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지난 대통령을 호명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불려나오는 것은 우리를 숨막히게 한 지난 5년의 주범이 아니라, 그 전에 계셨고 이제는 없는 분이다. 그 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나 감히 그 분을 탓함으로써 지난 5년을 무마하려는 사람들이나, 의도는 다르지만 저마다 호명의 목소리가 높다.
꼭 5년어치의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지금의 모든 과오는 그 분의 탓이라 외치고 반성해야 한다고 주절대고, 그러므로 정권을 바꾸기 위해 자기들에게 투표하라고 선전하는 진영, 그들의 뻔뻔함. 그것은 목격할 때마다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을까,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가' 경악하게 되는데, 그보다 울컥 앞서는 것은 누구에 의해서든 지금 다시 불려나와 쓸쓸히 서 계신 그 분에 대한 그리움이다.
지난 동안 굳이 찾아 보지 않았건만, 아니, 사실은 애써 피하려고도 했건만 이제는 막을 수 없이 그 분 생전의 모습, 힘찬 목소리,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 열어 보려 애쓰던 열정의 순간들이 눈 앞에 속속 당도한다.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나는 꼭 울게 된다.
한 곧은 인간이 왜 그렇게 처절하게 꺾여야 했을까. 그것밖에, 다른 결말은 없었을까. 이 땅에서 '선한 의지'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게 찢기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분을 농부로 그냥 놓아둘 수는 없었나. 마지막 순간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왜 우리는, 차츰 목을 조여가던 그 '서서히 이루어진 살해'를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을까.
* * *
그 분을 잃은 순간 나는 멀리 있었다. 엷게 비가 오는 토요일이었다. 국제전화 너머에서 언니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은 뒤에 그 사실은 내게 곧 비현실이 되었다. 그만큼 먼 곳이었고, 그만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돌아온 후에는 시간이 이미 많이 흘러 있어, 나는 계속 그 사실로부터 짐짓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쥐떼가 횡행하는 세상은 굳이 슬픈 일을 상기해내지 않아도 충분히 견디기 어려웠다. 늘 불길한 기운이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여기, 그 분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터져나오는 그리움이 있다. 세상 앞에 부끄러움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청청한 목소리를 들으며, 저 목소리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를 속 시원히 던지는 것도, '야, 기분 좋다!'고 정말로, 기분 좋게, 일성을 날리는 것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깝고 안타깝다. 슬프고 억울하다. 아니, 이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큼,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일일이 설명할 수 없으나 그것은 아비를 잃은 슬픔에 가까운 것이다. '저 사람이 있는 한, 세상이 내게 그리 나쁘게 하지는 않을 것'임을 믿게 하던 사람을 상실했을 때, 그 억울함과 서러움, 그리고 공포를 무엇으로 형용하랴.
그런데, 그 분의 등을 밀친 그들이 그 분을 부른다. 심판대 위에 서야 할 당사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살해 당한' 그 분을 멱살 잡고 끌어내 광장에 내동댕이치고 있다. '국민들께' 사과하라고, 잘못했지 않느냐고 정색을 하고, '그래서 이번에 내가 맡아 잘 해 보겠다'고 썩은 포부를 밝힌다. 나는 그 포부가 역병처럼 무섭다. 당신들이 분명 쥐떼와 마구 섞여 뒹구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그리도 해맑게, 치유의 주체는 자신들이 될 것이라 말할 수가 있을까? 어느 새 광장에는 쥐가 얼씬도 않는다. 쥐도 없고 사람들도 뒤로 물러서는 광장에서 당신들은 무얼 하는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고래고래 불러대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부관참시가 아니면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나는 무섭고, 끔찍하고, 때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닥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감히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두렵거나 부끄럽지 않냐고.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뻔뻔한가! 나는 당신들과 똑같이 내가 '인간'에 속한다는 게 수치스럽다.
...그러나, 아니다. 당신들이 불러내는 것은 그 분만이 아니었다. 당신들은 영영 모를 그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당신들에게 불리는 그 이름이 나를 깨어나게 한다. 소름이 끼쳐 정신 차리게 한다. 그러니, 호명하라. 당신들이 그 분을 끌어낼 때 우리가 같이 깨어날 것이다.
너희는 기억을 상실했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누가 내 지난 5년을 끔찍하게 했는지, 누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했고 누가 지위를 남용하고 누가 함부로 국고를 비웠으며 국토를 난도질하고 외교를 망치고 한국인이라 얼굴을 들 수 없게 했는지,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 분을 호명하라.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그럴수록 우리는 잃은 자리를 쓰라리게 다시 느낄 것이고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 또렷이 기억해낼 것이다. 그 분노로 한 명이라도 더 손을 잡고 투표장에 갈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 미친 질주를 멈춰 세울 것이다.
* * *
오래도록 곁에 계셨으면 하였으나 이제는 뵐 수도, 들을 수도 없이 멀리 가신 분. 우리가 잃어버린 분.
언제, 여기 계셨던가요. 그 날이 너무 아스라하고 찰나였던 것만 같습니다. 기억이 스러지는 것이 슬퍼요.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다시는, 다시는 뵐 수가 없군요.
나중에 뵈어요.
나중에, 나중에 꼭 꼭 뵈어요. 그 때는 못 한 인사를 꼭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하다고.
잘 계셨느냐고.
자주 뵈었으면 좋겠다고. 이젠 멀리 가지 마시라고.
내일, 그 분은 돌아올 수 없으나 우리는 그 분의 친구를 만날 것이다. 그러지 않아야지, 생각은 하지만, 많이 울 것도 같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그렇게 울지는 않겠다. 다시는 그토록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분의 이름을 슬픔이나 치욕으로 기억하게 되도록...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고 보지 않겠다. 다시 그 분이 함부로 호명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금빛 액자에 넣어 걸어 두지는 않아도, 저 흙 속으로 조용히 밀짚모자 쓰고 걸어가도록은 놔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그 정도는 해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앞으로도 여전히 그립겠지만, 언제나 그렇겠지만. 다시 눈물 범벅으로 부를 일은 없을 것이다.
하여 오늘 마지막으로 울며 불러 본다. 아비의 초혼을 하는 딸자식의 마음으로.
아직도 하는, 이제야 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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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진우의 현대사 15회를 듣다가. 그 분께 드리고 싶은 말을 한 번도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감정적인 글이라... 정신 돌아오고 부끄러워지면 삭제할게요.
같이 울어 주실 분이 계셨으면 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