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문기사를 종합해 보니, 안철수는 사퇴발표를 하기 하루 전에 이미 사퇴하기로 결심을 굳힌듯 하다. 그 날 밤에 실제로 기자회견을 하기로 기자단에 알렸으나, 안철수의 결심을 안 박선숙이 부랴 부랴 대신 나서서 "그" 인상 깊은 기자회견을 한다. 그러니까 그 최후통첩 기자회견은 원래는 사퇴 기자회견이 되었어야 했던 것이었다. 안철수는 그 무렵에 무슨 심경으로 그 사퇴결심을 했었던 것인가? 그 무렵에 그에게 심경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영향을 미쳤던 일은 단일화토론밖에 없다.
안철수는 실제로 문재인과 토론을 해보니 실력의 차를 절실하게 느꼈고, 그 자신도 준비가 부실했음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안철수는 범생이 타입의 정치인이다. 범생이류는 시험을 비교적 철저하게 준비한다. 안철수도 그 나름 준비를 했다고 생각을 했겠지만, 문재인과 막상 토론을 해보니 실력의 질이나 양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본다. 어느 정치평론가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토론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나도 비슷한 평가를 했지만,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경제민주화, 선별적 복지, 그리고 대북정책에 대한 그의 보수주의적 시각이었다고 본다. 민주통합당이 아무리 잡탕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무늬는 진보세력이고 개혁세력이다. 안철수의 보수주의적 시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시각이다. 특히 내가 더욱 결정적이었다고 본 것은 대북정책에 대한 시각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할때, 문재인이 안철수의 대북정책을 두고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냐고 힐난한 적이 있다. 바로 이 순간에 안철수는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안철수는 정치참여 선언을 하고 국립묘지에 가서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박태준 까지도 참배했다. 그의 정치적인 지향성을 분명히 했다. 그는 보수주의자였다. (여기에서 정달님의 궁금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 두겠다. 단일화는 결선투표로 가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어차피 3자대결에서는 2위와 3위는 승산이 없다.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까놓고 말해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한 사람을 제끼고 올라가기 위해서 였다고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너무 분을 낼 팰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 안철수는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개혁-진보세력에 혐의를 뒀다고 본다. 민주통합당을 그냥 국론분열이나 일으키고 할 일 없이 시끄러운 세력이라고 본 것 같다. 대학다닐때 공부는 않하고 데모만 하던 사람들이란 그런 시각이 그에겐 있었다. 그러니 그의 정치쇄신 주문은 온통 민주통합당으로만 향해 있지 않았는가? 그는 한국정치에서 헌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왜 이렇게 사사건건 다투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듯 하다. 그러나 선거운동 한답시고 전국을 다녀 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본다. 청춘콘서트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현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이유 없이 싸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의 내면속에는 현실을 만만하게 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쌓여갔을 것이다. 그 정점이 바로 문재인과의 토론이었다고 본다.
정치쇄신에 대한 주문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가 가진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정치쇄신이 가장 필요한 곳은 헌누리당이다. 안철수의 주문에 맞춰서 민주통합당이 경제민주화, 복지정책 그리고 대북정책에 대한 자세를 바꿔야 하리? 바꾼다면 그것은 보수당이지 개혁당이거나 진보당은 아니다. 안철수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사람들이 그의 정책이나 정치관을 잘 모르고 지지할 수 있지만, 토론을 기점으로 그는 아님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안철수는 지금 야권에서 의미있는 정치인으로 머무를려면 그의 보수주의적 시각을 고쳐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이것을 할 수 없으니 그는 사퇴한거라고 본다.
문재인은 대북정책에 대한 토론에서 집권초기의 남북정상회담의 중요성을 말했다. 그리고 현정은 회장에게 했다고 하는 북한핵심부의 약속을 확인만 하면 남북대화 재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금강산관광재개는 남북관계 정상화, 그리고 나아가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원대한 북방정책의 재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국운융성의 첫걸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거대한 나비효과가 기대가 되는 일이다. 이 부분에서 안철수가 취했던 안이한 자세는 제대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 특히 숱한 역경을 딛고 집권할 수 있었던 김대중의 기념비적인 '햇빛정책'에 반하는 정책을 가진 안철수를 지지하는 호남인들은 무엇인가? 내가 그래서 호남인들에게 정체성을 확실히하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호남의 이익'은 따로 없다. 보수적인 것이냐 아니면 개혁적인 것이냐 둘 중에 하나이다. 호남에 대한 훌대,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개선은 개혁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에 수많은 개혁세력이 동참하는 것이지, 호남인이 하루는 보수적인 정책을 지지하고, 하루는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보수이냐 개혁이냐 양단간에 확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호남의 상층부는 기득권을 즐기는 보수세력화가 되었고, 하층부는 서민 그대로이다. 그러니까 보수와 진보(또는 개혁)가 뒤죽박죽 짬뽕이 된 상태이다. 이것은 역사성도 있다. 내가 개탄해 마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보수화된 기득권 상층부가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서 하층부의 정서를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호남외의 개혁세력이 비판을 하면 호남훌대론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지 않는가?
이제는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자각하게 됐는지 민주통합당에 일단 들어와서 고치라고 하는데, 말하는 것을 보면 무엇을도 빠져있고, 어떻게도 빠져있다. 진성당원제를 할려고 하면 책떼기로 개악을 해 버리고, 소선거구제를 바꿀려고 하면 반대하고, 민주당에 잘 입당하지 않으려는 수많은 개혁진영 지지자들의 총의를 반영하기 위해서 모바일경선제를 도입하면 그것도 난리이고. 지금 문재인 후보가 내부개혁을 하려고 하면 보나마나 엄청난 저항을 일으킬거고. 들어오라고만 하지 말고,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를 말하는 것이 순서이다. 안철수나 유시민 정도의 정치인이 입당을 왜 망설이거나 좌절을 했는지를 알면서도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생각이 있는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지경이다. 민주통합당이 살려면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진정한 내부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친노세력을 비롯한 개혁세력의 글들을 보라, 대부분이 무엇과 어떻게에 천착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를 논하는 글들을 봤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