 단계
2단계-분노
분노의 타겟을 죽음의 원인이 아닌 타인이나 제3의 원인에게 돌리는 단계
3단계-협상
본인의 죽음을 인지하지만 인정하지 않고자 하며 이를 위해 신과 타협하고자 하는 단계
4단계-우울
현실을 직시하고 잃는 것과 헤어질 것을 안타까워하는 극도의 의기소침의 단계
5단계-수용
이제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면서 남겨진 자까지 생각할 만큼 안정과 앞날의 소망까지 갖는 단계
선거 끝난 직후라 아직 2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박근혜에게 몰표를 준 어르신들에 대한 원망, 특정 지역에 대한 원망.....이런 글들이 베스트에 많이 올라와 있네요. 그런 심정 이해는 하지만 빨리 마음 추스르고 5단계로 나아가야 됩니다.
이번 선거에 실패한 것은 어르신들 탓도 아니고 특정 지역 탓도 아닙니다. 박근혜가 후보로 나왔을 때 박정희 향수에 젖은 어르신들의 몰표는 이미 예견된 일 아니었나요? 한편으론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투표율을 높인 면도 있습니다. 경상도 지역에서도 지지 않았어요. 그 정도면 젊은이들은 거의 문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예상한 최대치 보다 20만 표나 더 나왔다고 합니다.
문제가 되는 세대와 지역은 오히려 수도권과 50대입니다. 노무현을 찍었던 세대가 집값 하락과 안보불안으로 박쪽으로 많이 돌아섰다는 분석입니다. 민주당의 공약은 너무 20,30대 젊은층에 집중되어 있었고 하우스푸어나 집값하락으로 고통받는 중산층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정희 후보가 안보불안감을 자극하고 보수층의 결집을 부추킨 면도 있고요.선거는 각 계층, 세대의 요구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전략을 세워야하는데 민주당이 그 부분이 약합니다. 민주당에도 여의도연구소 같은 연구센터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없다면 앞으로 반드시 만들어서 치밀하게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전술도 중요합니다. 여론 조사 발표공지 직전에 문후보가 밀리고 있었지만 18일에는 방송3사 여론조사에서 문후보가 모두 앞섰습니다. 3차토론 이후에 박의 실상을 깨달은 부동층이 많이 문재인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거 당일에도 문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우리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습니다. 그 소문을 도대체 누가 퍼뜨렸는지 모르지만 민주쪽이었다면 팀킬이고 새누리쪽이라면 고도의 전술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후에 강남 투표율이 높았던 것은 박후보에 대한 실망으로 기권하려던 층이 위기감에 대거 투표장으로 나와서 박에게 한 표 던진 것이지요. 경상도에도 근혜가 빨갱이에게 밀리고 있다는 문자가 엄청 돌았다고 하더군요. 2002년 대선에서는 오후에 젊은이들이 대거 투표하여 이겼는데 이번에는 반대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19일 오후에 딴지일보가 검색어 상위에 떠서 들어 보았더니 아주 다 이긴 듯이 좋아하다가 5시 40분이 되어서야 결과가 안좋을 것 같다고 투표 독려하라고 하더군요. 설사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더라도 방심은 금물인데 박빙 우세에 샴페인을 미리 터뜨린 건 선거전술에서 참패한 겁니다.
이제와서 이런 애기하면 무엇하냐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제 남탓보다는 원인을 직시하고 앞날에 대한 소망을 갖는 4단계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찍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당장은 속이 시원하겠지만 그 때문에 상처 받는 분들도 많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보수는 옳음 보다는 지연, 학연, 이해관계 등으로 뭉치기 때문에 조용하지만 결속력이 강합니다. 진보는 도덕성과 가치에 기반하기에 순수하고 정의감에 넘치지만 자칫 남들과 경계를 짓거나 독선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젊은분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앞으로 인구구조의 변화로 젊은이들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콘크리트 새누리 지지층이 45%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포기해도 나머지 55%가 민주주의의 편이 되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지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십알단들의 글과빨갱이, 절라디언 종북좌파좀비들...이런 말에 많이 상처 받으셨겠지만 괴물과 싸우다가 우리가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와 다른 의견도 존중하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아침 베스트 글에 뉴스타파 모금 글을 보았습니다. 거기 달린 수 많은 댓글을 보면서 벌써 5단계에 이르러 앞날에 대한 소망을 갖고 남들까지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을 보고 아직도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이번에 정말 열심히 뛰신 젊은 분들 여러분이 우리나라의 희망입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언론 상황에서 48%의 지지율이 나온 것은 다 여러분 덕분이고 다음번에는 이번 실패를 딛고 잘 될거라 믿습니다.
선거패인에 대한 분석은 한겨레 기사를 많이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