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겐 팔순이 넘으신 친할머니가 계세요.
10년 전,
2002년 대선 투표 전날, 정몽준이 삐져가지고 다 된 판을 뒤엎었을 때
그때 다들 기억나실 거에요.
큰일났다고 투표율 올려야한다고 여기저기 전화하고 투표 독려했었지요.
네, 적어도 제 주변에선 그랬네요.
그래서 아버지랑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투표소에 모시고 갔어요.
그 이전까지 한 번도 투표 안 하셨던 분이고
아버지는 보이콧도 나름의 정치행위로 인정해야한다는 생각이셨는데
그대만큼은 한 표라도 보태야한다며
할머니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잘 말씀드려보자고 저를 데리고 가셨죠.
어찌어찌 얘기가 잘 되어 할머니를 투표소에 모시고 갔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생애 첫 투표를 하고 나오셨습니다.
그날 저녁,
할머니를 모시고 집에 왔는데
출구조사 결과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 확실로 나와서
우리집은 맥주 따고 잔치집 분위기였지요.
할머니도 함께 TV 보시면서 평소보다 늦게 주무신다 싶었는데
갑자기 물으시는 거에요.
"그럼 노무현이가 된 거냐?"
"예, 확실한가 봅니다."
"그래, 그럼 나는 자야겠다."
하시고는 수줍게 말씀하시길
"내가 아까 2번 찍으려고 했는데 투표소에 들어가니 너무 정신이 없고 후둘후둘 떨려서
1번을 찍었다.
너희들 말한대로 하지 못해서 노무현이가 못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잘됐군."
그 이후로 할머니는 다시 어느 투표도 하지 않으셨고
저희도 독려?하지 않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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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한 사람이라도 더 힘을 모아야 하는데
(지난 대선은 너무 뻔한 결과라 시도도 안 했음 ㅠ.ㅠ)
이제는 그때보다 10년을 더 사신 우리 할머니...
모시고 가야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이게 또 잘못 찍으시면 2표가 날아가는 셈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